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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지 않게 슬픔을 이야기하는 법

슬프지 않게 슬픔을 이야기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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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8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248쪽 | 330g | 128*188*20mm
ISBN13 9788901244549
ISBN10 8901244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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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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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두렵다고 평생 외면할 순 없었다. 그래서 나는 품속으로 달려든 미움을 안아주기로 했다. 위로받고 싶어서, 이해받고 싶어서, 다정한 숨결이 그리워서, 자존심과 품위 따위는 던져버리고 달려와 엉엉 우는 나를 품어주기로 했다. 초록이 지면 단풍이 피듯 미움도 슬픔도 자연스레 물드는 과정일 테니까. 나는 그렇게라도 살아야 했다.
--- p.7, 「프롤로그_나를 안아주세요」 중에서

그땐 그랬다. 맞벌이 부모님 대신 「달의 요정 세일러문」, 「사랑의 천사 웨딩피치」, 「지구용사 선가드」와 함께 저녁을 보냈다. 때론 책상 위에 이불을 덮어 텐트를 만들고 그 안에 셋이 꾸역꾸역 들어가 공작질을 했다. 그때의 우린 너무 어려서 넉넉하다거나 부족하다는 개념도 없이 그저 꽁냥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면 충분했다. 아니, 그랬다고, '나만’ 생각했었다.
--- p.15, 「지랄맞은 18번의 이사 유랑기」 중에서

식구(食口)의 사전적 정의는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 단어의 위대함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처음엔 그저 효도 차원에서 선심 쓰듯 냈던 시간이 욕심부려도 나무랄 것 없는 선택이었음에 감사하다. 끼니를 함께 먹는다는 것은 시간을 나눈다는 뜻이니까. 기꺼이 추억 한 편을 내준다는 뜻이니까.
--- p.32, 「가성비로 지킨 가장의 품위」 중에서

언젠가 아빠가, 「부모와 자식의 기울기’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부모가 이끌던 삶이 어느 순간 자식이 이끄는 삶으로 바뀔 때가 오는데 그때가 요즘인 것 같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키오스크가 낯선 그들을 대신해 주문은 자식의 몫이었고, 기차와 지하철이 혼재된 승강장에서 길을 찾는 것도 자식의 몫이었다. 부모님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자식 눈치 보는 중년이 되었다.
--- p.54, 「부모와 자식의 기울기가 바뀔 때」 중에서

애석하게도, 나는 할머니와 각별한 추억이 없었다. 그래서 이기적이게도, 나는 할머니의 죽음에 빗대어 아빠와 나의 미래를 그렸다. 아빠의 마지막에 나도 저런 모습일까. 죽음은 도무지 익숙해질 수 없으니 아무리 준비된 이별이라도 결국 죄송한 마음만 품게 될까. “납골당은 죽은 자를 위하는 공간이 아니라 남은 자의 슬픔과 죄책감을 덜어주는 곳”이라던 아빠의 말을 그때에는 이해하게 될까.
--- p.74, 「안녕, 나의 작은 아빠」 중에서

나는, 「왜’를 알려주는 너의 다정함에 부끄러웠다. 내게 상처받았으면서도 우울에 옴짝달싹 못 하는 내가 가여워 기꺼이 먼저 손을 내민 너의 배려에 부끄러웠다. 어떻게 그 감정들을 이겨내고 있는지 번호까지 붙여가며 설명하는 너의 상냥함에 부끄러웠다. 서로가 예민한 것뿐이니 시간을 두면 나아질 거라 여긴 너의 믿음에 부끄러웠다. 그래서 우울을 경험하고 나서야 너를 떠올린 내가, 너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 p.165, 「내가 너를 갉아먹었구나」 중에서

시간도 돈도 넉넉히 잡고 떠난 유럽 여행. 오래 기다려온 만큼 충분히 설레고 신나는 시간들이었으나 그게 다였다. 지랄 중의 상지랄은 돈지랄일지니 그렇게 써대는데 안 행복할 리 있나. 나름대로 품격 있는 식사를 하고, 끼니마다 술을 곁들이고, 자고 싶을 때까지 자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엔 바닷바람 맞으며 멍하게 앉아 있고. 이런 삶이라면 그곳이 유럽이든 한국이든 행복할 게 분명했다.
--- p.194, 「달곰씁쓸한 돈지랄의 추억」 중에서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삶을 100퍼센트 실천하고 있다면, 나는 지금 당장 수행자의 길을 나서는 편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완벽하지 않고 성숙하지 않다. 그렇기에 아빠와 싸우고 화해하기를 반복할 것이고, 깊은 우울에 빠졌다가도 스스로 헤어 나올 것이며, 사람들과 둑을 쌓고 살다가도 허물 준비를 할 것이다.
--- p.246, 「에필로그_서툴러서 그래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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