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감춰진 것을 찾아보고 은밀한 것을 들춰보는 것에서 사람은 재미를 느낀다. 우리말 속에 있는 한자어를 찾아보는 것은 우리말이 입은 옷을 벗겨 보는 것이라고 나는 비유한다. 독자 여러분도 이 책과 함께 우리말 속살을 하나하나 만져보는 은밀한 행위에 동참하길 기대한다. 말과 글을 정확하게 구사하는 능력이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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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고독의 계절이라고들 한다. 계절 자체가 고독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기 때문이다. 고독이란 ‘외롭다’ 또는 ‘짝이 없는 홀몸’을 말한다. ‘고孤’도 ‘독獨’도 모두 ‘홀로, 혼자, 홀몸’의 뜻이다. 젊은 남녀들은 일부러 고독한 분위기를 즐기기도 한다지만, 원래 고독은 원래 그렇게 즐길 것이 아니었다. 옛날에는 도와줄 사람 하나 없고 의지할 데 없어 가장 불쌍한 처지에 있는 네 부류의 사람들을 환鰥·과寡·고孤·독獨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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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신창이’가 되다, ‘만신창’이 되다, ‘망신창이’가 되다, ‘망신창’이 되다, 이 중에서 무엇이 맞을까? 답은 첫 번째 만신창이滿身瘡痍와 두 번째 만신창滿身瘡이다. 원래 한자성어인데, 발음이 비슷한 여러 말로 잘못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만신창이란 ‘몸에 상처와 흉터가 가득하다, 온몸이 상처투성이다’라는 뜻이다. 만신滿身은 ‘온몸(에 무엇이 가득하다), 전신’의 뜻으로 말할 때 쓰인다. ‘온몸이 만신창이다’라는 말은 사실 동어반복이다. 만신滿身자체에 온몸의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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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용하는 방심이란 한자의 뜻은 ‘마음을 다잡지 않고 풀어놓다, 정신을 차리지 않다’이다. 즉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에, 직장이나 학교 혹은 군대 등 어디에서든 방심하면 안 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런데 중국에 가면 반대로 ‘방심하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방심의 뜻이 양쪽에서 다르게 쓰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방심은 ‘마음을 푹 놓다, 더 이상 걱정하지 않다, 마음을 크게 가지다’ 등의 뜻으로 쓰인다. 즉 안심安心과 같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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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음식점에 가서 차림표를 보면, 흔히 먹는 짜장면, 짬뽕, 우동, 볶음밥 등 다음에 삼선 짜장면, 삼선 짬뽕 등 ‘삼선’이란 말이 붙은 메뉴들이 다시 이어진다. 가격을 보면 삼선이 붙은 것이 거의 두배에 가깝다. “도대체 삼선이 뭐지?” 하고 의아했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듯하다. 한자로 쓰면 ‘三鮮’이다. 요리에서 말하는 삼선은 ‘세 가지 진귀한 재료, 세 가지 신선한 재료’ 정도의 뜻이다. 그래서 삼선이 붙은 음식의 가격이 비싸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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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소굴은 별로 안 좋은 뜻으로 쓰인다. 도둑이나 악한들의 본거지를 일컫는 말로 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굴이 원래부터 그렇게 푸대접 받을 말은 아니었다. 소굴의 원래 뜻은 ‘새의 둥지와 굴’이다. 인류 역시 집을 따로 짓고 살기 이전에는 나무 위나 굴 속에서 살았다. 나무 위에 엮은 집이 소巢이고, 동굴에 마련한 집이 굴窟이었다. 애초에 소굴은 짐승에게든 사람에게든 그야말로 ‘집’이요 편안한 보금자리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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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누리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마는, 영화를 추구할수록 치욕과 수치를 당하는 일도 많다. 그래서 영榮과 욕辱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도 한다. 때로는 사람들이 말하는 영화를 누리는 것 자체가 치욕이 되기도 한다. 예로부터 혼란하고 어지러운 시절에 고관대작의 지위에 오르면 일신은 영화를 누리지만 후손에게는 치욕을 남기는 것이라고 하여 사양한 예가 많았다. 영욕은 항상 붙어다니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도 치욕도 겪지 않은 가장 평범한 삶이 어쩌면 가장 위대한 삶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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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 직원이 상사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차질이 없도록 해!”일 것이다. 그 말을 들으면 부하 직원 또한 무조건 “예!”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차질의 원래 뜻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글자 모양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차蹉’나 ‘질跌’은 모두 발과 관계있는 글자이다. 발끝이 채이거나 발을 헛디뎌 중심을 잃거나, 비틀거리거나, 넘어지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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