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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도 있다

그럴 때도 있다

: 누구에게나 한번쯤 뜨거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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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7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336쪽 | 485g | 135*200*30mm
ISBN13 9788997256051
ISBN10 899725605X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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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사진 : 김현정
“그녀에게 사진은 기억의 저장소이자, 긴 여행의 기록이다” 저자는 청각장애예술가이다. 그녀에게 사진은 부재된 소리 대신 소통할 수 있는 새롭고 창조적인 세계였다. 한국에서 패션디자인을 공부하고, 런던으로 건너가 패션사진을 전공했다. 처음 그녀가 런던으로 유학을 간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우려와 걱정의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자신만의 방법으로 긴 여정을 아주 잘 마치고 돌아왔다. 그리고 지난 10여 년간의 기록을 이번 책에 담았다. 책이 어떤 이에게는 응원을, 공감을, 웃음과 희망을 전해줄 것이라 믿는다. 오늘도 그녀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는 중이다.
상명대학교 패션디자인과 졸업을 했다. BA Fashion Photography University of the Arts London, 2007 을 받았다. 2009 A day of Coffee(갤러리 온) & 기억의 저장소(신한 갤러리), 2012 다크나이트 라이즈(슈페리어 팝업 갤러리) 등 다수의 전시 및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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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 여행과는 너무나 다른 감정의 교차.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영국으로 혼자 떠나는 유학에 대한 긴장감과 두려움 때문에 혼자 눈물 흘리던 기억 속의 나는 참으로 작았다.
“떠나는 것도 용기가 있어서 해낸 것이니까 계속 그 용기를 잃지 않는다면 잘 해낼 거야.”
초면이었던 옆 자리 아저씨가 해준 말씀은 불안한 내 마음에 용기가 되었다.

유학이 요즘 시대에 그렇게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의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을 먹게 된 이유는 지극히 단순하다. 유학생활을 잘 해냈다는 말이 아닌, 그곳에서 보고 느끼고 배웠던 순간들을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청각장애인이라는 또 하나의 이름표를 갖고 있다. 보청기라는 작은 물체가 들려주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입 모양을 읽으면서 사회와 소통을 한다. 그러한 내가 연고도 없는 영국에서 얼만큼 해낼 수 있는지 그 한계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해보지도 않고 안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해보고 안되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면 되겠지 하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그곳까지 나를 이끈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혼자 느끼던 그 두려움을 떨쳐내고 싶었으며 청각장애인이어서 할 수 없을 거라는 일종의 편견을 깨고 싶었다.

그 중 진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세상에 대한 깨어있는 시각’이다. 즉, 더 나아지고 싶은 소망이 있었던 것이다. 한 인간으로서도 더 멋진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생각했다. 장애와 상관없이 무엇을 하든지 간에 잘하고 싶었던 마음 덕분에 떠날 수 있었고, 돌이켜 보면 무엇인가를 꼭 얻어야 한다는 강박보다 런던에서 누릴 수 있었던 소소한 일상들로 인해 조금은 더 깨어있는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다.

유학생활에서 무엇인가를‘ 꼭’ 얻어야만 한다는 강박 없이 새로운 공간에서 보통의 일상들을 만났고 그러한 경험으로 인해 조금은 더 깨어있는 시각을 갖게 되었다.

