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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라 소년

달나라 소년

: 네가 어디에 있든 아빠는 너와 가장 가까이 있을게

푸르메 책꽂이-07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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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가족 에세이 top100 4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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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7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376쪽 | 495g | 145*210*30mm
ISBN13 9788960513266
ISBN10 8960513261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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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는 생후 7개월 때 CFC 증후군으로 진단을 받았다. (…) CFC란 병명 그 자체는 가장 눈에 띄는 증상을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심장을 뜻하는 ‘cardio’는 심장 기형/확대와 계속 들리는 심장 잡음을, 얼굴과 관련된 ‘facio’는 튀어나온 이마와 아래로 처진 눈 등 특징적인 안면 기형을, 피부를 지칭하는 ‘cutaneous’는 피부 이상을 뜻한다. 처음 내게 이 증후군을 설명해 준 유전학자는 전 세계에서 CFC 증후군을 앓는 어린이는 워커를 빼고 딱 8명뿐이라고 했다. 8명. 어떻게 이런 일이? 미지의 은하계로 내동댕이쳐진 느낌이었다. --- p.19

종류가 무엇이든 증후군을 앓는 아이를 둔 부모는 아이를 유전과로 데려가라는 말을 들은 날을 잊지 못한다. 진단과 관련해 지옥과도 같은 제2라운드가 시작된 날. 아이의 건강 문제, 치료할 수 있는 어떤 문제가 그 순간을 기점으로 과학의 문제로 돌변한다. (…) 세포분열 고속도로의 앞쪽 몇 킬로미터 지점에서 사고가 있었던 것이다. 출발점으로 되돌아가야만 하는 상황. 결혼반지를 바다에 빠뜨린 것과 비슷한 충격이었다. 바닷물 속에 빠진 반지는 되찾을 수가 없다. 이것은 우리가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득한 고대, 태곳적을 떠올리게 하는 관념. 어저께만 해도 정상적인 생명체의 일부였던 워커가 진화의 오류가 되었다. --- p.49

워커가 커 가면서 쯧쯧 혀 차는 소리로 소통하는 우리 둘만의 언어가 생겼다. “안녕, 나야. 난 너한테 쯧쯧 거리고 있어. 너한테만 하는 거야. 왜냐면 너하고 나 둘만 쯧쯧 소리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라는 식이었다. 그러면 워커는 “아, 안녕. 아빠, 거기 있네요. 나도 쯧쯧 소리로 대답하고 있어요. 우리만의 언어로 말하는 게 좋아요. 정말 재밌어요.”라고 답하는 것처럼 들렸다. --- p.52

어느 날 밤, 나란히 침대에 누워 있다가 막 잠이 들려고 할 때 요한나가 말했다. “장애아 부모들은 늘 이렇게 말해. ‘내 아이를 다른 아이와 바꾸지 않을 겁니다. 세상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난 바꿀 거야. 바꿀 수만 있다면, 학교에서 C를 받아 오는 제일 평범한 애하고 워커를 바꿀 거야.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즉시 바꿀 거야. 나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야. 워커를 위해서야. 워커의 인생이 너무나, 너무나 고달플 것 같아서.” --- p.108

CFC ‘천사’라는 숨은 ‘축복’을 주신 주님께 감사한다는 내용이나 신은 “특별한 부모에게 특별한 아이를 주신다.”라는 글은 거의 매일 올라올 정도였다. 나도 그런 심정을 이해는 한다. 워커는 내 삶의 형태를 결정지었다. 아마도 삶의 의미까지 규정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워커는 우리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는 중에 천사며 특별함에 관한 감상적인 설교를 들으면 메스꺼운 자기기만으로, 냉소적인 학교 분위기 속에서 불안한 치어리더들이 필사적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정당화하려 애쓰는 것으로 느껴졌다. 장애는 정치 혹은 대학 풋볼과 전혀 다를 바 없다. 각자의 필요에 따라 사람들이 나뉘어져 논쟁을 벌이면서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어두운 경험을 자기 입지를 강화하는 무기로 내세운다. 하지만 워커의 구체적인 삶은 양쪽 모두 허위임을 보여 준다. --- p.185

때로 임신한 여자들이나 곧 아이를 가질 생각이 있을 법한 젊은 여자들과 마주칠 때도 있었다. 콰지모도, 그리고 옆에서 뭔가를 중얼거리는 그의 경호원을 보는 순간 그들의 예쁜 얼굴에는 경계심이 스쳤다. 그들은 내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워커 같은 아들을 낳은 아버지 특유의 힌트를 찾으려고 했다. 그들의 표정을 보면 그런 아버지의 징후를 보이는 남자는 쉽게 알아볼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지극히 정상인 나를 확인한 그들의 얼굴에는 다시 경계심의 구름이 드리워진다. 일탈은 무작위적으로 발생하기에 우리를 두렵게 만든다. --- p.145

