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상식을 가진 내가 바로 이해?공감?수긍할 수 있는 붓다 그리고 불교, 일상적으로 적용했을 때 ‘그래, 그렇지.’ 하고 바로 경험되고 증명되는 붓다 그리고 불교를 찾고자 애써왔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21세기 시민붓다의 불교 《붓다, 중도로 살다》입니다. 이제 제법 아귀가 맞습니다. “그래, 그렇게 알고 살아봐, 그러면 괜찮아.”라고 권할 수 있는 한 권의 책, 붓다 그리고 불교 이야기가 만들어진 셈입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
붓다의 삶에 대한 신화적 기술은 신화가 지배하던 시절 불교가 널리 퍼지게 하는 데 기여했지만, 역으로 우리를 인간 붓다의 삶으로부터 멀어지게 하였습니다. 붓다를 범접할 수 없는 초월적 존재로 인식하게 하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마치 소를 타고 소를 찾아 헤매듯이 지금 당장 붓다로 살기 위해 전력투구하기보다는 아득히 먼 훗날 도달하게 될 높은 경지의 붓다가 되기 위해 오늘을 소모하게 만들었습니다. ---p. 44중에서
녹야원에 도착한 붓다가 중도의 팔정도 사유 방식으로 다섯 고행자와 치열하게 대면합니다. 변절자 타락자라고 비난하며 떠나온 고행자들은 쉽게 가슴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붓다는 환영받지 못하는 불청객이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모색해보지만 불신과 의심이 풀리지 않자 붓다는 이렇게 말합니다. “벗이여, 그대들은 내가 거짓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지금처럼 밝은 표정을 본 적이 있는가, 확신에 찬 자신감을 본 적이 있는가, 일찍이 이렇게 적극적인 태도를 본 적이 있는가.” ---p. 74중에서
사람들은 참된 앎(깨달음)을 이룬 이후 붓다가 특별한 존재로 대접받으며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전혀 사실과 다릅니다. 붓다는 종종 추위, 배고픔, 해침, 비난, 병고와 폭언, 폭력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불확실한 삶의 현장에서 살아가려면 스스로 흔들림 없이 주체적인 삶의 태도를 유지하여야 합니다. 한없이 자유로우면서도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치열한 현장 삶을 통해 나눔과 비움도 이루어집니다. 붓다는 그 삶의 모습을 종종 연꽃에 비유했습니다. 진흙탕에 굳건히 발 딛고 선 청정한 연꽃처럼 혼탁한 고난의 현장에서도 늘 자유롭고 평화로웠으며, 모든 생명들에게 자비로웠습니다.---p. 80중에서
붓다의 마지막 유언은 ‘끊임없이 정진하라’입니다. 대비원력의 발심과 서원으로 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삶을 향상시키려면 먼저 스스로 마음을 일으켜야 하고, 그 변화의 열망들을 꾸준히 실행하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법을 등불로 자신을 등불로 삼는 발심과 원력이 없는 삶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늘 제자리를 맴돌기 쉽습니다. ---p. 110중에서
붓다의 수많은 가르침들은 관념적 당위론이 아니라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설해진 것들입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또한 불교를 제대로 하려면, 지식을 많이 쌓거나 그저 습관적으로 신앙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늘 깨어 치열하게 안팎을 관찰하면서 자유롭고 평화롭게 제 스스로의 삶을 창조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실천의 측면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p. 120중에서
불교는 기본적으로 교리에 대한 복종이나 믿음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각자가 자신의 참모습인 본래붓다에 대해 잘 이해하고 확신하여, 스스로 자유롭고 평화로워지도록 돕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신앙의 종교라기보다는 참된 앎(깨달음)과 실천의 종교입니다. ---p. 122중에서
붓다의 참된 앎(깨달음)은 한마디로 위대한 상식의 발견입니다. 인간은 본래 중생이므로 업보대로 태어나 신분의 굴레가 씌워진 대로 살아야 하는 노예가 아닙니다. 자신이 마음먹고 행위하는 대로 즉각즉각 뜻한 삶이 이루어지는 매우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위대한 존재(오온)입니다. ---p. 130중에서
