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을 읽은 친구들은 내 남편 얘기가 재미있다고 한다. 나는 별로, 보통인데. 나는 내 삶을 있는 그대로 쓰는 편이니까, 상대적으로 많이 나오는 사람이 남편이다. 다행히 뭐라고 써도 남편은 괜찮다고 한다. “자네가 빛날 수만 있다면 난 어떻게 돼도 좋네.”
내 글을 위해서라면 자기는 어떻게 써도 좋다고 한다.
며칠 전 이런 남편과 얘기했다. 주제는 “남편들은 젊으나 늙으나 아내 눈치 보고 산다.” 남편이 이런 말을 한다.
“내가 아내 눈치 가장 많이 보고 살 거네.”
내가 남편을 구속하고 살고 있나? …나는 안 그런다고 해도, 내 존재가 짐이 되는가? 그러나 이런 결론에 도달한다.
부부는 서로 신뢰하고 사랑하고 살기에 상대의 눈치 보는 건 당연한 일. 사랑하는 아내 마음에 조금의 못마땅함도 안 주려고, 세심하게 아내 의중을 보살피는 행위, 이걸 부정적 표현으로 ‘아내 눈치 본다’고 하는데, 긍정적으로 보면 남편의 ‘섬세한 아내 마음 살피기’이다.
--- p.35
“여보, 오늘 저녁은 쑥전이어요… 메밀가루 밀가루 조금 섞어 쑥 넣고 만든 쑥전 부침개.” 내가 이 말을 남편에게 여러 번 했으나, 남편 대답이 없어서 또 반복한다.
“오늘 저녁은 쑥전이어요. 메밀가루에 밀가루 조금 섞은 쑥전 부침개.” 남편이 짜증난 목소리로 “알았다고, 알았어” 한다. 말 많이 하는 것 싫어하는 남편.
그때야 나는 ‘앗차! 내가 또 말 많이 했구나’ 입을 다문다. 한 10분이나 지났을까, 내 생명이 정지된 것 같아서, 몇 번이나 말하고 싶은 걸 참는다. ‘이번엔 오래 참아야지’ 왜 나는 사람과 말을 하려고 할까. 그러다가 말을 참고 있는 내 꼴을 보니, 갑자기 웃음이 터진다.
남편이 왜 웃느냐고 한다. “당신하고 말하고 싶은 걸 참고 있는 내 꼴이 하도 우스워서… 다 참아도 웃음은 못 참겠네.” 내가 갑자기 크게 막 웃자, 어이없는지 남편 표정도 밝아진다. 남편이 차게 말하면 나는 더 따뜻하게 말해서 녹이면 되지. 그게 뭐 그리 어렵다고.
--- p.46
설날 이틀 전. 박 선생 댁에서 종일 공부하다가(놀다가) 저녁 7시쯤 집으로 돌아온다. 나는 노는 게 공부다.
그런데 두 어른이 잘 논다는 건 쉽지가 않다.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고 함께 즐거워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기에, 아이들은 놀다가 자주 싸운다. 승부 근성이나 이기심이 나오기 때문이다. 어른도 별반 다르지 않다. 상대를 제압하거나 지배하려고 하면 안 된다.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경청만 하고 있으면 ‘최고의 놀이’인 대화가 싱거워진다. 창의적이고 따뜻한 말로 대화에 새 물을 부어 주어야 한다.
공부하러 간다고 나간 내가 돌아오자 남편은 내게 부드럽게 묻는다. “공부는 잘하고 왔는가?”
공부하고 온 자녀를 나무라는 부모는 없다. 자녀가 공부한다고 하면 부모는 무조건 기뻐하면서 최고로 대우한다. 그렇듯이 가장(家長)인 남편은 아내를 양육하고 보호할(에베소서 5:29) 의무가 있다. 공부하는 아내를 도와야 한다.
--- p.60
누가 생선 가게에 가서, 이 생선이 중국산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생선 장수 아주머니가 이렇게 대답했단다.
“다 같은 서해 바다에서 잡은 생선인데, 한국 사람이 잡으면 한국산이고 중국 사람이 잡으면 중국산이지….”
그게 무슨 큰 차이가 있다고 따지느냐고 반문하더란다.
