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한 분량의 상당수의 통계수치를 담고 있지만, 피케티의 글들은 읽기가 어렵지는 않은 것 같다. 스스로 그걸 알고 많은(!!!) 이야기를 기획해서 쓰고 발언하는게 아닌가 싶다. 끄트머리에 제시한 다음의 문장이 결국 이 책의 주장 혹은 저자의 믿음이 아닌가 싶다.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에 근거한 이데올로기들의 예고된 파산에 직면하여, 진정한 국제주의적 참여사회주의의 발전만이, 세계경제의 새로운 협력적 조화와 사회연방주의에 의거하여 이 모순들을 해결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저자의 지적/개인적/정치철학적 계보가 어떠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얌전한 경제학자가 참 파격적인 사회주의 지향의 입장을 과감하게, 그러면서도 일관되게 내세우고 있다. 스스로 인정하는 여러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인 사회주의의 실현이라는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게 좀 비현실적인 듯한 생각도 들더라. 더구나 이처럼 유명한 학자가 말이다.
앞부분에 저자는 이 인용문에서 언급한 '예고된 파산'의 위기에 대해 이런 식의 언급을 한다. "이러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우리가 쥔 최상의 으뜸패는 여전히 앎과 역사다. 어느 인간사회든 저마다의 불평등에 합당한 근거를 댈 필요가 있고, 이러한 정당화에는 진실과 과장, 상상력과 천박함, 이상주의와 이기주의가 언제나 섞여 있다....." 경제학자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역사를 건드렸고, 그랬기에 이 책은 매우 뚜렷하게 경제사 서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앎과 역사를 풀어나가면서 여러 경제학적 분석을 통해 개별 시대에 지배적이었던 이데올로기를 추출해서 부각시킨다. 이데올로기의 물질성이란 테제를 이처럼 명확히, 그리고 이해하기 쉽게 기술한 경우를 별로 보질 못했던 것 같다.
"... 20세기 소비에트 이데올로기는 사적소유에 주어진 최소한의 틈이 전체를 부패시키고 말 거라는 공포로 인해 국가소유 외의 어떤 것도 엄격하게 허용하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사실상 어느 이데올로기든 - 하나는 사적소유를 다른 하나는 국가소유를 신성화한다 - 신성화와 공백에 대한 공포의 제물이다. ... " 이는 소비에트의 실패를 설명한 부분에서 제시된 이야기다. 또한 이러한 분석도 있는데 "... 특히 공산주의의 실패 경험은 포스트공산주의 나라들에서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도 과감한 재분배 기획 일체를 앞서 비난하기 위해 어김없이 거론된다. 그러면서 정작 20세기 자본주의 나라들의 사회경제적 성공은 불평등 감소에 대체로 성공한 야심찬 정책들, 특히 매우 강력한 누진세에 근거한다는 점이 기억에서 지워진다...."
수치와 그에 대한 분석을 통해 (사후적이겠으나) 알 수 있는 경제제도(조세, 분배 등)의 효과와 별개로 관습적인, 그러기에 물질화/구조화된 관행에 의한 불공정/불합리가 유지되는 사례가 많으며, 이 사례의 경우처럼 반동적인 정서와 그 체화로 인해 합리적인 세계인식과 실천을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 저자는 20세기 자본에서 20세기 후반부터 서구 좌파진영에서 스스로 망각의 굴레로 빠진 문제를 강력하고 지속적으로 이야기하였고, 소비에트의 문제, 그리고 일부 서구좌파에서도 국유화의 환상으로 인한 실패를 이야기한다.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하는 주장이 심히 인정되는 바다.
