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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8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130쪽 | 122*185*20mm
ISBN13 9788993874730
ISBN10 8993874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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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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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起牀)하자마자 발밑을 확인했다. 두꺼운 이불을 들치자 투박한 흑갈색 몸뚱어리가 보였다. 더 자렴. 머리를 토닥여준 뒤 욕실로 향했다. 어젯밤 늦게 잠에 든 탓인지 눈 주변이 거무스름하게 물들어 있었다. 붙박이장을 열어 아직 포장을 뜯지 않은 샴푸를 꺼냈다. 호정이 제비꽃 향기가 좋다며 품에 안겼던 값비싼 샴푸다. 나는 제비꽃 향기를 맡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좋네, 하고 맞장구를 쳤던 것 같다. 손에 힘을 주자 보랏빛의 걸쭉한 액체가 조금 밀려 나왔다.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고 숨을 들이켰지만 이게 정말로 제비꽃의 향기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문득 불쾌한 느낌이 들어 정신을 차려보니 병을 지나치게 찌그러트린 탓에 내용물이 손을 타고 바닥으로 뚝뚝 흐르고 있었다. 아, 이거 비싼 건데. 재빨리 무릎을 굽혔다. 바닥에 흘린 샴푸를 긁어모아 머리에 발랐다. 보라색 같기도 하고 조금 더 탁한 것 같기도 한 색의 거품이 타일 사이사이를 메웠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고 샴푸를 들어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캉, 하는 경쾌한 소리를 되새기며 옷장 문을 열었다. 어차피 검은색 천지인 옷더미 앞에서 고민하는 것도 우습다. 저번 달에 상설매장에서 구입한 투피스를 꺼내 입었다. 눈 밑의 얇은 살에 파우더를 펴 발랐다. 이불을 걷고 송충이를 안아 올렸다. 털이 듬성듬성 난 몸뚱이가 꾸물거리며 어깨 위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거울 앞에서 몸을 이리저리 비춰 보았다. 송충이를 어깨에 짊어진, 그럴듯하게 단정하고 창백한 여자가 경직된 미소를 짓고 있다. 고개를 돌려 송충이와 눈을 맞췄다.
자, 이제 가자.

새 학기의 첫날은 비린내가 났다. 비 오는 날의 냄새와 갓 중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의 것이 한데 뒤섞여 콧속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아직 교복 공동구매가 시작되지 않은 탓에 교실 안은 온갖 색들이 뒤섞여 전체적으로 어지러운, 조금은 얼떨떨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 나는 깃이 닳은 진녹색 셔츠를 입고 조심스레 앞자리 앉았다. 누군가 거리를 좁혀올 때마다 기대감에 입술이 움찔거렸지만 아이들은 나를 지나쳐 뒤로 혹은 앞으로 갈 뿐이었다. 셔츠가 칠판과 같은 색이라서 나를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몸을 이리저리 틀어봤지만 결과는 같았다. 그때 옆자리의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났다. 연분홍색 소매가 시야에 들어왔다.
너, 물속에서 눈 뜰 수 있어?

옆을 돌아보자 눈을 크게 뜬 여자아이가 고개를 기울인 채 웃고 있었다.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은 아니었는지 여자아이가 내 짧은 머리칼을 가리키며 예쁘다, 하고 또 웃었다. 샴푸값이 아까워서 자른 거야. 이것도 감은 지 사흘 됐나. 하는 말들을 어금니 뒤로 숨기며 마주 웃어줬다. 호정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햇빛이 온통 이쪽으로 모여 밖에 비가 내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눈이 지나치게 부셔 이마를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호정과 헤어져 집으로 가는 길에는 유난히 발에 차이는 돌멩이가 많았다. 누군가 지구의 모든 돌 부스러기와 지면 아래 있는 오래된 뼛조각들까지 내 앞에 와르르 쏟아놓은 것 같았다. 집으로 통하는 지름길에는 커다란 바위가 난데없이 버티고 있었다. 발로 차고 밀어도 봤지만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거칠거칠한 표면에 손바닥이 긁혀 생채기가 났다. 이러다 아틀라스 같은 꼴이 되어버릴 지도 몰라. 아니, 이건 시시포스인가. 하는 수 없이 옆 건물을 돌아봤다. 건물의 뒷문으로 나가 옆 골목을 통하면 될 터였다. 우산을 접고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우산 끝에서 빗물이 새어 나와 바닥에 깔린 먼지를 적셨다. 축축한 먼지 덩어리가 내 발뒤꿈치를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렸다. 빗소리와는 종류가 다른 것이었다. 물장구를 치는 것 같기도 했고, 누군가 허우적거리는 소리 같기도 했다. 일 층에는 출입구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소리를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참의 벽면에 붙어있는 비상등의 초록색 인간이 달려가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계단 끝에는 빛바랜 명패가 달린 철제문이 버티고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한자를 읽어 내려갔다. 가맥...상사? 해맥 상사? 문에 귀를 가져다 댔다. 아까부터 들리던 물소리와 함께 다른 것들이 들려왔다.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고대의 언어로 중얼거리는 것 같기도 했고, 뭔가 불에 타들어 가는 소리 같기도 했다. 순간 귀를 너무 가까이 댄 탓에 문이 밀리면서 내부가 드러났다. 순간적으로 쏟아지는 햇빛에 눈을 찌푸렸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수십 개는 족히 돼 보이는 선반 위의 수조들이었다. 잔뜩 이끼가 낀 불투명한 유리 사이로 커다란 물고기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햇볕이 강해지자 피부가 우둘투둘한 회색 물고기가 끈적한 물 위로 주둥이를 내밀며 푸, 하고 숨을 토해냈다. 노인이 수조들을 등진 채 창밖을 보고 있었다. 예정에 없는 방문자에게도 관심이 없는지 노인은 이름 모를 풀만 씹고 있었다. 무릎을 굽혀 선반 아래 칸을 살피자 통에 갇힌 갑각류 같은 것들이 다각다각 소리를 내며 경계의 몸짓을 취했다. 안쪽으로 걸어 들어갈수록 통의 크기는 점점 작아졌다. 가장 마지막의 통 안에는 털이 돋은 조그만 덩어리가 누워 있었다. 송충이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벽면에 달라붙어 이리저리 몸을 흔들었다. 나도 얼떨결에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송충이가 들어있는 통을 들고 노인에게 걸어갔다. 잠시 송충이를 들여다보던 노인이 쭈글쭈글한 손바닥을 내밀었다. 파란색 지폐를 두어 장 올려놨지만 노인의 손은 여전히 나를 향해 있었다. 나는 지폐를 다시 주머니에 구겨 넣고 노인의 손을 잡았다. 노인이 오므라든 입술을 양옆으로 늘이며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러고는 다시 수조를 등지고 풀을 꾹꾹 씹기 시작했다. 송충이는 그날부터 나와 함께 자랐다.

