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힌두교가 변형된 것에 불과하다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불교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전을 보면 힌두교 사제들인 바라문Brahmin이 붓다와 정반대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붓다는 힌두교의 카스트, 계급제도와 희생 제물에 대해 비판하고 또 신의 존재를 부인하며 베다veda와 힌두경전의 권위를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불교와 힌두교는 공통점이 있어 보이지만 서로 확연히 다른 종교입니다.
--- p.39
불교는 과학적입니까?
대답을 하기 전에, 먼저 ‘과학’에 대해 정의를 내려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전에서 설명하는 과학은 이렇습니다. “과학이란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지식으로써 사실들을 관찰하고 테스트해서 보편적인 자연법칙으로 밝혀놓은 것이며, 객관적으로 연구될 수 있는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런 정의에서 보면 불교는 ‘과학’입니다. 불교의 중심적인 가르침인 고ㆍ집ㆍ멸ㆍ도, 사성제, 네 가지 고귀한 진실은 ‘과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중략) …
인간의 행위는 객관적인 측정이 가능합니다. 불교는 ‘과학’처럼 어떤 초월적 존재라는 개념 없이도 성립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 우주의 기원과 작용에 대해서 자연법칙의 용어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분명 과학의 정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붓다는 맹목적으로 믿지 말고, 질문하고 조사하고 검토하고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보라고 끊임없이 충고하고 있습니다. 불교는 과학적입니다.
--- pp.40-42
우리가 욕망을 모두 버리면 그 어떤 것도 얻거나 성취하지 못하게 되지 않습니까?
붓다의 가르침은 현재에 대한 불만족, 더 많은 것을 갈구하는 잘못된 욕망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필요한 것이 있고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을 구별해서, 필요한 것은 구하고 원하는 것은 자제하라 했습니다. 필요는 충족될 수 있지만 욕망은 밑 빠진 항아리처럼 끝이 없기 때문이지요.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이 있습니다. 최소한의 필요를 위해서만 수고해야 하고 이것을 넘어서는 욕망은 자재해야 합니다. 욕망이 있으면 반드시 고통이 있기 때문입니다.
--- pp.62-63
다른 종교들은 그들이 섬기는 신의 명령에 따라 옳고 그름을 가릅니다. 신을 인정하지 않는 불교는 옳고 그름을 어떻게 판단합니까?
불교에서는 탐심(貪心, 잘못된 욕망)과 진심(瞋心, 증오, 화)과 치심(癡心, 어리석음)을 삼독심三毒心이라고 합니다. 삼독심에서 비롯된 생각과 말과 행동은 우리를 행복(열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므로 나쁜 것입니다. 반대로 보시와 자비와 지혜에서 비롯된 생각과 말과 행동은 행복(열반)에 이르도록 하기에 좋은 것입니다.
신 중심의 종교에서는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인간 중심적인 불교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명료하게 알기 위해서 자기 성찰을 통해 자기 이해를 개발해야만 합니다.
이런 이해의 바탕 위에 확립된 윤리는 신의 명령에 응답하는 형태의 윤리보다 더 견고합니다.
불교는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세 가지를 따지는데 동기, 결과 그리고 행동입니다. 동기는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고, 결과는 타인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 pp.88-89
살생을 피할 수 없을 때도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질병을 퍼트리는 생물이나 무엇인가 내 생명을 위협하는 경우 말입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좋지만 상대의 입장은 어떻겠습니까?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들은 살고 싶어 합니다. 내가 살고 싶어 하는 만큼 다른 생명들도 살고 싶어 합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벌레나 곤충 같은 것들을 죽이면 자기는 좋지만 상대는 고통이 될 것입니다.
살생을 하는 것이 불가피할 때도 있습니다만 붓다는 의도된 살생은 반드시 결과가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살생을 하지 않는 최선을 선택해야 합니다.
--- p.92
술을 금지하는데 적당한 음주는 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요.
술을 맛으로 마시지는 않습니다. 사람이 혼자서 술을 마시는 것은 긴장감에서 해방되고 싶어서고, 여럿이서 마시는 것은 사회생활 때문입니다.
술은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의식을 왜곡하고 자각을 방해하기 마련입니다. 많은 양을 마시면 그 결과는 끔찍합니다.
--- p.101
통찰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어떤 경험을 하면, 즉각적으로 좋다거나 싫다는 반응을 합니다.
또는 그 경험이 연상시키는 생각, 기억에 빠집니다. 이런 과정으로 인해 사건을 사실과 다르게 왜곡합니다.
지금 현재를 그 자체로 알아차릴 수 있게 되면 자신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다르게 이해하게 되고 태도에 변화를 가져옵니다.
자기를 바로 알게 되면 새로운 삶, 이전보다 더 나은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통찰 수행을 지속하면 자기 자신과 경험을 분리해서 볼 수 있게 됩니다.
일상에서 부딪히는 자극과 유혹에 즉시 반응하지 않고 한 걸음 떨어져서 현명하게 선택하여 행동하게 됩니다.
나아가 자기 인생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되는데 자신을 컨트롤하는 힘은 강철 같은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사띠파타나 위빠싸나 수행을 지속하면 자연스럽게 얻게 됩니다.
--- pp.125-126
자신을 먼저 돌보고 난 다음에 다른 이를 도울 수 있다고 했는데 이건 이기적인 게 아닌가요?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염려하는 것을 이타적이라 하고, 자기만 생각하는 것은 이기적이라고 합니다.
불교는 이기적, 이타적과 같은 양자택일의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두 가지를 혼합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할 듯합니다.
순수한 자기연민은 타인도 나와 같다는 인식을 하게 되고 타인에 대한 연민으로 성숙해질 것입니다.
자기와 타인을 동일시하고 행동하는 것이 진정한 자비이며 붓다의 가르침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보석입니다.
--- p.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