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천황은 역적 종자들을 대단히 싫어해서 조슈 정벌 지속을 원했지만 정벌군의 연이은 패전, 소집된 번병들의 귀환 속출, 그리고 쇼군 사망. 여기에 조슈 정벌 동원으로 쌀값이 폭등. 전국 각지에서 쌀 폭동이 빈발. 1866년 10월 8일. 4경계 전쟁(2차 조슈 정벌) 종료. 천하가 경악하는 가운데 막부는 일단 천하공론을 겸허히 듣는다는 입장을 내놓고 2차 조슈 정벌전은 조슈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 pp.13~15, 「제1장_Conspiracy theory」 중에서
비상시국이니만큼 일단 요시노부가 도쿠가와 가문의 당주 자리를 바로 이어받았지만, 짐짓 쇼군 직위에는 욕심이 없는 척한다. 요시노부의 쇼군 승계에 대해서는 반대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니, 덴쇼인이 이에사토를 다음 쇼군으로 밀었고 요시노부의 개인 가신단인 히토쓰바시家 가신들도 주군의 쇼군 계승에 절대 반대를 외치고 있었다. 막각 또한 親요시노부 각료들의 공작에 의해 결국 요시노부 쇼군으로 중의가 기울고, 조정에서는 천황이 안티 요시노부를 외치는 목소리들을 다 뭉개고 요시노부 지지를 표명. …이에 1867년 1월 10일, 천황의 쇼군 임명 어명을 받들어 도쿠가와 요시노부(30세) 정이대장군 취임.
--- pp.16~18, 「제1장_Conspiracy theory」 중에서
주요 웅번의 제후들이 조정의 천하공의 하문에 응해 1867년 6월, 교토로 상경한다. 이렇게 교토로 올라온 4명의 제후들이 구성한 협의체, 4후회의. … 4후회의는 2주에 걸쳐 조정, 요시노부와 협상에 나선다. 4후회의와 요시노부가 교토 니조 성에서 가진 협상은 별 소득 없이 기념 촬영만 하고 끝남. 결국 조약 칙허 정국은 4후회의와 막부 간의 조정 로비 싸움으로 흐르게 되고. 결국 아사히코 친왕을 필두로 5섭가, 조정 상층부를 포섭한 막부 측이 승리. 6월 24일, 조약 칙허 도장이 찍힌다. 4부회의 해산, 귀향. 이처럼 정치적 해법을 통한 막부 권력 와해 기도가 실패로 돌아감에 따라 조슈와 사쓰마는 무력 토막으로 가닥을 잡고 계획을 진행하기 시작한다.
--- pp.40~44, 「제2장_Four Lords Council」 중에서
대정봉환이라고는 하지만 일단은 막부 행정 조직이 계속 나라를 운영하도록 할 수밖에 없으니. 예견된 바와 같이, 행정 하드웨어도 소프트웨어도 전무한 조정이 당장 나라를 다스리려 나서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고. 관백 니조 나리유키의 조정은 요시노부 품에 푹 안긴 親막부 조정. 사실상 막부가 컨트롤하는 조정이 막부에 다시 국가 통치를 계속 위임하는 모양새가 나오게 되는 것. 외교에서도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막부 조직이 일본을 대표해 계속 외국을 상대하도록 한다. 그리고 막부 시스템을 대체할 새로운 정부 조직 구성에 대해 요시노부에게 전권을 위임. 이런 막부 친화적 대정봉환에 삿초는 크게 반발.
--- pp.71~73, 「제4장_대정봉환」 중에서
사이고는 에도의 사쓰마 번저에 지령을 내린다. 사이고의 지령을 받은 사쓰마 번사들은
에도 시내에서의 테러 공작에 돌입. 1월 17일, 에도성에 방화, 니노마루를 태워버린다. 시내 여기저기에서 방화와 총기 난사가 이어지고. 빡친 막부 측은 쇼나이 번과 카미노야마 번사들을 동원. 1월 19일, 에도의 사쓰마 번저 전소. 1월 25일, 요시노부는 사쓰마 징토의 표를 선포. 전쟁의 막이 오르게 된다.
--- pp.91~93, 「제5장_왕정복고의 대호령」 중에서
에도성 개성 3주 후인 1868년 5월 27일, 오구리 다다마사는 신정부군에 체포되어 처형. 그런데 오구리 다다마사의 죽음은 이후 기묘한 도시 전설을 남겼으니, 에도성에서 나올 때 오구리가 비밀 임무를 띄고 도쿠가와家의 황금을 반출해 어딘가에 은닉했다는 것! 하여 21세기까지도 도쿠가와 매장 금을 찾아 군마현 아카기산 곳곳을 파헤치는 보물찾기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혹은 미쓰이 그룹에서 꿀꺽했다는 설도.
--- pp.155~156, 「제8장_Edo open」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