런던에서의 유학은 내게 혼자만의 긴 여행이었다.
이 길고 외로웠던 여행이야기를 한번 써보라고 엄마가 수없이 말씀하셨지만 용기가 안 났고 이런 저런 이유로 미루다 보니 어느새 5년이나 흘러버렸다. 용기를 내 나의 목소리를 내려고 할 때에는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난 탓에 기억이 흐릿해졌을 줄 알았는데, 그곳 사진들을 보는 순간 많은 추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서랍장에 넣어놓고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양말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 또한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다. 런던의 생활도 내 인생에 중요한 과정이었다. 이 여행길에서 만난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한층 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여행 중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태어날 때 많이 아팠던 나는 세브란스병원과 서울대학병원을 전전하며 검사를 받아본 후 급성폐렴에 의한 열 때문에 청력 손실이라는 결과를 받게 되었다.
이렇게 내 인생에는 청각장애인이라는 이름표가 붙어있게 되었다.
유아 시절에 애화학교에서 특수 교육을 받다가, 사회에 장애인이 적응을 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하려는 방법인 통합반이라는 시스템 아래 내보내졌다. 그래서 특수학교를 나와서 일반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쭉 일반 학교에 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이른 결정이었나 싶기도 하다. 1년이라도 좀 더 다녔더라면 학습능력 면에서 더 많이 배울 수 있었을 텐데 6살
부터 유치원을 들어가게 되면서 잘 못 듣는 상황에서 무척이나 많은 것을 놓쳐버린 것 같다. 입학한 일반 학교에는 청각장애인이 전교에 나 혼자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나의 어려움을 같은 상황이 아닌 비장애인 친구들이 쉽사리 이해해 줄 리 없었다. 강한 척 겉으로 티를 내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사실 많이 외로웠다.

(중략)

나의 열정은 지금도 계속 흐르고 있다.
---「청춘의 열정」 중에서

런던 유학,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두 가지 길이 있었다.
패션디자인을 전공하게 되면 한국의 대학교 졸업증서도 있고 해서 포트폴리오 준비를 잘했을 경우에 MA(대학원 과정)를 공부할 수 있고, 사진을 공부한다면 아예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BA(대학교 과정)로 배워야 했다.
학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에서는 대학원 과정이 좋을지도 모르나 내겐 학력보다 배우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사진을 전공하기로 마음먹었다.
패션이 좋아서 전공했지만 사실은 의류회사에 일할 자신이 없었다. 전화 통화 조차도 할 수가 없는데 의류회사에 들어가게 된다면 여러 측면에서 회사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한계에 부딪힐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면접을 봐도 떨어질 게 뻔했다. 학교 과제 때문에 자주 찾았던 동대문 원단 시장에서 분주하게 통화를 하며 돌아다니는 사회인들의 모습
들을 보면서 위축감을 느끼곤 했던 것 같다.

(중략)

흑백사진을 인화해보고 싶어서 지인이 쓰시던 암실을 이어받아서 혹독했던 겨울 추위를 참으며 인화를 했던 그 시절. 어두운 것을 무서워하는 겁 많은 내가 깜깜한 암실 속에서 눈이 침침해서 비비며, 폐인처럼 집중했던 그때의 작업 덕분에 포트폴리오에 넣을 사진들이 꽤 있었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취미로 찍은 다양한 종류의 사진들도 있었다. 그렇게 늦은 가을부터 추운 겨울까지 암실을 들락날락했던 일 덕분에 포트폴리오 준비가 수월했었다.
역시 미리 준비하는 자에겐 기회가 오나 보다.
인터뷰 당일, 그 동안 이것 저것 찍어오던 사진들을 분류해서 만든 포트폴리오 파일을 완성하게 되었다. 단순하고 평면적인 사진뿐만 아니라, 패션과 관련된 사진 작업 등의 입체적인 것들까지 다 싹 모아서 보여줄 수 있었고, 이러한 결과물들이 내가 사진에 대해 얼만큼 알고 있는지를 증명했다며 그 자리에서 파운데이션 1년 과정을 패스해줬다. 4년의 과정에서
1년 빼버린 것만 해도 얼마나 기쁘던지.
---「런더너가 되기 위한 시작」 중에서

도서관에서 DVD를 빌려보면서 배우의 입 모양과 함께 자막을 읽으며 영어의 흐름을 알아 듣기 위해 노력했다. 문장으로 배우는 것보다 회화로 배우는 것이 내게 가장 잘 맞는 방법이었다. 왜냐하면 입 모양을 읽으면서 알아듣는 나의 스타일에는 영화 속의 배우들이 말하는 것을 반복해서 보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아무리 친절해도 잘 못 알아 듣
는 나를 끝까지 배려하기는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나와 이야기해달라고 붙들 수도 없으니 영화 속의 배우들을 보고 또 보면서 감을 익히려고 했다. 그 덕분에 수많은 영화를 빌려보았고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1979년에 만들어진 영국 작품, [콰트로페니아Qadrophenia]다. 1964년 런던이 배경인 이 영화에서는 모즈룩MODS LOOK을 보여준다. 스쿠터와 모즈룩의 조화가 얼마나 멋지던지. 빌려본 후 바 로 매장에 가서 DVD를 구입했다.
그곳에 나오는 배경지는 남부 지방이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주인공이 스쿠터를 바다로 던져버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소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찾아가보기로 했다.

