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지금의 이 편안함을 느낀 것은 아니다. 42세에 혼자가 되었을 때는, 매달 받는 금액이 많지 않은 계약직 사원이었다. 집세를 지불하고 나면 저축은 거의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노후의 거처나 생활을 걱정하며 앞으로 어떻게 될까 하고 불안해서 잠 못 이룬 밤도 있었다. 그런데 그럴 때면 이렇게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어느 정도 하고 싶은 일들은 다 해보았다. 그러니 달리 방법이 없게 되면 최악의 경우 죽으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이상하게도 불안이 사라지고 긍정적이 되어 뭐든지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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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마주했던 ‘미니멀리스트’라는 말을 찾아보니 정말로 적은 가구와 물건만으로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에게는 무리다. 소파와 텔레비전, 밥솥과 전자레인지가 없는 생활은 생각할 수도 없다. 매일 같은 옷을 입는다면 즐거움도 없을 것이고 매번 같은 식기로 식사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집안 정리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너무 많은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필요 없는 것, 좋아하지 않는 것은 지니고 싶지 않았다.
--- p.28
인터넷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기사를 써서 블로그에 올리기도 하고 20년 넘게 취미로 인터넷 경매 사이트도 이용하고 있다. 맛집이나 여행 투어를 검색하기도 하고 지도에서 장소를 확인하거나 최신 뉴스를 보기도 한다. 무언가 사려고 할 때 먼저 인터넷에서 종류와 가격을 검색한다. 이미지만으로 판단이 어려우면 매장에서 상품을 확인하고 인터넷에서 최저가 판매처를 찾기도 한다.
--- p.38-39
원룸인 탓에 침실 이외에는 방 전체가 거실이라고 볼 수 있는데 소파와 테이블, TV를 놓은 공간은 3평 정도 된다. 소파침대라면 이 공간에서 생활할 수 있을 정도인데, 특히 휴일에는 오랜 시간을 보낸다. 아늑한 소파에 기대어 과자를 먹으면서 TV를 보고 책을 읽고 인터넷 검색을 한다. 더없이 행복한 시간이다. 이곳에서 음악을 듣기도 하고 식사를 하기도 한다. 느긋하게 휴식 시간을 즐기며 몸과 마음 모두 쉴 수 있는 장소다.
--- p.47-48
5년 전쯤, 북유럽 잡화점에 있던 이 책상을 보고 첫눈에 반해버렸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북유럽 인테리어를 동경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는 복고풍의 클래식한 인테리어를 좋아해 짙은 갈색의 가구를 선호했다. 그런데 빈티지 느낌을 주는 진하지도 가볍지도 않은 갈색의 나뭇결에 매료된 것이다.
옛날부터 책상을 좋아해 결혼했을 때도 작은 것을 샀는데 어디까지나 책상 기능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것은 서랍장과 책상, 장식장까지 되는 다기능 제품으로 작은 방에도 잘 어울릴 것 같았다.
--- p.58-59
필요한 것만 지니는 심플한 생활을 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필요 없는 것, 사용하지 않는 것이 너무 많은 사실에 놀랐다. 차마 처분하지 못하는 물건들도 막상 없다고 해도 불편할 게 없는 것들이 공간을 얼마나 낭비해 왔는지를 깨달았다.
넓은 집이라면 가구 하나 늘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좁은 집에서는 작은 가구 하나라도 정리하면 생각보다 깔끔해지고 무엇보다 청소가 편해진다. 입지 않는 옷으로 서랍 속을 채우기보다 여유가 있는 편이 사용하기도 쉽다. 옷장 속의 행거에도 빈틈없이 빼곡하게 걸어놓기보다 여유가 있는 편이 한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어 좋다. 주름도 가지 않을뿐더러 옷 하나하나를 소중히 다루는 기분이 든다.
--- p.72-73
젊어서는 쇼핑과 멋내기를 무척 좋아했다. 주변 사람들이 내가 입고 있는 옷을 칭찬하는 것이 기뻐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도 멋을 내곤 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젊었을 때와 달리 갖고 싶은 것도 줄고 무엇을 입든 어울리는 것도 아니어서 생각처럼 나 자신을 꾸밀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무 옷이나 걸치면 어때, 라는 생각은 하고 싶지 않다. 나 자신을 위해서, 나 자신의 기분이 좋아지기 위해 멋에 대한 욕심은 버리고 싶지 않다. 지금 옷장에 있는 옷들은 모두 좋아하는 것들로, 앞으로도 계속 입고 싶은 것들뿐이다.
