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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도 태도가 된다

슬픔도 태도가 된다

문학동네시인선-141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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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희곡 top100 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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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6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144쪽 | 186g | 130*224*8mm
ISBN13 9788954672993
ISBN10 895467299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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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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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시면 큰일난다고 울먹이는 막내
링거 자국 어지러운 아비의 팔을 잡아 흔든다
장남은 바위라도 깨버릴 듯
주먹 쥔 채 돌아선 등이 출렁거린다
응급실에 실려간 이후로 처음 피운 담배 연기가

등신, 네 갈망은 원래 이런 맛이었다며 비웃는다
입원 한 달 만의 외출에 저지른 짓이
별일 없다고, 이번만 꼭 한 번이라고
담배를 피워버린 것

돌벅수만큼 든든한 아들들은 제 눈물에 잠겨 있다
눈만 마주쳐도 울음이 흥건해지는 아비에게
아들 둘과 아내가 새로 보였다
--- 「풍문」 중에서

완치는 없다 한다

발음은 반듯해지고 걸음까지 정상이라 대답했다
파르티잔 전법으로 시도 때도 없이
마비 후유증에게 습격당하는 왼쪽 몸이
난감할 뿐이라고 웃었다 불안을 감췄다
말끔하게 병을 씻어낸다는 완치는 없고
근처까지는 도달한다는 뜻으로 근치(近治)라고
의사는 항우울제 같은 미소를 내민다
선생님 혹시, 애착을 아시느냐고 물을 뻔했다
도무지 닿지 못할 것만 같은 사람을 향해
무작정 출항하던 청춘의 새벽을 기억하느냐고
낭만을 비웃을 뻔했다
액자에 넣어두고 싶었던 밤을 후회한 적 있느냐며
그런 상처야말로 완치가 아니라 근치일 거라고 동의했다
사람마다 서로 다른 근육이 마비로 남은 탓인지
92병동의 뇌손상 환자들 표정은 제각각이다
인지가 살아난 그들의 표정은
망가진 육신에 슬픔이 도착하면서 모두 비슷해진다
근치 판정까지 받은 나는 왜 그들과 흡사한 표정인지
도무지 도달하지 못할 것만 같은 완치는 어디인지
가만가만 왼손을 만져보는 것이다
--- 「가까이」 중에서

내 안의 꽃이 다 지고 난 후에야
비로소 꽃이 보인다

만발해 너울거리는 자태보다
잔바람에 떨어져 낡아가는 꽃잎들이 먼저 보인다
--- 「나무에 걸린 은유」 중에서

겨울이 긴 나라의 국경 상점에서
작은 칼을 샀다
끊어버릴 사람도 없으면서
(……)
빙하는 일체의 소리들이 엎드린 장관
행락객으로 무리 지어 갔는데 칼날 같은 혼자를 느꼈다
--- 「근황」 중에서

섬에서 일 년만 살아보자던 약속을 했었다

(……)

우리는 시간에 흔들려도 떠밀리지 않는 해조류로 요양
하겠지
당신은 아침마다 마당에 그득한 해무를 사발로 퍼내어
청포묵 무침을 내놓는 마법을 부리고
우리 고래 뱃속에 손잡고 누운 듯
어둠과 적막을 오래 살던 집으로 착각하곤 하겠지
--- 「요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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