세븐 시스터즈Seven Sisters를 찾아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남쪽 해안가에 위치한 도시인 브라이턴Brighton에서 버스를 타고 해안가 길을 달린다.

(중략)

자연이란 것은 이렇게 장엄하고 아름답다. 영화에서 본 아름다운 하얀 절벽과 바다의 장면은 솔직한 그대로의 풍경이었다는 점이 굉장히 감동스러웠다. 카메라 렌즈로 담는 것보다 최고의 방법은 두 눈에 가득히 담아두는 것이다.

지금도 가끔 마음이 지칠 때마다 그곳을 떠올린다.
---「두 눈에 가득히 담은 그곳」 중에서

짧은 어학연수로 영국을 찾는 친구들이 매주 월요일이면 떠나고 새로 들어오고 한다.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상식이 늘어난 것 같다. 모두가 피부색이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문화권의 차이만 뺀다면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
따스한 햇살 아래 피크닉을 함께했던 독일 친구는 나의 고민에 이런 말을 했다.

“남들은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쉽다는데. 난 못 들어서인지 듣는 것이 더 어려워.”
“네가 못 듣는 게 어때서? 난 너의 억양이 한국식이라 어려운 거지 다른 건 잘 모르겠던데.”
“그래도 좀 더 잘 들을 수 있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어.”
“몸이 불편해서 움직일 수 없는 사람도 많은데 이 정도면 너는 행복한 거야.”

짧고 무뚝뚝한 그의 말에서 느낄 수 있었다.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린 일이란 것을!
---「행복의 정의」 중에서

런던에서의 첫 집은 대학교에서 연결해준 학생 기숙사였다. 같은 구조의 건물이 여러 채 있고, 샤워 룸이 개별로 딸린 5개의 방과 공동으로 쓰는 부엌이 있었다. 쉐렌 기숙사는 내가 곧 다닐 학교와 연결되어있어 학교의 재학생들이 살고 있었다. 나의 플랏 메이트들은 신기하게도 홍콩, 대만, 싱가포르, 그리고 한국 이렇게 아시아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중 홍콩출신 틴Tin은 청일점이었고 세인트 마틴에서 파인 아트를 전공하는 학생이었다. 언제나 즐거운 듯 크게 웃고 크게 행동하는 틴은 피터팬 같은 오빠여서 친해지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친해질 만하면 떠나 버리던 어학교의 친구들 때문에 외로웠던 옥스퍼드의 시간을 보상해주는 듯이 플랏 메이트들은 모두가 친절했고 착했다. 항상 우리들은 사이 좋게 요리를 해서 나눠 먹고 작은 파티를 열고, 갤러리를 같이 다니고 자신의 과에서 파티가 있으면 모두 함께 가서 맥주를 마시며 어울리곤 했다. 다른 곳에는 서로 의견이 달라서 싸우는 일이 많이 생긴다는데 다행히 우리들은 너무나 사이가 좋았다. 서로의 손님이 오면 모두 모여 환영을 했고 자신들의 요리를 만들어 대접하며 허물없이 화목하게 지냈다. 그렇게 사이 좋게 지낸 우리들이었기 때문에 기숙사 계약이 끝나 각자 뿔뿔이 흩어질 때 너무나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렇게 런던에서의 첫 단추가 잘 끼워지고 있었다.
---「Life in London」 중에서

