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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사과 편지
eBook

아버지의 사과 편지

: 성폭력 생존자이자 《버자이너 모놀로그》 작가 이브 엔슬러의 마지막 고발

[ EPUB ]
이브 엔슬러 저 / 은유 해제 / 김은령 | 심심 | 2020년 08월 14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5 리뷰 40건 | 판매지수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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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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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0년 08월 14일
이용안내 ?
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일부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29.39MB ?
ISBN13 9791156758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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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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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기다림은 끝내기로 했다. 아버지는 돌아가신 지 오래다. 그는 결코 내게 그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일에 대해 사과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상상해야만 한다. 상상 속에서라면 경계를 넘어 꿈을 꿀 수 있고 이야기의 깊이를 더해 현실과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 p.15

내게 편지를 쓰는 일은, 다른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행위는, 유약함을 뜻했다. 대신 사람들이 나에게 편지를 썼지. 나는 편지를 써야 할 만큼 상대가 내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지 않았어. 그러면 내가 우위를 잃고 불리해질 테니까. 이런 말을 하는 것조차 이상하구나. 네가 내 마음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나도 몰랐을 것이고 말하지도 않았을 이야기란다. 하지만 반박할 생각은 없다. 그건 진실이니까.
--- p.18

내 행동을 정당화하지도, 합리화하지도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야. 그보다는 나의 행동과 의도에 대해 설명하고 싶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너에게 이해나 용서를 이끌어내기 위해서가 아니야. 가장 깊은 곳에서 나오는 고백을 하려는 것이지.
--- p.29

나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네가 이야기한 엄격한 기준을 따르고, 내가 저지른 일을 범죄로 인정했어. 내 행동과 혹독한 태도가 너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고 너를 어떻게 파괴했는지 똑바로 대면했다. 하나의 인간으로 널 바라보며 너의 내면에서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경험하고 느끼기 위해 노력했다. 내 행동에 깊은 회한과 후회가 느껴지더구나. 나로 하여금 그런 일을 저지르게 만든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려 노력함으로써 내 행동에 책임을 지고 싶어.
--- p.30~31

넌 자신감 넘치고 기억력이 뛰어나며 지적이고도 행복한, 생기 넘치는 존재였지. 내가 파괴하기 전까지 너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너를 그토록 심하게 상처 입힌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거야. 시작부터 네 발목을 잡아 절뚝이며 걷게 만들어버렸지. 네가 나를 넘고 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고, 내 존재가 기만이며 실패임을 스스로 인정할 수도 없었다.
--- p.34~35

어머니나 아버지 모두 나를 위한 자신들의 계획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적이 없었다. 나에게 커다란 희망을 가졌기에 다른 형제자매를 대할 때보다 훨씬 더 가혹하게 나를 대했지. 나는 그들의 프로젝트였단다. 틀에 끼워져 완벽한 모습을 갖춰야 했지. 나는 모든 움직임을 감시받았다.
--- p.40

어둠이 내려앉는 시간이면 네 방에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어. 이 집의 다른 사람들은 잠들어 있고 깊은 잠에 빠진 네가 네 몸으로부터 분리되는 캄캄한 시간. 그림자 인간에 이끌린 나는 너의 침대에 앉아 있곤 했어. 너는 잠이든 척했지.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내가 가버리기를 간절히 원하면서. 나는 말을 하지도, 소리를 내지도 않았어. 침묵이 나의 권력이었다. 말은 주문을 깨뜨리고 현실을, 그 흉측한 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터였으니까.
--- p.75

어떻게 보면 내가 너를 미움받는 자리에 세워놓은 셈이었다. 그것이 네가 망가진 이유의 하나였지. 그들이 나를 비난할 수는 없었다. 나는 남편이었고 아버지였으니까. 그들에겐 내가 필요했으니까. 그러니 너를 비난하는 수밖에. 그들이 불행한 이유는 바로 너일 수밖에. 내가 화를 내는 이유도 너였다. 너는 모든 잘못된 일의 원인이었다. 너는 내 마음을 훔치고, 나머지 가족을 어둠 속으로 몰아갔지. 너의 이름은 이브였고, 가족의 몰락을 가져온 주인공이었다. 너는 고작 다섯 살이었어.
--- p.80

전부 솔직하지 못한 얘기겠지. 에비, 나는 너를 강간했다. 의사 행세를 하는 아빠인 내가 너를 강간했고, 지금도 강간하고 있어.
--- p.87

너는 내가 소유한 국가, 내가 불법으로 점유한 대지였으며 전리품이었다. 이 대지와 그 땅에서 자라는 모든 것을 망친다 해도 난 아무 상관없었어. 내 소유이기만 하면 그걸로 되었지. 네가 깨지고 부서질수록 좋았어. 그래야 잡기 쉬우니까. 더 다루기 쉬우니까.
--- p.88

나는 너를 경멸했다. 내게 살해된 희생자가 내 집에서 지내며, 아직 어린 자신의 존재가 분해되고 부패하는 과정을 매일 목격하게 함으로써 나를 고문했으니까. 내 비열한 행동의 결과를 마주하도록 강요했으니까.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 p.97

난 내 부모와 형으로부터 경험한 폭력과 잔인성을 부정하면서 네게 점점 더 심하고 파괴적인 폭력을 가하고 있었던 거야. 여기에 더해 부가적인 임무도 자리하고 있었지. 너를 더 순종적이고 조용하게 만들어 우리의 비밀을 폭로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나는 의로운 고문자가 되었다.
--- p.104

이브, 나는 네가 죽기를 바랐다. 너를 살해하기 위해 몇 번이나 시도했어. 내가 이미 망가뜨린 것을 죽이려 한 셈이지. 내가 저지른 일의 증거를 지워야 했으니까.
--- p.122~123

나는 어린 여자아이를, 내 몸집의 반만 한 아이를 때렸다. 손과 주먹을 휘둘렀고, 벨트를 채찍처럼 내려쳤어. 자비 없이 너를 몰아붙이며 온갖 심한 욕을 해댔지. 네 존재와 육체의 모든 것을 모욕했다. 너에게 수치를 주고 너를 소멸시켜 버리고 싶었어. 난 한계를 모르는 듯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네가 감히 고함을 치거나 빌거나 울면, 너를 협박하며 망신을 주고 네 존재를 부정했어.
--- p.124

나는 다섯 살 때 너의 몸을 가졌다. 네가 주지 않았는데도.
--- p.179

나는 너에게서 평범한 일상을 빼앗았다. 나는 너에게서 가족에 대한 개념을 파괴해버렸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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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학대한 부모를 살해한 한 청년은 법정 최후 진술에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그렇게 어려웠나요?”라며 끝내 사과하지 않은 부모를 원망했다고 한다. 우리는 고통스럽더라도 법정에 들어서는 태도로 이브 엔슬러의 의식에 참여해야 한다. 사랑으로 오독되는 학대는 생각보다 쉽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 오지혜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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