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마르크스가 제안했던 해결책, 즉 “진정한 민주주의”의 의미를 사고해야 한다. 마르크스의 논의에서 이 해결책은 부르주아적이고 공화주의적인 민주주의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정치 국가의 소외된 형태와 “사유화된” 시민사회의 형태 모두에 대한 동시적인 지양(depassement)을 함의하는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변혁에 관한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개념은 인민―데모스(demos)―의 주권과 관련될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보편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 사이를 분리하는 이러한 분리의 존재를 폐지하는 것과 관련된다.
--- p.34
이는 『공산주의자 선언』을 집필했던 150여 년 전보다 “세계화”의 시대인 오늘날 훨씬 더 현실에 부합하는 분석인 것이다. 정말이지 자본은 21세기 초인 오늘날처럼 세계 전체에 대한 그토록 완벽하고 절대적이고 온전하고 보편적이며 무제한적인 권력을 성공적으로 행사했던 적이 없다. 과거에 자본은 현재와 같이 자신의 규칙, 정치, 도그마, 이해관계를 세계 전체의 모든 민족에 강제할 수 있었던 적이 없었다. 결국, 어떠한 시기에서도, 인간 삶의 모든 영역―사회적 관계, 문화, 예술, 정치, 섹슈얼리티, 건강, 교육, 스포츠, 오락―이 오늘날만큼 자본에 예속된 적이 없었으며 “이기적 타산이라는 얼음처럼 차가운 물” 속에 이토록 깊이 빠져 버린 적이 없었다.
--- p.69
『자본』의 저자는 협동조합에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난외 주석에서 강조하듯, “협동조합은 이 협동조합이 독립적이라는 조건에서만, 그리고 이것이 정부에 의해서도 부르주아지에 의해서도 보호[간섭]받지 않는 노동자들의 창조물이라는 조건에서만 가치를 지닌다.”
--- p.139
마르크스는 열거된 인권들(평등, 자유, 안전, 소유)을 하나하나 검토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러면서 이 인권들의 원리를 이루는 것이 사적 소유임을 입증하려고 한다. 실제로 자유는 타인을 해치지 않는 한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는 권리로서 부정적으로 정의되는데, 이는 인간들이 타인으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배타적 취득물들에 의해 서로 분리되고 고립되어 존재한다는 비관주의적 인간학을 전제하는 것이다.
--- p.196
사실상 마르크스는 여러 상이한 이론적 도식들을 배합해 소외된 노동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마르크스는 종교적 소외란 인간의 고유한 유적 본질의 상실이자 인간이 자기에게서 낯설게 되는 것이라는 견해를 포이어바흐로부터 받아들인다. 인간이 자기 자신의 생산물(신)에 의해 억압당하는 것이 종교적 소외라는 발상은 바우어에게서 끌어온다. 헤스로부터는 수단과 목적 관계의 전도로서 화폐 속의 소외에 관한 구상을 가져온다. 소외된 노동이 문제가 되는 것은 자기 상실 및 자기 생소화, 자기 활동의 생산물에 의한 지배, 수단과 목적의 전도라는 이 세 가지 의미에서인 것이다.
--- p.216~217
마르크스가 덧붙이기를 지배계급의 사상은 어느 시대에나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관념이라는 의미에서 지배적 사상이 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두 가지 설명이 제시된다. 한편으로, 지배적 사상은 그것이 지배적인 사회적 관계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기인하는 특수한 사회적 힘을 자생적으로 보유한다. 다른 한편으로, 지배적 사상은 “정신적 생산수단”을 소유한 지배계급에 의해 사회의 나머지에 대해 강제될 수 있다.
--- p.275
이데올로기가 부르주아계급의 수동적 이데올로그들에게는 효력이 없다는 점을 마르크스가 각별히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덧붙인다면, 마르크스의 목표가 이데올로기적 기능의 중요성에 관한 이론을 생산하는 데 있지 않고 반대로 이데올로기의 불모성(이데올로기는 지배적 사상의 재정식화에 그친다)과 비효율성(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의 다른 구성원들을 납득시키지 못한다)을 강조함으로써 진보라는 의미에서 역사의 흐름에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하는 이데올로그들의 자부를 가장 발본적인 방식으로 비판하는 데 있다는 점이 충분히 명확하게 드러난다.
--- p.279
“자본은 가치의 총합이다”라는 것은 당연한 말이다. 그것은 꽤 정당한 표현이지만,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말을 너무 일반적인 표현이라 평가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좀 더 명확히 “경제활동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선대된 가치의 총합”이라고 표현할 것이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거기에 가치의 증식이라는 관점을 추가하였다. “자본”은 “더 많은 가치를 낳으려는 목적으로” “가치 증식을 위해 선대된 가치의 총합”이라고 썼다. 자본가들은 결국 가치의 증대를 목적으로 일정한 가치량을 선대한다.
--- p.337~338
상품 개념에 대한 설명은 어떤 수많은 기초 개념 또는 “상품 범주들”과 “추상 노동”, 즉 말하자면 각 노동의 구체적 성질을 잃어버린 특정한 노동 개념의 도입으로 이어진다. 이는 교환, 가치, 유용성의 대상과 같은 범주들에 추가된다. 하지만 노동가치론을 통해 바로 그러한 더 광범위한 기초 개념들의 도입이 이루어진다. 서로 다른 노동의 고유한 성질을 추상한다는 아이디어 이외에도 상품 가치를 결정하는 평균적인 숙련과 강도의 노동을 지칭하는 사회적 필요노동량에 대한 논의도 있다. 게다가 서로 다른 노동을 통해 동일한 정도의 가치가 창조되지도 않는다.
--- p.353
마르크스는 오늘날 우리가 “경기변동”이라고 부르는 것을 명확하게 확인한 최초의 경제학자 중 하나이다. 경기변동이라는 표현을 통해 관련된 현상이 보편화되고, 그 복잡성의 일부가 숨겨지기도 한다. 이러한 경제의 순환은 19세기 초반에 나타났고, 1817년에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에 대하여』를 출판한 리카도는 이러한 문제를 그때까지 철저히 고려하지 못했다(특정한 부문에서 발생하는 “침체”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을 뿐이다). 경기변동은 생산의 확장과 후퇴, 주기적이지만 불규칙한 경제활동의 축소와 그에 뒤따른 회복 과정을 지칭한다. 자본주의는 이러한 자본주의 현실에 특징적인 일상적 운동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생산의 증가 및 감소와 그 양상들을 변화시키는 다소 결정적인 금융적 변동이 결합한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금융적 혼란과 결합되어 나타나는 경제활동의 축소 국면을 “위기”라고 불렀다.
--- p.419~420
어떤 순간 기업들은 자신들이 제공하는 가격에서 판매가 이루어지지 않는 곤란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상품들이 판매되지 않고 재고로 쌓인다. 이것이 바로 “과잉생산”이다. 마르크스가 살던 시절에 이러한 새로운 상황이 도래했으며, 역설적으로 보였다. 과거의 경제 위기는 어떤 부족함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농업 생산물을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과잉생산을 목격하였고, 이를 실업과 빈곤의 원인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우리는 팔리지 않은 상품들과 기본적인 생활조차 어려운 인구들이 공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과잉생산 국면은 제한적이며, 그 이후 기업들은 판매가 부진하면 생산을 지속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폭락과 경기 불황, 즉 생산의 붕괴가 나타난다.
--- p.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