구형버스는 인건비 문제 때문에 사라져버리고 말았다(현재엔 결혼 등 특별한 이벤트에만 깜짝 등장한다). 운전자와 뒤에서 요금을 받는 등 관리하는 사람 - 두 사람이 한 버스에 타기 때문에 인건비가 문제였다고 한다. 수많은 런더너들이 폐지하는 것을 반대했었음에도 안타깝지만 거리에서 사라졌다. 오래된 전통을 고수하는 런던도 물가상승에 따른 인건비 인플레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시내에 구형버스가 다니는 노선이 있었는데 없어지기 1년 전부터 자주 탈 기회가 많았다. 런던의 엔젤Angel에 살았을 당시에 노선이 있었기 때문이다. 뒤에 입구가 오픈 되어 있는 형식이라서 신호에 걸려서 정차되어 있을 때 버스를 발견하고는 달려가서 올라타기도 했었다. 그럴 때 표 받는 사람이 내 팔을 꼭 잡아서 당겨 주었고 자리가 어디에 있는지 일러주며
안전을 책임져주었다.
낡아서 구멍 난 쿠션이 일렬로 늘어선 좌석에 앉아서 마주하고 있는 사람과 눈웃음으로 인사를 하고 내릴 곳을 확인하기 위해 뒤를 돌아 창 밖을 내다본다. 오래된 버스는 내부가 좁아서 건너편에 앉아있는 사람과 무릎이 닿기도 하고, 간혹 러시아워 때 사람들이 한번에 많이 타게 되면 표 받는 사람이 안전을 위해 더 이상 못 탄다고 저지를 하기도 한다. 드라이버는 오직 운전에만 집중한다.
내릴 때가 되어 천장에 달려있는 전깃줄 같이 생긴 늘어진 선을 당기면 알아서 세워준다. 혹은 신호를 받아 정차할 때 눈치껏 뛰어 내리면 된다. 낡아서 녹이 슨 빨간색의 철판은 세월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정차할 때, 낡디 낡은 엔진이 덜덜 떤다. 마치 심장처럼.
---「낡은 엔진의 힘찬 박동」 중에서

처음 접해본 수업이 있었는데 과제를 어떻게 해서 제출해야 하는지조차 잘 이해가 되지 않아 머릿속이 깜깜했다. 수업 의도를 잘 파악하지 못한 채 단순하게 눈에 띄었던 냉장고 속 계란을 가져갔었는데 계란의 둥근 원형을 보며 자연스럽게 공동묘지로 아이디어가 떠올라 주제를 정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임기응변인 셈이다.
다른 친구는 성냥개비 같은 걸로 멋지게 큐브를 만들기도 했다. 자기 동네에 있는 구조물을 보고 따라 만든 것이라고 했는데 작업의 퀄리티를 떠나서 주변에 있는 것들로 연상을 한 아이디어에 감탄을 했다.
즉, 수업의 주제는 로케이션 - 장소에 대한 사진이었다.
나는 준비해간 계란판과 계란을 하얗게 칠했다. 왜 그렇게 만들었냐는 교수의 질문에 한국의 무덤은 동그랗다고 답했다. 산에 무덤이 있는데 그릇을 엎어 놓은 것처럼 둥근 형태라고. 왜 둥근지 자세하게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는 원만한, 둥근, 완화된 부드러운 곡선을‘ 미학’으로 여긴다고 그럴싸하게 설명했다. 자기네들의 묘지와 다르다는 점에 교수님께서는 흥미를 보이셨다.

(중략)

그렇게 사전 조사를 다녀오고 나서 리서치 북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그때 찍어온 사진을 보면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나열해보았다.
“외로움
차가운 지하.
따스한 수풀
온기
그리고 기억.”
---「Digital Image-Location」 중에서

