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깔려 있는 주된 신념은 하나님을 높게 보는 관점과 사람을 낮게 보는 관점이다. 교회는 하나님, 사람, 구원에 대한 올바른 관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복음이 없는 곳에는 교회도 없다! 만약 어떤 특정 교회가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있는지 그리고 그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 알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그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어떻게 다루는지와 어떻게 전파하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하나님, 사람, 구원에 대한 올바른 관점은 한 교회가 작동하는 방식에 많은 영향들을 미친다. 교회의 제1의 목적은 무엇인가? 교회가 거룩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교회 회중의 자격들과 책임들은 무엇인가? 권징은 어떻게 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의 답은 하나님, 사람, 구원에 대한 성경의 관점에서 나와야 한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
지역교회는 진리에 의해 거룩하여지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연합된 백성들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공식적인 진리의 전달자이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 깓락은 교회의 본질이 교회의 목적, 역할들, 예배, 회중됨을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그 본질에 있어서 거룩하고 연합된 상태이기에, 실제로도 거룩하고 연합되어 있다고 불린다. 이 목적을 놓치는 것은 교회의 근간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 p.51 「제1장 “와, 시설이 정말 좋네요.”」 중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올바로 예배하는 새로운 방법들을 만들어 낼 자유가 없다. 그 까닭은 이 새로운 접근 방식들이 감정적인 체험을 쉽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진정으로 경험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스스로를 드러내시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진실로 하나님을 알 수 없다. 경배, 경외, 순종, 찬송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조명된 마음으로부터만 온다. 하나님의 말씀은 교회의 삶과 예배의 중심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부재한 곳에는 참 교회도, 참 예배도 없다.
--- p.93 「제4장 “행사들, 행사들, 행사들”」 중에서
성경에 따르면, 예배는 50% 대 50%도 아니며, 심지어 90% 대 10%도 아니라, 100% 하나님 중심이다. 예배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향해야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경지에 이르기까지 성도들의 덕을 세우고 잃어버린 자에게 죄를 깨닫게 할 것이다. 사람 중심의 예배는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지 못하고,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존재 안에 있을 자격이 원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지 못한다. 예배는 얼마만큼 말씀중심이 되어야 마땅한가? 그리고 예배는 얼마만큼 성령님에 의해 인도되어야 마땅한가? 다시 말해서, 예배는 지성에 있어 얼마만큼 객관적이고 규정적이어야 마땅한가? 예배의 얼마만큼이 마음으로부터 주관적으로 느껴지고 체험되어야 마땅한가? 예배의 인도자와 찬양팀은 음악의 박자와 형식을 가지고 회중의 감정들을 얼마만큼 불러일으키려고 해야 마땅한가?
--- p.115 「제5장 “하나님, 보세요. 예배드리고 있어요.”」 중에서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기 자신, 직업이나 가족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난미께 영광 돌리기 위해 교회에 가야만 한다. 그리고 만약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이 되신다면, 교회는 그리스도인의 모든 시간 계획에 있어서 중심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것은 많은 자칭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너무 지나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예배가 자신들의 삶의 다른 모든 활동들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여전히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동떨어진 채 자신들의 집에서나 공원을 혼자 거닐며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잘 예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함께 모여서 예배드리는 것만큼 말이다.
...
그리스도를 고백한 사람이지만 침례로 주님을 따르려는 소망을 증명하지 않고, 지역 교회에 복종하려는 마음의 의지가 없는 사람은 교회의 회중됨에 적합한 후보들로 여겨져서는 당연히 안 된다. 더구나, 만약 이미 회중에 속한 자가 습관적으로 회개하지 않은 죄 가운데 거하고, 교회의 책망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교회는 회복의 소망들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그리스도로 인해 부여받은 권위로) 회개하지 않는 지체를 권징해야 한다. 그래서 교회 회중됨은 말할 나의 없이 진지하게 고려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 p.140,157 「제6장 “드라이브-스루 회중됨”」 중에서
각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삶 속에 끊임없이 붙어 있는 죄들을 용인해서는 안 되는 것과 같이, 교회는 교회 공동체의 회중됨 내에 있는 습관적이고 회개치 않는 죄들을 봐줘서는 안 된다. 교회는 교회 전체의 영적인 고결함을 오염시키기 전에 반드시 누룩을 처리해야 한다--- p. 「고린도전서 5장 7-8절). 그러므로 필요한 경우, 하나님께서는 교회로 하여금 강력히 권징을 수행하게 하신다.
--- p.161 「제7장 “권징, 그게 뭐죠?”」 중에서
일반적으로, 신앙고백서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성경’을 자신들이 택한 신앙고백서라며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신조가 아닌 성경’이 그들의 신조다. 신조에 반대하는 입장에 스스로 긍지를 가지고 있는 그들은 일반적으로 신조 또는 신앙고백서가 믿음과 실천의 최종 권위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체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시각은 좋은 의도를 가진 마음에서 생겨난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 시각 또한 충분한 지식이 없는 생각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 “신조가 없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신조란 무엇인가? 신조는 당신이 믿는 모든 것이다. 신앙고백서는 무엇인가? 신앙고백서는 당신이 믿는 내용의 선언이다. 바로 이 선언은 말로 선언되거나 기록된다. 신조는 선언에서 표현된 것이나 함축된 것이다.”
--- p.202 「제9장 “우리는 신앙고백서가 아니라, 타협이 필요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