또한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역사적 사실로 관습적인 관행으로 서구제국에서 노예제가 철폐되는 과정이 있다. "... 우리는 19세기에 유효했던 사적소유 준신성화체제의 몇 가지 놀라운 양상들을 관찰할 수 있게 됐다. 노예제 폐지 당시 노예가 아니라 노예소유자들에게 배상해야 했다는 점과 해방된 노예들은 옛 소유자들에게 자유에 대한 막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는 점이 그것들이다. 아이티가 프랑스에 했던 배상이 그 전형이며, 이것이 20세기 중반까지 지속되었다는 점은 놀라 만한 일이다.... " 이는 정말로 놀라운 사실이었다. 연간 국내생산 재화의 3배에 달하는 액수를 100년이 넘게 요구하고/지불하는 역사가 있었다니. 동시에 언급되는게 1차대전 이후 독일 역시 그에 준하는 배상금을 부담해야 했는데, 대마불사라고 해야 할라나? 이웃의 거대 경제권이 몰락을 할 경우 자국(프랑스 등)의 경제도 문제가 되기에 적절히(?) 해소의 방향으로 타협이 이루어졌다는 이야기에도 놀랐다.(인플레도 기여를 했지만) 전쟁을 통해 정치적 해결에 도달했던 미국의 경우는 아주 단순히 말해서, 정치적 격동으로 인해 그러한 보상책이 적절하지(?) 않았기에 20세기 중반까지 민권운동이라는게 있을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사회적 계약이 불완전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개인적 판단이 들더군. 여러가지 시사점이 있지만, 준신성화되었다고 하는 '사적소유'라는 이데올로기의 무시무시함이 핵심이 아닌가 싶다. 이 정도로 견고하게 유지된 이데올로기라니....
역설은, 오히려 이러한 이데올로기들의 역사에 비해 20세기 후반의 빈부격차 확대, 그리고 분리주의의 득세는 상상력과 의지, 그리고 정교한 분석이 있으면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가 생각하는게 아닌가 싶다. '혁명적 낙관주의'란 바로 이런게 아닌가 싶다. "... 유럽 공동의 사회정책 및 공동 조세의 상징적이 부재가 보여주듯, 사민주의는 포스트민족적인 차원의 연대와 조세를 확립하는 데 실패했기에 일국 수준에서 발전시킨 구성물들을 약화시켰고 이는 사민주의의 사회정치적 토대를 위태롭게 하는데 일조했다..." 이러한 매서운 비판이 있지만, 이를 통해서 사회연방주의의 가능성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멋지다.
그러면서 매우 시사적인 주장을 하나 더 하는데, 어쩌면 이 책의 주된 연구 대상인 이데올로기가 처한 현실에서의 역학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에 '포퓰리즘'이라는 통념은 반드시 피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으로는 세계의 복합성은 사유하지 못한다. 특히, 포퓰리즘은 정치적 갈등이 다차원적이라는 것을, 경계 문제와 소유 문제에 관한 입장들이 매우 상이할 수 있다는 것을 전혀 가려내지 못한다. ... 포퓰리즘에 대한 논의의 첫번째 문제는 그 공허함이다. 이 통념은 그 어떤 것도 정밀하게 말하도록 해주질 않는다. ..." 엄밀하게 분석하고 토의하고(숙의민주주의 이야기도 많이 한다), 그렇게 이데올로기 투쟁을 해서 새로운 제도와 사회를 만들자는 아주 교과서적인 이야기라 하겠다. 매력있었다. 이러한 주장을 정치운동으로 이어나갈 수 있는 세력이 어디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반드시 이런 주장을 고려했으면 한다. "확실한 것은 이데올로기의 비중이 약화되고 있는게 아니라 그 반대라는 점이다. 탈이데올로기적이길 원하지만 실은 완전히 이데올로기로 가득찬 이 시대에, 소유체제와 경계체계에 관해 제기되는 질문들은 그 어는 시대보다 더 복잡하고, 내놓을 답들의 불확실성은 그 어느 시대보다 더 극단적이다." 그러니까, 부의 재분배를 위한 새로운 상상력과 제도에 대해 포퓰리즘이라는 공격이 가해질 때, 적극적으로 대응하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
미약하나마, 그래도 반복적으로 기후위기도 새로운 시대의 위기요소의 하나로 언급되었고, 당연히 국제적인 사회연방주의 기획을 통해서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겠단 생각으로 이어졌다. 뭐랄까... 파격적이거나 강력한 파토스는 없을지라도, 이 학자의 주장을 차분히 확산시키려하는 학적/정치적 흐름을 하나 조직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말이다. 학적인 활동의 중요성을 오랜만에 느껴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