학교보다 더 높은 출석률을 기록한 장소는? 바로 마켓이다.
사람 사는 모습을 훔쳐 볼 수 있고, 다양한 사람들이 한곳에 어우러져 있다. 영국에는 수많은 마켓들이 있고 신기한 것은 콘셉트와 스타일이 서로 겹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이어져 있는 마켓의 풍경은 런던을 찾는 모든 이에게 손짓을 한다.
주말에는 전기료가 싸서, 일찍 일어난 아침, 일주일 째 미뤄둔 빨래를 해결한 후 바로 마켓으로 갔다. 가장 좋아했던 마켓은 일요일 아침부터 오후 2시까지 하는 콜롬비아 플라워 마켓!
이스트 런던의 좁고 짧은 길에는 일요일마다 상인들이 모여 다양한 꽃들과 화분들을 판다. 평일에는 평범하고 조용한 동네길인데, 일요일이면 북적북적 활기로 가득하다. 그리고 많은 런더너들이 모여들어 꽃을 사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이다. 런던 사람들은 꽃을 무척 사랑하는구나 단번에 알 수가 있다.
꽃 향기가 가득한 좁은 길에 서로 어깨를 부딪혀가며 양 옆으로 두리번거리며 정신 없이 꽃 구경을 하다 보면 어느새 내 손에 꽃들이 들려져 있다.

(중략)

주말마다 열심히 예배를 다니던 사람들이 좋은 말씀 많이 들을 수 있다고 함께 교회를 다니자고 했다. 하지만 내 마음속 종교는 마켓이었다. 어떠한 것이든 믿음에 대한 자유가 있지 않은가?
주말마다 찾아가던 그곳은 내게 있어 신성한 믿음의 장소이자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공감하며 그들의 행복한 얼굴 속에서 많은 것을 학습할 수 있었던 배움의 공간이었다.
---「Sunday Market」 중에서

학교 수업이 없는 날은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바빴다. 간혹 친구들과 카페에 가서 수다를 떨기도 했지만 무엇인가 허전했다.‘ 하고 싶은 말’을 했지만, 무엇인가‘ 영감이 될만한 일’을 얘기하지 못해서일까?
과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좋은 방법은 산책이었다. 방 구석에서 머리를 쥐어 뜯으며 고민을 할 바에 콧바람을 쐬며 둘러보면서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었다.
혼자 걷다 보면 골목 구석구석 들어가보고 싶어지는 길을 발견하게 되고 들어가보면 페인트칠이 벗겨진 낡은 벽이라던가, 예쁜 우유 유리병이 놓여져 있는 현관문, 또는 집주인의 인테리어 감각을 훔쳐 볼 수 있는 커다란 창문. 그리고 정성껏 잘 가꿔진 정원. 현관 옆에 놓여져 있는 흙 묻은 고무장화 등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과 전혀 다른 주거 문화, 전형적인 영국의 모습들을 훔쳐보는데 정신이 없었다. 과제와 공부 걱정은 잠시 뒤로한 채.

(중략)

삶이란 것은 과시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자연스레 깃들어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러한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던 경험이 내게 큰 변화를 주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동네 산책을 하는 동안 나의 고민과 생각의 실타래들은 정리되어간다.
---「런던 산책」 중에서

보는 것에 대한 욕구가 강한 나는 거리의 풍경, 사람들의 옷차림, 잡지에서 읽는 이미지, 갤러리에서 얻는 고전의 미학, 친구들과 커피 한잔의 이야기 등등에서 아이디어를 찾아냈고 그것을 꾸준히 메모해왔다. 언제나 술술 나오는 생각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러한 리서치가 나중에 다시 작업을 위한 생각을 정리할 때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리서치의 습관은 학교를 다니면서 과제를 진행할 때마다 새로운 방식으로도 배웠으며 또 다른 경로로는 작가들을 통해서 깨달았다. 그들도 그냥 술술 써 내려간 것만은 아니었고, 주변 환경에서 받은 경험에 자신들의 상상력을 더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느낄 수 있었던 계기는 스코틀랜드로 여행을 갔을 때에 시작되었다. 그곳에서 초록색 빛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보며 감탄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검은 구름이 몰려오면서 비바람으로 변해버린 날씨. 정신이 쑥대밭이 되는 와중에도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에서 나올법한 풍경을 보게 되었다. 중학교 시절, 늦은 밤까지 놓지 못하고 읽었
던 책 속 히스클리프의 광기와 캐서린의 죽음의 대목을 보면서 울었는데 그런 감정을 되살아나게 하는 풍경에 깜짝 놀랐었다. 글을 통해 느끼다가 그곳에 서서 직접 마주하던 순간을 통해 모든 창작에는 환경이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다는 것을 알아버린 것이다.

