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리스도인의 결혼’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많은 부부들의 관계가 안 좋아지는 근본적인 이유와 세미나를 통해 회복되는 중심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제가 찾아낸 결론은 이랬습니다. 관계가 깨어지는 것은 세미나 교재에 적혀 있는 것처럼, ‘배우자와의 적절한 결합을 가로막는 기본 문제인 자기중심성’ 때문이라는 데 적극적으로 공감이 갔습니다. 그리고 세미나를 통해 관계가 회복되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의 마음을 배워 나가는 중에 하나님이 역사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를 종합한 것이 이 책의 주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에서, ‘자기중심성을 극복하고 말씀 중심(하나님 중심)으로 돌아가자’ 혹은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를 극복하고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로 돌아가자’라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자기중심성에서 하나님 중심성으로 돌아가는 것은 모든 인간관계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중요한 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자기중심성’이라고 할 때 그 안에 담긴 뉘앙스를 통해 대략의 개념을 짐작하는데, 정작 이야기해 보면 자기중심성이라는 현상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고, 상당히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세미나에 참석한 분들과 토의하며 인식한 것들을 나누어 보니 여섯 가지 종류가 되어, 이 책의 1부에서는 이들을 하나씩 기술했습니다.
자기중심성의 문제는 다른 많은 신앙의 문제들처럼, 문제의 본질을 인식하는 순간에 상당 부분 이미 해결의 길로 가기 시작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성된 모델을 바라보며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회복의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표준 모델을 2부에서 제시해 보았습니다. 이 표준 모델은, 말하자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즉 바른 신앙에 대한 정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리는 그 내용을 다루는 책들이 많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생략하려 했고, 대신에 믿음을 삶에 적용해 나갈 수 있도록 실천적 모델을 제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이 책이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소망과 격려가 되기를 바랍니다.
--- 「서문」 중에서
삶의 질을 추구하는 것을 나쁘다고 할 이유는 없습니다. 나에게 맞지 않는 음식은 멀리할 필요가 있고, 적당한 운동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추구가 도를 넘어서 건강이 우상이 되어 건강 염려증으로까지 발전하면 이기적이 되어 갈등을 유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경우에도 먹는 것의 갈등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뜻을 우선하면서 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충분히 대화하고, 적당히 양보하고 절제하면서 서로 맞추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긍정적인 감정들을 추구하고 부정적인 감정들을 회피하려는 이기주의도 우리의 기본적인 죄성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뿐 아니라 배우자나 타인들도 좋은 것은 좋고 싫은 것은 싫다는 점을 이해하고 배려한다면, 이러한 이기주의로 인한 갈등은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습니다. 물론 아주 깊고 근본적인 해결책은, 우리 자신의 근본적인 자세 변화가 있을 때만 가능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다양한 은사를 받기도 하고, 또 어떤 특정한 은사를 사모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받은 은사를 자랑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치유나 예언이나 계시의 은사는 그것을 겸허하게 사용하면서 성도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때만 의미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그 은사를 앞세우는 것은 이기주의이고 교만이며, 은사를 주신 하나님에게 죄를 짓는 일입니다.
중요감의 욕구도 안전감의 욕구와 마찬가지로 우리를 창조하신 절대자에게서 ‘너는 내가 인정하는 중요한 존재야. 나는 너를 위해 가장 소중한 것, 즉 내 아들 예수의 생명까지도 버렸단다’ 하는 음성이 영혼 깊이 들려올 때에야 온전히 채워집니다.
하나님에게 복을 구하고 받는다고 할 때의 복(blessings)의 개념은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누리는 총체적인 복, 곧 영적인 복과 육적인 복 모두를 의미합니다. 당연히 이런 복은 구하고 받아서, 이 세상에서만이 아니라 천국에서도 풍부하게 누려야 합니다. 이를 혼자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흘려보낼 때, 진정한 복이 되고 복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복을 혼자만 받아서 누리려 하면 기복 신앙이 되고 이기주의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에게 드릴 수 있는 기도의 정점은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라는 기도라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 마음을 토로하고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선하신 응답을 기대하는 것, 이것이 강청 기도입니다. 우리의 성공과 출세를 위한 이기적인 요구를 강청하기를 멈추고, 힘들고 억울할 일을 당했을 때 사람에게 분노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끈질기게 긍휼을 구하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자신들의 자기중심성과 고집으로 바른 가르침에 귀 기울이기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성경은 구원의 길이 모든 사람들을 향해 열려 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닫으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 문을 닫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우리를 자기중심성이라는 치명적인 죄성에서 건져 내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것이 육신과 정신의 연약함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은 육신을 입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으로 들어와 우리와 같이 되셨지만, 우리와 다른 점은 항상 하나님 중심적으로 사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기중심성 중의 하나가 남에 대해서는 엄정하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관대하기가 쉽다는 것인데, 이것은 거꾸로 되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죄는 엄정하게 찾아서 벗어나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좀 더 관대하게 수용하고, 회복되도록 오래 참고 기다리며 중보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알고 예배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요 4장 참조). 모르는 것을 예배하는 것은 우상 숭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힘써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 공부와 기도와 묵상을 통해 하나님을 점진적으로 알아 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만큼만 진정으로 그분을 예배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죄성이 클수록 우리는 하나님 중심적으로 기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족하고 미련하더라도, 어린아이같이 미숙할지라도 계속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아무 죄도 없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인데, 자기중심적으로 살던 우리가 다시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갈 길을 열어 주기 위해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을 당신의 몸으로 대신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대신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우리의 영에 감동으로 다가와 우리가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의 눈물을 흘릴 때, 하나님은 이를 우리의 의로 인정하고 우리를 다시 친밀하게 당신의 자녀로 받아 주십니다.
자기 소견을 주장하던 독선적 삶이란 나는 맞고 상대방은 틀린 것 같은 착각입니다. 여기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우리는 서로 다를 뿐이며 하나님만이 항상 옳으시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며 사는 것입니다. 제한된 능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시각조차도 왜곡되었던 자기 자신을 의지하던 삶에서, 무한하신 능력을 가진 지혜의 왕을 의지하며 살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능력을 의지할 때는 모든 것이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의지할 때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그분, 인생의 진정한 최고 전문가이신 그분이 나의 인생과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가까운 사람들의 삶을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