붓다의 모든 가르침은 궁극적으로 사람이 본래붓다임을 가리킵니다. 붓다는 온 우주와 한 몸 한 생명인 사람이 본래붓다임을 깨우쳐 안 뒤에 이 사실을 보통 사람들도 잘 알고 살기를 바라는 따뜻한 가슴을가진 인간이었습니다. 본래붓다와 동체대비는 고루한 옛말이 아닙니다. 개인의 삶에서부터 공동체와 사회를 이롭게 하는 훌륭한 세계관의 토대입니다. 오늘날 무지로 인해 너와 나를 편 가르고 우월감과 열등감으로 안팎의 고통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본래붓다와 동체대비는 삶의 활로를 열어줄 단비 같은 좋은 선물입니다. ---p. 150중에서
현대인들의 고통에 대해, ‘붓다로 살자’는 이렇게 초대합니다. “당신의 참모습은 그 무엇도 부족함 없는 본래붓다입니다. 당신의 삶과 세상을 창조할 주체는 신도, 운명도, 업보도 아니고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가십시오. 날마다 좋은 날로 활짝 피어날 것입니다. 구차하게 소 타고 소 찾는 격으로 삶
의 의미를 찾기 위해 자기 내면으로 숨어들어 가거나 자기 밖으로 무엇을 찾아 어디론가 달려갈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여기 본래붓다인 뭇 생명들과 고락을 함께하십시오. 그들과 관계 맺으며 서로 존중하고 돕고 나누며 살아가십시오. 그렇게 하면 저절로 우리들의 삶은 더 풍요로워지고 행복해집니다.” 왜 그렇게 될까요? 진리가 그러하기 때문이며, 당신이 그런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p. 154중에서
실천의 진리인 중도란 지금 여기 현장의 실상에 직면하여 있는 그대로 보고 이해하고 사유하는 태도와 실천 방식입니다. 마치 잃어버린 귀중한 물건을 찾으려고 할 경우 반드시 잃어버린 그 현장에 직면하여 찾아야만 찾을 수 있듯이 문제의 그 현장에 직면하는 태도와 방법을 중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p. 172중에서
중도란 첫째,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을 자신의 색안경으로 왜곡시켜 거꾸로 이해하는 무지와 착각의 관념으로 형성한 모든 단견(코끼리에 대한 눈먼 자들의 견해, 결원상극, 자승자박)이 잘못된 길임을 알고 그 길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며, 둘째, 지금 여기 직면한 삶의 현장에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을 누구나 바로 이해?실현?증명할 수 있도록 하는, 있는 그대로의 길(코끼리에 대한 눈뜬 자들의 견해, 해원상생, 무애자재)을 투철하게 잘 가는 것입니다. (174중에서
입도 마음도 몸도 그냥 놀리고 있으면 거의 100퍼센트 습관적으로, 본능적으로, 삶을 혼란스럽게 하는 산란한 원숭이처럼 제멋대로 날뜁니다. 원숭이처럼 삶을 혼란스럽게 하는 습관의 노예로 사는 것이 중생살이입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주체적으로 노는 입, 노는 마음, 노는 몸을 잘 써서 구하는 마음 없이 중도의 팔정도 사유 방식으로 계정혜 삼학을 부지런히 실천하면
실천하는 만큼 익숙해집니다. 날로날로 점점 무르익어지면 절로절로 여유롭고 편안하게 됩니다. 그 무엇도 더 구할 것 없이 절로절로 되는 삼학의 삶을 정각의 삶, 붓다의 삶이라고 합니다. ---p. 204중에서
어디에서 해답을 찾아야 할까요? 우리가 경험해온 불교 역사를 잘 짚어보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해인사 장경각 주련에는 불교가 이렇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붓다께서 일찍이 45(49)년 동안 무슨 법을 설했는가. 6천 권의 경전이 모두 다 오로지 방편(손가락, 약 처방)일 뿐이네.” 붓다께서 펼친 중도?연기의 정법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또는 병에 따른 약 처방이었다는 말입니다. ---p. 214중에서
오늘 우리에게, 아니 미래의 우리에겐 붓다가 삶으로 보여준 것처럼 아름답고 멋있는 불교가 필요합니다. 21세기 세계시민인 오늘의 주인공들은 오래된 미래의 삶을 살아간 붓다처럼 지금 바로 본인의 삶으로 살 수 있는 불교, 삶으로 보여줄 수 있는 불교, 누구나 바로 따라 할 수 있는 불교, 하기만 하면 즉시 효과를 볼 수 있는 단순 명쾌한 불교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
니다. ---p. 216중에서
붓다의 본의에 맞는 오늘의 불교, 미래의 불교를 찾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고민의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21세기 시민붓다의 불교’입니다. 21세기 세계시민의 길인 ‘시민붓다의 불교’는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의 인생 화두에 대한 응답입니다. 인생고의 근본 조건인 자신의 참모습(12연기, 사성제)에 대한 무지와 착각의 병을 참된 앎과 실천으로 치유하여 참 자유, 참 평화의 삶을 지금 여기에서 바로 살게 하는 불교입니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