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우리는 처음으로 입을 맞추었다. 입맞춤을 끝내고 릴리아는 차가운 볼을 나의 얼굴에 붙인다. 나는 릴리아의 어깨 위로 승강장 뒤 어두운 겨울 숲을 바라본다. 닿아 있는 얼굴에서 어린아이처럼 따뜻한 숨결이 느껴진다.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도 들려온다. 아마 릴리아도 내 심장 소리를 듣고 있겠지. 그러다가 몸을 살짝 움직이며 숨소리를 낮춘다. 나는 몸을 기울여 릴리아의 입술을 찾은 뒤 다시 입을 맞춘다. 이번엔 릴리아가 눈을 감는다.
멀리서 낮은 기적 소리가 울려오고 별빛이 눈부시게 반짝인다.
--- p.33 「파랑과 초록」 중에서
매서운 추위가 몰려와 진정한 러시아의 겨울이 숲을 휩쓸기 시작했다!
테디는 점점 더 깊은 꿈에 빠져들었고 더욱 천천히 숨을 쉬었다. 더 이상 곰이 있는 구덩이 위에 안개가 끼지 않았다. 곧 눈으로 뒤덮인 구덩이는 작은 틈이나 나뭇가지 위에 노랗게 변해버린 서리를 누군가 우연히 보게 된 게 아니라면 발견할 수 없게 되었다.
--- p.129 「테디」 중에서
모터가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버스가 움직였으며, 버스 안에서 새벽의 불행해 보이는 얼굴 하나가 작별의 의미로 크리모프를 바라봤다. 그리고 크리모프는 손을 살짝 흔들었고 미소를 짓고는 둑 아래로 내려가 강가로 곧바로 걸어갔다.
“저기 개가 달려가네요! 저기 개가 달려가네요!” 크리모프는 들판을 지나며 걸음걸이에 박자를 맞추고는 노래하듯 혼잣말로 되뇌었다.
--- p.145 「“저기 개가 달려가네요!”」 중에서
갑자기 쏘냐는 세상의 강렬한 아름다움과 별들이 얼마나 천천히 하늘을 가로지르며 떨어지는지 깨달았으며, 이 밤과 저 멀리의 아련히 보이는 듯한 모닥불, 그 모닥불 주위에 앉아 있는 선한 사람들이 떠올랐으며, 이미 고단하고 평온한 대지의 힘을 느꼈다. 쏘냐는 자신이 결국 여자이며, 어쨌든 간에 자신에겐 심장이 있고, 영혼이 있고, 이 사실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행복해지리라 생각했다. 오! 미련한, 미련한 바보야. 쏘냐는 내면의 힘과 매력을 느끼고, 홀가분하고 또 분노했으며, 힘차게 발걸음을 앞으로 내디뎠고, 밝게 빛나며 떨어지는 별빛 아래 어둠 속 혼자라도 좋았다.
--- p.206 「못생긴 여자」 중에서
“아들아, 사랑하는 아들아, 일어나렴.” 너의 손을 가볍게 잡아 당기며 내가 말했어. “일어나, 일어나, 알료샤! 알료샤! 일어나렴….”
너는 잠에서 깼고 재빠르게 자리에 앉아 나에게 손을 내밀었어. 난 너를 안아 들고 꽉 껴안고는 일부러 더 씩씩한 목소리로 네게 몇 번이고 반복해 말했지. “자,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니! 꿈에 뭐가 나왔는지, 한번 보자, 쨍쨍한 해님이네!” 그러고는 커튼을 양쪽으로 밀고 열어젖히기 시작했어.
방은 햇빛으로 밝아졌지만, 너는 나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고르지 못한 숨을 들이쉬며 내가 아픔을 느낄 정도로 강하게 손가락으로 내 목에 매달린 채로 여전히 울고 있었어.
--- pp.246~247 「꿈속의 넌 슬피 울었지」 중에서
마침내 내가 엄숙하게 천천히 네 방 문을 세 번 두드렸어. “똑! 똑! 똑!” 곧바로 날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너는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문을 열고. (너의 침대는 문 바로 옆에 있었거든) 노래를 부르듯 말했어.
“초-오다!”
촛불을 받아 너는 환하게 반짝였고, 너의 두 눈은 봄날의 하늘빛으로 빛났으며, 작은 두 귀는 불타오르듯 빨개졌고, 희게 빛나는 솜털 같은 머리카락이 너의 머리를 감쌌지. 그리고 일순간, 마치 네가 앞뿐 아니라 뒤에서도 촛불로 비친 듯 투명하게 보였어.
--- pp.269~270 「작은 초」 중에서
‘음, 이게 바로 행복이지.’ 자바빈은 생각했고, 곧바로 구스차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게 바로 사랑이지! 참으로 묘하단 말이지…. 사랑아! 내게 작별 인사로 티켓을 선사해주렴….’
그리고 자바빈은 슬프게 두 입술을 꽉 다물고 누워 구스차와 섬에 대한 생각을 계속했다. 구스차의 얼굴과 두 눈이 그려졌고, 목소리가 들려왔으며, 자바빈은 이미 이게 꿈인지 아니면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 p.298 「섬에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