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기가 똑같지만 명암이 서로 다른 3가지 빨간색 종이, 즉 밝은 빨강, 어두운 빨강, 그리고 거의 언제나 희귀한 두 빨강의 중간 혼색을 찾는다. 만약 빨강 중에서 구할 수 없다면, 또 다른 색 중에서 명암이나 색조가 밝은 것, 중간 것, 어두운 것을 준비한다. 이것들을 서로 인접하도록 놓는데, 왼쪽에 있는 밝은 빨강 위에 중간 빨강의 가장자리를 포갠다. 다음에는 어두운 빨강을 중간 빨강 위에 올려놓되 중간 빨강 중에서 좁은 띠(약 0.5센티미터 너비)만 보이도록 남겨둔다. 이제, 아주 천천히 어두운 빨간색 종이를 오른쪽으로 잡아당기면서, 중간 빨강의 좁은 띠가 점차 넓어지도록 한다. 중간 빨강을 주시하면, 이것이 점점 넓어질수록, 오른쪽 가장자리 부분은 점점 더 밝아지고, 동시에 왼쪽 가장자리 부분은 점점 더 어두워지면서, 1가지가 아닌 2가지 빨강처럼 보이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이것을 여러 번 반복해보면, 중간색이 두 부모색을 뒤바뀐 위치에서 표현하면서 양쪽의 역할을 동시에 한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다른 색을 가지고 이 체험을 반복하면, 정확한 중간 혼색에서는 두 부모색이 똑같은 양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2가지 색 중에서 양이 더 큰 1가지가 자신의 우세함을 드러낸다. 이런 연습은 흥미로울 뿐 아니라, 특히 서로 다른 색이라든가 보색으로 그 범위를 확장하면 새로운 사실도 밝혀준다. 이 연습은 기본적인 잔상 현상인 동시대비가 모든 색채 속임수의 원인이라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pp.52-53
물감, 그림, 색지 또는 우리 주변에서 빛의 강도(명도)가 동일한 경우를 찾기란 때로는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자연이 이따금 파란 하늘에 뜬 뭉게구름을 통해 이것을 볼 기회를 선사해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구름은 수평으로 무리 지어 늘어서곤 하는데, 온전한 햇빛을 받는 윗부분에서는 눈부신 하양이 멀리 떨어진 진한 파랑과 확연히 구별되고, 밑부분은 그늘진 하양 같은 회색 톤으로 보인다. 이 그늘은 조금 전의, 그러나 여기서는 아주 가까운 파랑과 융합 또는 밀착된다. 왜 아주 가까운 것일까? 이 회색은 아래의 인접한 파랑과 빛의 강도가 똑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회색과 파랑 사이의 경계선은 사라지고, 우리는 구름이 어디서 끝나고 하늘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이런 구름은 해를 등진 채 관찰하는 것이 가장 좋다.
이런 도발적이면서도 대단히 섬세한 색채 효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종이(예를 들면, 질감이 서로 다른 경우)와 몽타주(테두리가 눈에 띈다든가 풀 자국이 있는 경우)로 인해 발생하는 온갖 방해 효과를 신중하게 미리 제거해야 한다. 따라서 빛의 강도가 동일한 2가지 종이를 상감(象嵌) 기법으로 부착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는 종이들이 포개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내부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종이의 두께는 보이지 않으며, 몹시 방해가 되는 그림자까지―종이들의 두께가 동일하다면―제거된다. 이음매가 보이지 않도록 정확히 맞추기 위해, 상감되는 종이들을 동시에 한 번에 잘라서 모양을 만든다. 칼이 날카로울수록(극히 얇은 면도날이 가장 좋다), 종이가 얇을수록, 자를 때 대는 바닥이 딱딱할수록(유리가 좋다), 더욱 잘 맞추어지며 이음매가 덜 보이게 된다. 또한 풀이 스며들면서 이음매가 눈에 띄는 것도 막아야 한다. 여기서 종이를 선택할 때 인내가 필요하듯, 그 표현 역시 기교와 깔끔함이 필요하다.--- pp.81-82
상대성은 기준의 변경, 표준적 규칙의 결여나 회피, 또는 관점의 변화에 의해 야기되는 것이다. 그 결과 1가지 현상에 다양한 견해, 해석, 그리고 여러 가지 의미가 붙게 된다. 이런 값의 불안정성이야말로 색채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잔상으로 인해, 가령 밝은 회색은 어떤 때는 어두워 보이다가 또 다른 때는 거의 하얗게 보이기도 하며, 또 녹색이 불그스름해 보이기도 하듯 어떤 색의 음영이나 색조같이 보일 때도 있다. 우리의 여러 색채 학습 중 대부분의 목적은, 색이 미술의 가장 상대적인 표현수단이라는 점, 그리고 우리는 물리적으로 무슨 색인지 거의 지각할 수 없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다. 색채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우리는 ‘상호작용(interaction)’이라고 부른다. 반대의 관점에서 보면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e)’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우리는 시지각과 청지각 사이에 아무런 연관도 없다고 배웠지만, 이제는 음의 변화가 들리는 동시에 색도 시각적으로 달라져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마치 음식과 그 그릇의 색깔이 식욕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키는 것으로 보아 혀와 눈의 지각이 상호의존적이라고 하듯, 이것도 물론 색채의 상대성을 더욱 분명히 해준다.
--- pp.8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