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테제는 전후 천황제의 작동(기능) 방식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국화(菊花, 일본 천황가의 상징?역주)와 성조기(미국)의 결합을 ‘전후 국체’의 본질로, 즉 전후 일본의 특이한 대미 종속이 구조화된 필연성의 핵심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중략) 진주만 공격(태평양전쟁을 촉발한 일본군의 하와이 미 태평양함대 기습 공격?역주) 당시 일본이 전장에서 승리했음에도 본질적으로 파멸해가고 있었던 것과 같은 의미에서 오늘날 일본 사회 또한 파멸하고 있으며, 그것은 ‘전후 국체’에 의해 규정당한 일본 사회의 내재적 한계의 표출이다. 그런 시각에서 ‘국체의 역사’―두 번에 걸친 형성·발전·붕괴―를 서술해보려 한다. 국체를 제대로 이해해야 일본 사회가 지금의 기묘한 답보 상태로부터 해방되리라 확신한다.
--- p.7
이 책은 말하자면, ‘아베 정권은 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가? 아베 정권의 본질은 무엇이며, 그럴 수밖에 없는 일본 사회의 구조는 어떤 것인가, 한마디로 전후 일본의 정체는 무엇이며, 아베정권의 의도와 그 존립 기반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에 대한 구조적 분석(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 p.13
이런 문제의식은 우리에게도 매우 시사적이다. 한국 또한 일본 못지않은 친미 일변도의 심각한 대미 종속국가이기 때문이다. 2차대전 이후 일본과 한반도 남쪽을 점령한 미국은 두 나라에 상호 연결된 유사 체제를 구축했다. 그로 인해 안게 된 문제도 닮은 점이 많다. 그렇다면 그 문제에 대한 한국, 일본의 해법도 상통하는 점이 많을 것이다.
--- p.14
현재 정계·관료·재계·학계·언론의 주류를 구성하는 친미 보수파의 모습은 미국의 국익 실현을 위해 분골쇄신하는 듯이 보이는데, 그것은 일본 사회를 황폐화시킴으로써 ‘국민 통합’을 위에서부터 파괴하고 있다. 또 오키나와의 소리를 무시한 헤노코의 미군기지 건설 강행도 같은 작용을 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 체제를 떠받치는 대중적 기반으로 눈을 돌려보면, 현 정권의 열렬한 지지자인 우파 활동가들이 가두선전 때 성조기를 들고 나가는 광경은 이미 익숙한 풍경이 됐다. 그들에게 성조기는 일장기와 마찬가지거나, 그 이상의 국기일 것이다.
--- p.47
자민당을 필두로 정계·관료·재계·학계·언론에 뿌리를 내린 영속 패전 레짐의 관리자들(=친미 보수파 지배층)은 미국의 수탈 공세에 저항하는 대신 오히려 그 앞잡이를 자임함으로써 자기 이익을 꾀했고, 대미 종속은 국익 추구 수단이 아니라 이미 그 자체가 목적이 됐다. 그 한편으로 일본과 한국 혹은 일본과 중국 간의 신뢰 양성이 다시 시작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 p.57
‘근대화의 기수’ 역할은 근대의 천황도 수행해온 것이다. 메이지 시기에 최초로 양장 차림을 한 일본인이 바로 천황 자신이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천황은 ‘근대적 군주’로서 ‘근대인이 된 일본인’ 이미지를 앞장서서 체현하고 전파하는 역할을 떠맡았다. 전후의 상징 천황제 시대가 되면서 군사적·정치적 권리를 빼앗긴 천황은 ‘군주’의 이미지가 약해지고 ‘오래되고 좋은 전통의 지킴이’라는 이미지가 한층 더 강조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천황이나 황족이 ‘근대화의 기수’ 역할에서 물러난 것은 아니었다.