(중략)

매일 마실 물을 길어 올리는 우물처럼 아이디어가 퐁퐁 샘솟는 일명 아이디어 우물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나의 기억은 모든 것을 다 쥐고 살 수 없었다. 특히나 나는 맛있게 먹었던 음식 이름도 잘 외우지 못하고 또 숫자에 엄청 약하다. 동그라미 하나를 뺀 가격으로 싸다고 생각하고 집다가 다시 세어보고 슬그머니 내려놓은 적도 많은 내가 항상 추억만 먹고 살기는 어렵다.
그러한 내게는 기록이 굉장히 중요한 방법이자 없어서는 안될 요소이다. 내 머릿속의 지우개처럼 지워져 버린 기억을 리서치 북을 들여다봄으로써‘ 아, 맞다’하고 또다시 연필로 쓱쓱 그리게 되니까 말이다. 즉 리서치 북은 내게 발상법이 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면 스크랩을 해서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며 한번 흉내내보고자 했다. 그러한 흉내는 항상 완벽하게 나오는 것이 아닌 또 다른 이미지로 재구성이 된다.
---「리서치 북」 중에서

런던의 익숙함에 가끔씩 지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런던을 미워하기보다는 가방을 싸서 잠시 떠나는 편이 좋다. 여행 후 돌아오면 또다시 런던과 첫사랑 시작하는 듯이 마음가짐이 새로워진다.
나는 사실 여행을 잘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언어가 뛰어나거나 친화력이 좋아서 현지인들과 잘 어울리는 것도 아닌 데다가 겁이 많은 편이고 게을러서 똑 부러진 여행자는 아니다. 뭔가를 꼭 봐야 한다기보다 그 자체를 일상처럼 즐기는 것이 내 여행 포인트이다.
솔직하게 고백을 하자면 나는 파리를 8번도 넘게 갔지만 에펠 탑을 한번도 오르지 않았다.
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올라가고 싶다는 이유로.
기회는 찾아 오지 않았고 지금의 나는 예전처럼 가기 쉬운 상황이 아니지만 하나도 아쉽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나와 파리와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 약속은 언젠가 파리를 다시 찾아갈 수 있는 이유이다.

(중략)

낯선 곳에서 느끼는 적당한 거리감 때문에 외롭기도 하지만 그러한 기분을 벗어나고 싶지 않은 미묘함을 뷰 파인더 속에서 찾아내는 재미가 있다. 나의 여행은 사진 일기인 셈이다. 언어, 문화 그리고 인종은 달라도 사람 사는 냄새는 어딜 가나 비슷했다.
그런 평범한 일상들을 찍은 사진들이 곧 나의 스토리텔링이다.
---「그곳과의 약속」 중에서

다시 돌아온 서울은 내게 편안함을 주는 홈 그라운드이다.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으며 엄청나게 빠른 인터넷 속도를 즐기며, 매운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 잘 맞는 운동화처럼 편안한 내 집이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런던의 추억과 그리움이 남아있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답답하고 모든 일 처리는 느릿하지만 반면에 풍요로운 문화에서 우러나온 여유로운 일상은 나의 머리에 콕 박혀버렸는지 지금도 따사로운 햇살 아래에 주근깨 걱정은 잊은 채 일광욕을 하며 한강 공원에 누워있는다.
뽀얗고 잡티 하나 없는 피부가 부럽지 않은 이런 마인드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도심 속 공원에 누워 따스함을 온몸으로 느끼던 런던 사람들의 모습들을 많이 보아서일까? 내추럴한 라이프 그대로가 편안했던 런던이었기에 내 성향 그대로 자연스럽게 된 걸까?
어쨌든 런던에서의 라이프는 내게 큰 변화를 준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나는 서울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그러한 라이프를 지속하고자 노력을 하고 있다.
자신감은 자신을 사랑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남과 비교를 하지 않고 자기자신을 그대로 사랑을 해주면서 꾸준히 공부를 해야 한다. 어떠한 것이든.
---「서울의 피터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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