--- p.79-80
나는 옷을 선택할 때 색상과 디자인은 물론 소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마감이나 착용감도. 가끔 좋아하는 브랜드의 물건을 매장에서 체크하고 실물을 봐두기도 한다. 저가의 옷은 젊은 사람처럼 멋스럽게 입을 수가 없다. 역시 오래 입을 것을 전제로 만들어진 질 좋은 브랜드 숍의 옷이 좋다.
여름에는 주름이 잘 안 가고 잘 마르는 폴리에스테르제품도 입지만 역시 마와 면 소재를, 겨울에는 양털과 알파카, 캐시미어 등의 천연 소재를 좋아한다. 특히 코트는 오래 입고 싶어 망설임 없이 소재가 좋고 모양이 예쁜 것을 찾는다. 울에 캐시미어나 알파카가 혼합된 소재를 좋아한다. 스웨터도 마찬가지. 그리고 세탁은 물빨래를 선호하는 편이라 캐시미어나 마 재질의 옷도 코트 이외는 드라이 클리닝을 하지 않는다.
--- p.86-87
나이가 들수록 피부 고민도 점점 늘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고 있다. 기미, 주름, 처짐, 칙칙함 등등. 신진대사가 떨어지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화장품으로 할 수 있는 피부 관리는 한계가 있다. 비싼 미용 제품을 큰맘 먹고 샀다가도 그것을 계속 사용하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화장품 회사에서 영업일을 하며 피부에 관해 공부를 해서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데, 역시 제일 중요한 건 피부 건조를 막는 것이다. 자외선을 차단하여 기미가 생기는 것을 예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피부 건조에 주의해야 한다. 건조는 주름이나 피부 처짐, 칙칙함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 p.98-99
평일에는 만들기도 귀찮고 절약하기 위해 간단하고 검소한 식사를 하지만 휴일은 다르다. 친구나 아들과 외출할 때는 맛집을 찾는다. 물론 적당한 가격의 점심이지만 음식 값을 크게 신경쓰지 않고 먹고 싶은 메뉴를 먹는다. 매월 식비 예산에는 퇴근 후 외식비는 포함되지만 친구나 아들과의 외식은 취미, 오락이라고 생각해서 식비 이외의 생활비 예산 내에서 지출하고 있다. 주말 외식은 맛집 순례까지는 아니지만, 이것도 취미라고 생각하며 인터넷의 정보나 TV의 산책 프로그램에서 발견한 가게를 방문한다. 이것도 큰 즐거움이다.
--- p.123-124
나는 일하는 걸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일을 하며 타인에게 인정받고 대가로 보수를 받는 것이 뿌듯하다. 고등학교 때부터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아르바이트를 해서 샀다. 둘째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를 기다렸다가 파트타이머 일을 시작한 것도 내 돈이라는 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번 돈으로 산 것은 좀 더 소중하고 음식은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이런 성격 탓에 독신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모든 것을 직접 벌어서 생활하지 않으면 안되었을 때도 어떻게든 될 것이란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오늘까지 일터를 바꾸면서도 정말 어떻게든 잘해 오고 있다. 10대 때부터 키운 경제적 자립심이 지금까지 버팀목이 되어 준 것에 감사하고 있다.
--- p.140-141
일 때문에 지치고 피곤해도 집에 돌아가면 나에게는 자유로운 시간과 공간이 있다. 사치스러운 생활이나 여가는 즐기지 못해도 돈을 들이지 않고 즐기는 법도 알고 있다. 그리고 생활의 기반이 되는 일과 건강한 어머니와 형제자매와 아들이 있고 마음을 허락할 수 있는 친구도 있다.
당연한 것 같지만 이런 행복은 없다. 나라는 인간은 한 사람밖에 없으므로 나는 나일 뿐. 눈앞의 행복을 볼 수 있게 된 지금은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 않고 있다.
--- p.159-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