호정은 그 날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 데에 썼다. 내 책상에는 항상 다른 아이들이 오 분 십 분씩 머물렀다 떠나곤 했다. 호정과의 별 것 아닌 잡담에도 아이들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고 그 방울 같은 얼굴로 던지는 엉뚱한 질문에는 끊임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호정은 내게 질문하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비행기는 후진할 수 없어? 달에서는 무슨 냄새가 날까? 신의 자격은 뭐라고 생각해? 나는 한 번도 대답하지 못했다. 호정은 당황하다가도 다시 미소를 지으며 내가 흥미를 느낄 만한 화제를 꺼내곤 했다.
너, 무슨 영화 좋아하니?
생각 안 해봤는데.
이 영화 알아? 히키코모리 여자랑... 한강에 조난한 남자가 사랑에 빠지는 영화인데, 알아. 되게 이상하게 들리지? 그런데 정말 좋다니까. 오늘 우리 집에 와서 같이 볼래? 정아야.

호정의 집은 주인을 닮아 있었다. 한족 벽면을 차지한 커다란 창에서 노르스름한 햇살이 들어와 커다란 거실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장식장에는 성실하게 학교에 다녔다면 으레 받을 법한 빳빳한 상장들과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여자 모양의 공예품 같은 것들이 들어차 있었다. 텔레비전 위에 걸린 가족사진에서는 호정과 비슷한 얼굴을 가진 부부가 뿌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호정의 방은 우리 집의 안방보다도 넓었다. 나는 온통 새하얗기만 한 가구들과 침대에 달린 불투명한 캐노피가 불편해 자꾸만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을래?

호정이 가져온 옷에선 우리 집에서 사용하는 때 낀 섬유유연제 통에서는 절대로 나지 않을법한 달큰한 냄새가 났다. 갈아입은 티셔츠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자 호정이 어, 덜 말랐나? 하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영화는 한강 한복판에 고립된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남자는 한참을 절망하다가 결국은 뭔가를 찾아 먹는다. 먹는 것으로 시작해서 먹는 것으로 살아간다. 짜장 라면을 먹기 위해 옥수수를 심고 콩을 키운다. 짜장 라면을 위해 살아가는 삶을 지켜보는 다른 사람이 있다. 여자는 방에 틀어박혀 온종일 다른 여자들의 사진을 찾아 훔친다. 나름의 사이클도 있다. 운동도 하고 망원경도 들여다본다. 남자는 망원경 안에 잡혔다. 여자는 남자를 위해 자장면을 배달시켜준다. 배달원은 오리배를 타고 자장면을 건네주지만 남자는 고개를 젓는다. 배달원의 얼굴이 땀에 젖은 채로 일그러진다. 여자는 돌아온 자장면을 꾸역꾸역 집어삼킨다.
남자가 보낸 거대한 희망을 맛보려 합니다. 정말 희망의 맛이 맞습니다... 진짜루.

이런 직설적인 대사도 잊지 않는다. 아마 영화의 주제는 희망인가 보다. 그리고 어느 영화나 그렇듯 고난과 역경의 시간이 지난 후 두 사람은 드디어 달리는 버스에서 상봉한다.
마이 네임 이즈 김정연. 후 아 유?
--- 「송충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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