참 재치 있는 말같이 들리고 얼핏 들으면 그럴 듯도 한 말이다. 그러나 이 그럴듯한 말을 조심해야 한다. 같은 바다에서 잡은 고기라도 저장 방법, 유통 과정에 이르기까지, 생선 한 마리가 시장에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중요하다.
중국 사람이 잡아서 내놓는 생선에는 중국 사람의 생선 다루는 방법, 인격이 담겨지고, 한국 사람이 잡은 생선에는 한국인의 생선 관리 방법, 인격이 담긴다. 시장에 나오는 생선 한 마리에도 그 나라 사람들의 수준이, 인격이 담겨져 있다. 생선뿐일까? 그 나라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도 그 나라의 문화, 전통이 녹아 있다. 그렇듯이 예수님 믿는 내 말, 삶 하나하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다 보여 주고 있다.
--- p.89
“사랑의 반대는 공포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나 증오가 아니고, 공포라고 한다.
나는 젊어서도 가슴을 잘 떨었다. 누구 만나러 갈 때, 더 떨렸다. 소설가가 되어(36세), 시인 친구와 같이 작가들을 만나고 오면 가슴이 심하게 떨렸다. 걷잡을 수 없이.
지금도 그 증상은 여전해서 작가들 아무도 안 만난다.
그때, 젊은 날. 외출하고 와서 무섭게 뛰는 가슴 진정하는 방법이 오직 하나 있다. 남편 등에 가슴을 대고 한참 있으면 진정된다. ‘아하 그게 두려움 없는 사랑이었구나.’
이제야 깨닫는다. 그때는 상한 심령을 주님께 아뢰지 못하고 남편 등에(사랑에) 기댔다. 지금은 주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니까 남편 등에 안 기댄다. ‘사랑의 반대는 공포.’
그때나 지금이나 남편은 내게 공포나 두려움 없는 사랑이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한1서 4:18).
--- p.92
오늘 아침 동생과 통화하고 끝내려는데, 동생이 이런 말을 한다(내가 아프다고 하니까).
“…목소리는 낭랑(朗朗) 18세네. 아니 다른 사람들이 말 안 하든가, 목소리 낭랑하다고?”
“형부 친구들이 전화 받으면 딸이냐고 하더라만, 낙랑 18세라고는 안 하더라.”
나는 동생이 말한 낭랑 18세를 낙랑(樂浪) 공주의 낙랑으로 잘못 알아듣고, 생각할수록 웃음이 쏟아져서(내가 낙랑 공주 목소리라고?) 남편에게 얘기한다.
“…그 앤 참 웃긴다니까. 나더러 낙랑 18세라고 하네요. 적국 호동왕자를 사랑한 그 어느 나라더라. 그 공주가 낙랑 18세 공주지요?”
“이모(애들 이모)가 말한 낭랑은 고조선 시대 한사군 낙랑은 아닐 거야. 맑고 명랑한 목소리를 말한 것이지. 사전 찾아봐, 인터넷에 들어가 보든지.”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동생이 말한 낭랑은 낙랑 공주의 낙랑과는 다르다. 18세 낙랑 공주로 착각하고 좋아한(?) 나는 한참 웃다가 동생에게 전화한다. 문자보다는 육성으로 전하는 게 실감이 나서.
“넌 참 사람 웃기는 재능이 있다. 그래서 오빠가 너를 그렇게 예뻐하고 사람들이 널 좋아하지. 네가 가진 큰 재산이다. 감사해라. 나도 ‘낭랑 18세’ 때문에 한바탕 웃고 났더니 정신이 맑아진다.”
동생이 질세라 곧 말을 받는다.
“내가 어디 부족한 데가 있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아닌가… 그 말(낭랑 18세)에 그렇게 웃는 언니가 마음이 맑아서 그렇지. 목소리만 낭랑 18세가 아니라 마음도 낭랑 18세네.”
“그러냐, 그러냐. 너를 참 못 당하겠구나.”
동생의 말에 내 마음도 낭랑 18세가 된다.
--- p.98~99
외출했다 돌아온 남편이 안방에서 한참 안 나온다.