에스텝은 CFC가 인간 생물학의 정밀함을 보여 주는 증거라고 했다. “수태 시점에서 뭔가 잘못될 가능성이 있는 것들이 대단히 많은데 대부분은 수태와 동시에 유산됩니다. 아니면 임신 초기, 극히 초기 단계에서. 올바른 결합만 실현시키려는 자연의 섭리지요.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이미 임신에서는 소수의 사례에 속하는 겁니다. 그 지점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것들이 올바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만 하거든요.” 이는 워커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이었다. 워커는 망가진 것이 아니라, 신는 데 아무 지장이 없는 아웃렛 몰의 염가 구두처럼 약간 흠집이 있는 데 불과한 것이다. 에스텝의 표현을 빌면 워커는 “삶에 적합한, 살아 숨 쉬는 인간 존재인 유전적 배열”이었다. --- p.216

유전학자들이 제시하는 인기 모델에서는 각기 다른 질병이 각기 다른 유전자와 연관된다. 그런데 실제로는 전혀 종류가 다른 유전적 증후군들이 다수 증상을 공유하므로 심장 문제, 지적장애, 안면 기형이 여러 증후군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인간 게놈 내부에서 거리가 먼 다른 현장에서 어째서 똑같은 결과가 발생하는가? 유전학에서 발견한 내용을 밝힐 때 쓰는 모델―유전자 A가 상태 B의 원인이다!―은 복잡한 유전적 상호작용을 설명하기에는 너무 단순하다. 그래서 걱정스럽다. 인간 존재가 어떻게 이루어지느냐를 두고 지나치게 단순화된 모델이 인간 존재란 무엇인가에 관한 지나치게 단순한 모델로 이어지는 건 아닐까? --- p.235

워커는 불완전함과 취약함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지 증명하는 존재이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는 여러 길이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고, 진정한 기쁨을 느끼게 해 주며, 자칫 흘려 버릴 수 있는 일상의 사소한 것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끊임없이 알려 주는 존재다. --- p.237

“워커 같은 사람들이 없다면 이 세상이 어떨 거라고 생각해? 워커 같은 아이들, 그러니까 심각하게 지체된 아이들이 없다면?” 임신 중 검사가 얼마나 정교해지고 있는지를 감안하면 있을 수 없는 얘기도 아니었다.
“우주의 주인들만 있는 세상은 스파르타 같겠지. 다정한 곳은 아닐 거야. 잔인한 곳일 테지.”
“그렇다면 워커가 당신한테 뭔가를 가르쳐 준 거군.”
“워커는 우리가 얼마나 좋은 걸 가졌는지 깨우쳐 줬어. 우리 대부분이, 대부분의 시간에 그렇다는 걸. 우리에게 아무리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들, 그 아이와 비교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 p.239

워커는 일종의 렌즈로―특이한 형태의 렌즈이긴 하지만―그 렌즈를 통하면 이 세상을 보다 선명하게 볼 수 있다. (…) 아빠, 여길 봐요. 아빠가 놓친 걸 쳐다봐요. 속도를 좀 늦추기만 하면 돼요. 어떻게 하는 건지 내가 보여 줄게요. --- p.317

워커는 발레와 같은 효과를 낸다. 둘 다 이 세상의 더 큰 형체를 드러낸다. (…) 심각한 장애를 가진 아이의 잠재적 가치에 관해, 일생의 대부분을 고통 속에서 보내는 그늘진 삶의 의미에 관해 의문을 품은 사람에게는 이것이 하나의 답이 될 수도 있겠다. 워커의 삶을 현재 공연 중인 예술 작품, 집단 창작품으로 보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를 위해 그 아이를 보살펴 달라는 말에 당신은 수긍할 것인가? --- p.318

아내는 그 물건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멋지긴 한데 정말 괴상한걸.”
나는 그 물건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뒤집어 보았다.
“그걸 만든 사람들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팔릴 거라고 생각했을 거야.”
그러더니 요한나의 얼굴에는 새로운 표정이 떠올랐다. 순간적인 인지의 공백 상태. 내가 익히 아는 표정이었다. “내가 그걸 산 건 워커가 연상되었기 때문일 거야. 멋지지만 뭐가 뭔지 알 수 없다는 점이.”
---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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