--- p.83
이 무렵부터 대외적 위기감이 높아지는 가운데 ‘국체’라는 말이 다수의 문헌에 나타나게 된다. 당초에는 논지들에 따라 제각각이어서 일정하지 않던 국체의 의미는 이윽고 근대 일본의 공식 이데올로기가 되는 국체 개념, 즉 ‘신으로부터 유래된 천황가라는 왕조가 단 한번도 교체되지 않고 일관되게 통치하고 있는, 달리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본국의 존재 방식’이라는 관념으로 자리 잡게 된다.
--- p.101
제1장에서 이야기했듯이 전쟁 종결 뒤에도 천황제를 존속시켜 원활한 대일 정책에 이바지하게 한다는 아이디어가 미국 국내에서 나온 것은 전쟁이 끝나기 훨씬 전인 1942년 시점이었고, 그러한 구상을 짜고 있었던 것은 CIA(중앙정보국)의 전신인 OSS(전략첩보국) 관계자들이었다. OSS에서는 첩보를 통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 방법을 찾았을 뿐만 아니라 전쟁 이후의 상황을 상정한 대독 · 대일 연구를 그 방면의 전문가들을 결집시켜 진행하고 있었다. 그 결과물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일본문화론으로 전후 널리 읽히게 되는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1946년)로, 이 역시 OSS에 제출한 보고서를 토대로 쓴 책이다.
--- p.124
‘대은인’이란 천황이 전쟁의 책임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조처한 사람들의 우두머리가 맥아더였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요컨대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면, 전후의 일본에 미국 입맛에 맞는 민주주의 비슷한 체재를 구축하려면 천황이 필요했기 때문에 천황을 무죄로 처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맥아더의 견해가 갖는 ‘보수성’을 비판할 자격이 있을까. 실제로 너무나 많은 일본인이 ‘천황의 명령’으로 유유낙낙(唯唯諾諾, 명령하는 대로 순종함?역주) 옥쇄를 하고, 또 ‘천황의 명령’으로 유유낙낙 전투를 중단했다. 이것을 본 맥아더는 일본에 민주주의를 도입하려면 ‘천황의 명령’을 통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런 ‘민주주의’의 희극적인 성질은 오늘날에도, 예를 들면 ‘주권자 교육’― ‘주권자가 돼라’라고 위에서 호령하는 교육―에서 반복되고 있다.
--- p.132
‘전후 국체’의 환상적 관념은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사회를 파괴해왔다. 논리적으로 말해서, 그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파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 어떠한 형태―예컨대 경제 위기와 거기에 대한 일본의 반응, 전쟁, 또는 그 양쪽―를 취할 것인지 예언할 수는 없지만, 여기에서는 북한의 미사일과 핵무기 개발로 점차 증대돼온 위기와 그에 대한 일본의 반응에 주목하고자 한다.
--- p.309
영속 패전 레짐을 무한 연명시키고자 하는 세력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반도 유사 사태 발생은 모든 현안을 해결해준다. 재일 미군 기지를 향한 공격은 일본 본토에 대한 공격이기도 해서 자위권을 발동할 수 있으므로 이때 동원된 일본군은 직접적 전투행위에서 굳이 물러서 있을 필요가 없다(법률상 자위대는 일본 본토에 대한 공격을 받지 않는 한 직접전투에 참가하지 않고 미군에 후방 지원만 하게 돼 있다?역주). 그것이 바로 미국이 오랜 세월에 걸쳐 일본이 해주기를 바라던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유사 사태 때 자위대는 미군의 지휘 아래로 들어간다는 지휘권 밀약은 공공연한 것으로 바뀔 것이다.
--- p.313
미일 안보 체제를 더욱 강화, 즉 미일 전력을 글자 그대로 일체화하려면 미일의 안전보장정책의 전반적 방향성(=평화주의)을 일치시켜야만 한다. 따라서 ‘적극적 평화주의’의 채용은 앞서 살펴본 ‘미국류의 평화주의’ 사고방식에 일본의 안전보장정책 사고방식을 합친 것, 바꿔 말하면 ‘전쟁을 하지 않음으로써 확보하는 안전’에서 ‘전쟁을 함으로써 확보하는 안전’으로 180도의 방침 전환―물론 이 전환이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지만―을 함의하는 것이다.
--- p.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