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아려보면, 이러한 여성의 상대적 우월성에 대한 남성의 우려는 일찍이 신화나 창세기의 전설 등에서 경고되고 있다. 거기서 여성은 하나같이 부차적이거나 인류에게 해악을 끼치는 존재로 규정된다. 이브는 인간성을 상실했다. 그녀는 물론이고 아담까지 뱀의 유혹에 빠져들도록 만들었다는 게 그 이유다. 그리스 신화의 여성 판도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제우스는 인간에게 형벌을 내리고자 불행으로 가득 찬 상자를 판도라에게 주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는 억제할 수 없는 '여성적인' 호기심으로 상자를 열었고, 그 바람에 모든 악이 빠져 나왔다. 이러한 경우들은 여성이 경망스럽고 판단력이 결여된 존재임을 부각시키는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면에 노출되지 않은 여성의 특성을 간과해선 안 된다. 호기심이란 지혜의 기본적인 요소이자 누구나 갖고 있는 인간적 본능이다. 따라서 상자를 열었다는 것은 오히려 여성의 과감한 단면을 보여준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더욱이 이브와 판도라가 세상에 가져다주었다는 악들, 즉 원죄와 질병은 누구나 주어진 숙명처럼 간주될 성질의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전설 같은 이야기 앞에서 씁쓰레할 게 아니라, 어쩌면 신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에게 창조자의 역할을 부여하지 않았는가 하는 위안을 가져볼 수도 있다.
--- p.12-13
작금의 현실은 어느 인종도진정한 권리를 소유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똑같은 권리를 갖고 태어났다.그러나 타인의 권리를 반대하는 자들은 자신의 종교나 피부색은 물론이고 성까지도 그런식으로 포기하게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 p.16
이사벨 에버하트는 자신의 인생을 걸쳐 그 공허함을 가득 채우고자 했다. 그리고 그것을 지탱하기 위해 맹목적인 확실성과 도그마로 만든 기둥을 하나 세우고자 기를 섰다. 하지만 그녀의 의도는 아이로니컬하게도 그런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면 할 수록 허물어져 갔다. 그녀의 마지막 사진들을 통해서 볼 수 있듯 처참한 육체의 파멸과 더불어서 말이다.
--- p.200
이 책 <시대를 앞서간 여자들의 거직과 비극의 역사>는 스페인 유력 일간지 '엘 빠이스'지 일요판에 시리즈로 실렸던 칼럼들을 묶은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18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문학과 예술, 혹은 그것과 직간접적인 분야에서 활동하고 나름대로 뚜렷한 흔적을 남긴 인물들이다. 언론인, 소설가, 동시에 자타가 인정하는 페미니스트인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여성 본연의 가치다.
--- pp. 5-6
사로잡힌 여자 카뮤, 벽에 갇힌 여자 카뮤, 절름발이에 유혹적인 여자 카뮤. 천재적인 조각가, 잊혀져간 예술가, 주주받은 예술가. 이 글은 '존재'가 될 수 없었던 한 여자에 관한 소름끼치는 이야기다. 그녀는 성공을 할 수 있는 모든 것, 즉 재능, 지혜, 용기,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의 저주는 그녀를 철저하게 파괴했다. 그녀의 남동생인 폴클로델은 "자연이 부여했던 경이로운 선물들은 그녀에게 불행만 가져다주고 말았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그녀는 세상의 저주로 인해 자신의 동생의 연인이 경이로운 성공을 거두는 동안 암흑 속에 말없이 파묻히고 말았다.
카뮤 클로델은 1864년 프랑스의 빌뇌브에서 맏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재산소유권 검사관이었고, 세월이 흐르면서 지독하게 몰인정한 여자로 변하게 되는 어머니는 지방의 지주였다. 카뮤는 어려서부터 남다른 면모, 즉 다리를 저는 신체적 특징, 빼어난 미모, 일에 대한 정열, 우울러 자부심이 강하고고집 센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스스로 조각 세계에 눈을 떴다. 순전히 자신의 상상에 의해 형틀을 짜고 조각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녀는 12세의 나이에 일련의 점토 작품을 만들었다. 그것은 지방 예술가들의 시선을 끌어당길 만한 수준작이었다. 그들 중에서 누구보다도 작품을 눈여겨보던 부셰가 어린 그녀를 미술학교 교장에게 소개시켰다. 작품을 천천히 바라보던 교장은 혹시 로댕에게 사사를 받은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카뮤는 로댕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두 사람, 즉 카뮤와 로댕의 유사함을 학문 세계나 예술 세계에서 이따금 엇비슷한 힘과 재능이 발견되는 경우처럼 단지 우연의 일치로 보아야 했다. 하지만 두 개를 인정하지 않는 신의 저주로 인해, 최소한 로댕이 그녀의 세계로 들어오기 전까지 카뮤는 카뮤였음에도 불구하고, 로댕의 연인이자 제자로 기록될 수밖에 없게 된다.
또 하나는 가족의 저주다. 완곡하고 폭력적인 아버지로 인해 빌뇌브의 집은 고함소리가 그칠 날이 없었다. 어린 카뮤는 무지막지한 족장의 마음에 드는 딸이 되고자 영악하게 행동했다. 어머니와 여동생이 아심을 품은 것은 가장의 비호 아래 누렸던 특권적 위치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그녀를 증오했다.
--- p.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