연만한 남편이 오랫동안 조용하면 뭔가 불안하다. 큰소리로 묻는다. “여보 뭐 해요?” “나 내복 기운다고.” “그만 기워요, 인제 좀 버려요.” “더 입을 수 있는데 왜 버려?”
나는 못마땅해하면서 안방을 들여다본다. 머리가 하얀 남편이 방바닥에 앉아서 내복을 깁고 있다. 못마땅해하던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든다. 저 모습이 우리 집을 지켜 주는 숭고한 모습이구나. 떨어진 내복을 또 깁고 있는 남편(86세)의 저런 자세, 마음가짐이 이 집안을 든든하게 지켜 주는 울타리구나. 사람들이 보면 궁상맞다고 하겠지. 하나님은 어떻게 보실까? 아름답다고 하시지 않을까….
어머니는 평생 책만 보는 무능한 남편 옆에서 ‘몸빼’만 입고 그 많은 밭농사 지으면서 빚내서라도 자녀들 가르치고 집안을 지켰다. 내 남편은 헌 내복도 여러 번 기워 입으면서, 돈도, 계산도, 살림도 모르고 사는 아내 대신 집안 살림하고 있구나….
--- p.171
한 20년 전 미국 동부 지역에 한 달간 강사로 갔을 때, 필라델피아에 있는 내 2층 숙소. 나는 그 댁에 묵으면서 그 지역 여러 교회에 강사로 다녔다.
하루는, 숙소 부부(남편, 치과 의사)는 직장에 가고 나 혼자 큰 저택에서 쉬고 있었다. …갑자기 공포감이 몰려왔다.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창문을 열어야 하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창문이 안 열어진다. 한국에 있는 남편에게, 동생에게 울면서 전화한다. 남편은 창문을 열고 어서 숨을 쉬라고 하는데, 문이 열리지 않는다. 2층에서 1층으로 기어가듯이 내려가, 어떻게 현관문을 찾아서 간신히 열고 숨을 쉰다.
문밖으로 나가지도 못했다. 나갔다가 잘못해서 문이 닫히면 안으로 들어올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빠끔하게 연 문 사이로 숨을 내쉬면서 풍경처럼 보이는 옆집 마당을 바라보았다. 중년은 되어 보이는 수수한 차림의 주부가 마당을 쓸고, 그것을 담아서 들고 가 도로변에 있는 쓰레기 수거통에 버린다. 그 모습이 얼마나 평화롭게 보이는지…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던 내 나라, 내 집안의 일상이 몹시도 그리워서 울었다.
요즘 코로나로 집에 있으면서 가끔 그때 일을 생각하면서 지금의 일상을 감사한다. ‘나는 지금 그때 그토록 그리웠던 일상을 살고 있는 거야.’
나의 오늘하루는 ‘가장 자애로운 일상이다’ 하면서.
--- p.172~173
며칠 전, 가리개가 필요해서 신당동 가리개 가게에 가서 보니, 예상보다 비싸다. 맘에 든 디자인이나 색상이 없어 가게에서 나온다. 동행한 청계천 사모님은 내가 돈 부족해서 못 사는가 하고 자기가 좀 보태면 안 되느냐고 한다.
“아니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맘에 안 들어서요.”
오늘 남편이 외출하자, 나는 가리개를 만들기 시작.
집에 있는 일자(一字) 옷걸이에다 집에 있는 흰 레이스 천 조각들을 늘어뜨리고, 옷핀 꽂고 뽑기를 반복해서 가봉한 뒤, 손바느질해서 완성. 가게에서 파는 딱딱한 가리개보다 훨씬 고상하고 아늑한 분위기다. …오후 내내 거실 창으로 들어오는 밝은 빛 피해, 가리개 그늘에 앉아서 논다.
남편이 들어온다. 내가 가리개 밑에서 놀고 있는데, 답답해 보이는지 가리개를 한쪽으로 밀어 버린다. “답답하지요??…”?나는 가리개를 더 밀어 버리고 일어나, 남편 저녁을 차린다. 54년 함께 살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가리개, 남편이 ‘저리 밀어 버려도’ 괜찮다. 오래 살면 아름다워진다.
--- p.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