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생명을 살리는 선한 마음을 가진 한 사람을 확보하기 위해 아브라함을 불러내 평생 이끌어 가셨고, 아브라함도 그분의 인도하심과 가르치심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아브라함에 이어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그 외 모든 형제도 처음에는 자기밖에 모르던 인간으로 자라다가 결국 세상 모든 민족을 복되게 하는 공동선의 사명자로 거듭나는 과정을 혹독하게 겪었습니다. 생명의 길은 좁기도 하거니와, 지름길도 없고 꽃길도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공동선의 길은 유혹에 시달리던 수도자 베네딕트가 정화된 마음을 얻기 위해 벗은 몸으로 피투성이가 되도록 뒹굴었다는 가시밭길을 닮았습니다. 인간이 자기 주장, 자기 교만, 자기 애착의 단단한 껍질을 벗고 타자를 위할 줄 아는 어진 마음을 하나님께 받는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 「1. 하나님 나라를 보는 안경」 중에서
사람이 소유가 많아져도 예전처럼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그 소유가 영성과 관계성을 끌어내리는 방향으로 작용하여 공동선 지수를 폭락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소득이 낮았던 때만큼 사람들 사이가 정겹지 않고 삭막해지는 원인이 되곤 합니다. 반면에 세계적 전염병의 대유행에 인류 사회가 공동의 대응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그동안 교류하면서도 경쟁하던 온갖 주체들이 이념, 지역, 인종, 성별, 국가, 종교, 계층, 빈부를 넘어 연대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교회와 세상이 오늘만 아니라 내일의 현실을 넓게 그리고 깊이 담아내는 공동선을 구현하려면, 이념을 넘어 생명으로, 개념을 넘어 실천으로, 사회성을 넘어 영성으로, 세상 나라를 넘어 하나님 나라로 확장되는 존재적, 심미적, 역사적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 「2. 우리 곁에 늘 있어야 할 것」 중에서
하나님 나라는 믿음, 소망, 사랑의 그물망으로 촘촘하게 짜인 나라입니다. 상호 신뢰하고 바라보며 끌어안는 나라가 되려면 ‘공동선 양식’(the mode of the common good)이 바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세상 나라는 불신, 절망, 미움이 퍼져 있는 나라입니다. 서로 신뢰하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비전을 북돋우는 데 바탕이 되는 공동선 네트가 이곳저곳 찢어진 지가 한참입니다. 공동선에 기반을 둔 사회 네트워크는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좋음의 근원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공동의 선으로(그래서 하나의 사회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온 이 모든 좋음을 다 같이 누리는 삶을 죄로 인해 잠시 잃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되찾아 다시 누리는 삶이 하나님 나라의 시작에 해당하고,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날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해당합니다.
--- 「3. 밭에 감추인 보화」 중에서
성경이 말하는 공동선은 현재 세대 혹은 미래 세대의 인류 번영 중 하나만을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성경의 하나님 나라는 우주 창조에서 역사의 종말까지, 더 정확히는 영원에서 영원까지도 포괄하는 나라입니다. 따라서 성경의 공동선 가치도 현재뿐 아니라 미래의 모든 세대까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인류 사회가 존재, 나눔, 절제를 추구하는 규모 있는 삶의 양식을 선택하는 것으로만 구체화될 수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좋은 삶이란 잘나가거나 잘 풀리는 삶이 아니라 가치 있는 삶, 의미 있는 삶, 모든 사람에게 박수 받을 만한 삶이 아닐까요? 남부럽지 않게 산다고는 했지만 돌아볼 때마다 가슴 한편에 허전함이 있다면 진정 좋은 삶이었다고 말하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인간은 사회적 성화, 경제적 성화가 되어야 진정한 번영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오늘날 신학자들이 심도 있게 다루는 주제입니다.) 반대로 삶의 풍파를 거치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평생의 삶을 인간답게 채워 왔다는 마음이 든다면, 그의 황혼은 공허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기독교의 위대한 전통에서는 좋은 삶에 대한 사색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 「4, 좋은 것의 숨은그림찾기」 중에서
하나님 나라는 공동의 선을 위한 나라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나라는 잃은 양 한 마리가 반드시 돌아와야 사는 나라이지, 우리에 아흔아홉 마리나 있으니 괜찮아 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모두가 살기 위해 하나를 희생양으로 삼는 세상 나라와 달리 하나님 나라는 하나를 살림으로써 모두가 살게 되는 공동선의 나라입니다. 공동선 원리에 따르면, 양 한 마리라도 잃으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닙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한 몸과 지체로 이루어진 교회의 비밀입니다. 하나님이 예정하신 자녀들이 모두 돌아올 때까지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는 이유는 그분의 나라가 기계적 체제가 아니라 유기적 체제로 되어 있어서일 것입니다. 하늘 아버지의 나라는 자녀 중 한 명이라도 떨어져 나가면 다른 모든 가족이 고통을 느끼는 하나의 유기체입니다.
--- 「5.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중에서
공동선으로 물들어 있는 우주는 고통이 없는 우주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선으로 악을 이기는 정원으로 우주를 지으셨지, 악은 없지만 선도 없는 허무한 공터로 조성하지 않으셨습니다. 혼돈과 공허는 창조의 반대말입니다. 우리의 인생길도 걷다 보면 길에 패인 구멍이나 바닥에 널린 돌멩이로 인해 방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진 피터슨의 고백처럼, 그 길에서 우리 안에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어떤 사랑이 생겨났다면, 자기보다 다른 사람에게 더 마음을 쓰는 사랑이 피어났다면, 자기가 갖지 못한 것을 바라지 않는 사랑이 자라났다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뜻을 강요하지 않는 사랑을 가지게 되었다면, 평탄하지 않았던 그 역경과 고난의 길이 다름 아닌 최고선으로 가는 길이자 공동선으로 이끄는 좋은 길이었음을 깨닫는 날도 오지 않을까요.
--- 「나가는 말. 함께 춤출 수 있는 무대가 되려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