그때 나는 카르티에 브레송과 헤어지면서 언젠가 그에 관한 기사가 아니라 한 권의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현존하는 위대한 사진작가이자 새로이 활동을 재개한 데생 화가, 장거리 여행을 마다않는 리포터, 현시대를 증언하는 인물, 영원한 탈주병, 집요한 기하학자, 열성적인 불교 신자, 청교도적 무정부주의자, 개전의 정이 전혀 보이지 않는 골수 초현실주의자, 이미지의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 따위가 아니라, 그저 이 모든 모습 뒤에 숨어 있으면서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인물을 붙잡아 보고 싶었다. 한 세기를 살아왔던, 그저 한 사람의 프랑스인을. 어느 시인이 말했던 것처럼 중요한 것은 인간 자체이니까. --- p.63~64
다른 기자들은 화려한 행사에 신경을 쏟았지만, 카르티에 브레송은 정황에 좀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타고난 기질은 어쩔 도리가 없는가 보다. 만일 카르티에 브레송이 중세에 태어나서 이미지를 생산하는 작업을 했더라면, 틀림없이 호화롭게 장정된 책의 가장자리 장식에 관심을 쏟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사회나 중심부는 관습에 얽매여 있는 반면, 사회의 참모습은 주변부에 드러나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카르티에 브레송은 사회 권력층에 대한 관심은 다른 기자들 몫으로 남겨 두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소시민에게 눈길을 주었다. 카르티에 브레송은 어떤 사건을 다루건 간에 언제나 주변부에 관심을 쏟았다. 이런 방식이야말로 사건 현장에 있되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임하고, 사물을 역전된 시각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카르티에 브레송 특유의 반순응주의를 더할 나위 없이 잘 보여 준다. --- p.267~268
카르티에 브레송은 정해진 시간이면 마티스 집에 와서 구석에 앉아 화가에게도, 모델인 리디아 들렉토르스카야에게도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몇 시간씩 얌전히 바라만 보곤 했다. 대화는 금물이다. 점잖지 못할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망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가 사진을 찍을 때는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이 재채기를 하듯, 그야말로 순간적이면서도 조용히 이루어진다. 그때 사진의 주인공은 자기가 주인공이란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마티스도 포즈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한 손에 연필을 들고 다른 손에는 비둘기를 든 채 세상 바깥에 있을 따름이었다. 바로 이 순간, 사진작가는 사람과 동물 사이의 형용하기 힘든 시선을 포착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 p.309
르포르타주란 문제를 표현하고 사건이나 인상을 고정할 목적으로 머리와 눈, 그리고 마음이 동시에 점진적으로 활동함으로써 이루어진다. (…) 나에게 사진이란, 1초도 안 되는 찰나에 대상의 의미와 이 대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형태들의 엄정한 조직을 동시에 인정하는 행위를 뜻한다. (…) 주제란 사실들을 그저 집적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실들 그 자체는 아무런 중요성도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사실 중에서 선택하는 일이고, 사실의 진면목을 심오한 현실과의 연관성 속에서 포착하는 일이다. 사진에서는 아주 작은 대상도 커다란 주제가 될 수 있고, 사소한 인간적 디테일도 라이트모티프가 될 수 있다. --- p.429~430
우리는 그의 몇몇 사진들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것들은 우리의 머릿속을 집요하게 떠돌기 때문에 마치 현실인 양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우리는 시테섬을 쳐다볼 때마다, 카르티에 브레송이 찍은 시테섬의 이미지를 떨치고는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그가 없었더라면 세상은 좀 더 삭막해졌을 것이다. 그는 우리가 삶을 바라다보는 시각을 바꾸어 버렸다.
--- p.590~5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