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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월담

신월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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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6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668쪽 | 850g | 142*210*35mm
ISBN13 9788997722303
ISBN10 899772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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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체념했다. 예상이란 강한 충격을 받아도 덜 상처받게끔 장치해 둔 완충재와 같아서 미리 각오를 해 두면 어떤 사태에 직면하더라도 덜컥 고꾸라지지는 않는다. 과장해서 말하면 나는 기노우치와 처음 만난 순간부터 이날을 각오하고 있었다. 앞날에 대한 내 예상은 감탄스러우리만치 정확했지만 그것은 누구나 할 법한 예상이었으므로 결코 자랑거리는 아니었다. 나는 그저 결국 이럴 줄 알았다는 혼잣말로 나를 다독여 보호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각오와 달리 좀처럼 그 자리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눈물이 났다. 아직 마음이 움직인다는 뜻이었다. 우뚝 멈춘 마음은 슬픔조차 느끼지 못하니까. --- p.118

나는 왜 기노우치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가. 그가 이토록 완벽한 연기를 보여 줬는데도 통하지 않는다는 게 억울했다. 나는 기꺼이 속고 싶었다. 감쪽같이 속아서 마음의 평안을 얻고 싶었다.
하늘은 무심했다. 얻고자 한 건 마음의 평안이었지만 정작 얻은 건 기노우치의 거짓말을 간파하는 능력이었다. 이따위 것이 여자의 감이라면 개나 주라지. 내게는 개똥만큼도 필요 없는 능력이었다. 나는 그에게 속아 편해지고 싶었다. --- p.123

“이유가 뭐죠?”
묻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궁금했다. 왜 내가 아닐까. 왜 하필이면 도키코일까. 아무리 끙끙거려도 도무지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 같았다. 내가 모르는 세계에 해답이 존재하는 문제였다. 기노우치의 설명 없이는 답을 알아낼 길이 없었다.
“그런 게 논리로 설명될 리 없잖아.”
질문이 영 글러 먹었다는 투의 대답이었다.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이유를 대라면 하나하나 다 열거할게. 그건 얼마든지 가능하니까. 그렇다고 그 조건들 때문에 당신을 좋아한다는 얘기는 아냐. 조건과 감정은 다른 문제야. 내가 열거한 모든 조건을 갖춘 또 다른 여자가 나타난다고 해도 그 여자를 반드시 좋아하게 되리란 보장은 없거든. 절대로 장담 못 하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점 때문에 당신한테 끌리는 거니까. 연애 감정이란 그런 거잖아.” --- pp.208~209

“좋은 소설은 어떻게 해야 쓸 수 있을까? 물론 작가가 아는 세계가 좁으면 그만큼 좋은 소설이 나오기 힘들지. 그렇다고 견문을 넓힌다고 반드시 좋은 소설이 나온다는 얘기는 아니야. 그런 논리대로라면 인생에서 산전수전 다 겪어 본 노인들만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다는 소리잖아. 뭐야, 그럼 우리처럼 젊은 소설가는 필요도 없게? 그러니까 그건 틀린 얘기야. 소설의 정수에 다가가려면 단순히 경험만이 아닌 다른 뭔가가 필요한 것 같아. 그 ‘뭔가’의 정체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어쩌면 그걸 찾아가는 과정에서 좋은 소설이 탄생할지도 모르지. 나는 그렇게 생각해.” --- p.470

내면에서 말이 소용돌이쳤다. 내 시커먼 마음이 말을 낳는지 아니면 어딘가에서 샘솟는 말이 내 마음을 검게 물들이는지는 수수께끼였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이 말을 밖으로 토해 내야만 한다는 점이었다. 이런 것이 창작욕인가? 그마저 불분명한 상태에서 나는 기꺼이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나는 말의 수도꼭지이자 꼭두각시였다.
--- p.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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