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고메리는 『빨강 머리 앤』을 사랑하는 프린스에드워드섬의 북부 해안으로 데려왔고, 자신에게 가장 특별한 의미를 지닌 꿈의 공간 두 곳을 앤에게 주었다. 하나는 나무와 들판이 보이는 혼자만의 침실이고, 다른 하나는 나뭇가지를 푸른 지붕 삼아 굽이도는 붉은 숲길인 ‘연인의 오솔길’이었다. 이 소설 속에 시를 쓰듯 묘사한 자연의 모습들은 몽고메리 자신이 방에서 창밖 풍경을 바라보고 초록 아치의 길을 거닐던 경험에서 우러나왔다. 몽고메리는 앤에게 친구와 파티, 예쁜 옷과 비밀을 사랑하는 자신의 모습까지 물려줬다. 소설 안에서 덩실거리는 활력은 몽고메리의 초기 편지와 일기, 그리고 여러 매체와 간행물에서 기념할 만한 글과 모아둠 직한 기사를 오려 붙인 스크랩북에 넘치던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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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메리는 스크랩북을 두 종류로 만들어 관리했다. 하나는 자신이(또 는 다른 사람이) 발표한 단편소설, 시, 기사를 오려 붙이고 나중에는 자기 장편소설에 대한 서평까지 모아둔 스크랩북이었다. 다른 하나는 개인적인 스크랩북으로 기념할 만한 물건들, 주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사진, 우편엽서, 고양이 털, 견본으로 쓰는 천 조각, 잡지에 실린 그림, 눌러서 말린 꽃 등으로 채운 것이었다. 이런 개인적인 스크랩북은 여섯 권이 있는데, 두 권은 프린스에드워드섬에서 살 때 만들었고, 나머지 네 권은 결혼 후 온타리오에서 생활하면서 만든 것이었다. 몽고메리가 쓴 일기를 보면 그 전에 만든 스크랩북도 있었지만, 몽고메리는 초창기 일기를 없앴듯이 그 스크랩북도 없애버렸다. 몽고메리는 평생 동안 몇 개나 되는 상자와 작은 가방에 소중히 여기는 보물들과 비밀들을 넣어서 간직하다가 주기적으로 분류하여 스크랩북을 채웠고, 때때로 그때 쓰지 않고 남은 것은 태워 없애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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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스크랩북은 대략 1893년부터 1897년까지의 시간을 담고 있지만, 마지막에 가면 1 920년대에 오려낸 글과 1930년대의 사진도 실려 있다. 레드 스크랩북은 1896년에 (샐리 워드의 이미지와 함께) 시작하는 것 같지만, 거의 곧장 1902~1903년으로 넘어가 몽고메리 자신과 1903년 전반기에 맥닐가에 하숙한 교사 노라 리퍼지의 익살스러운 행위들을 보여준다. 레드 스크랩북은 1910년 초를 마지막으로 끝이 나고, 온타리오 스크랩북들이 1910년 가을부터 시작되는데, 이때는 몽고메리가 『빨강 머리 앤』의 열혈 팬인 캐나다 총독 그레이 백작을 만난 때였다. 블루 스크랩북과 레드 스크랩북에는 몽고메리가 학생으로서 학교에 다니고,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며 작가로서 고군분투하다 『빨강 머리 앤』으로 명성을 얻게 된 시절의 삶과 상상력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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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모드 몽고메리가 패션과 꽃에 대해 평생 가졌던 관심은 색을 향한 사랑으로 연결된다. (…) “나에게 색은 누군가에게 음악이 갖는 의미와 같아. 누구나 색을 좋아하지만, 나에게 색은 열정이야.” 몽고메리의 일기와 편지, 시, 소설은 색에 대한 생생한 묘사로 가득하다. 『빨강 머리 앤』을 쓰다가 이 스크랩북을 다시 들췄을 때 몽고메리는 1905년에 다시 유행하기 시작한 1895년의 커다란 퍼프소매가 떠올랐다. 독자들이 『빨강 머리 앤』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가 앤이 초록 지붕 집에서 맞는 첫 번째 크리스마스다. 매슈 아저씨가 앤에게 퍼프소매 드레스라는 완벽한 선물을 주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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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메리는 꽃말, 그러니까 꽃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알았고, 꽃들을 묶어서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는 기술도 뛰어났다. 팬지가 스크랩북에 아주 많이 사용됐는데 팬지가 추억과 기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원을 가꾸는 데 열정적이었던 몽고메리는 1901년 일기에 이상적인 정원을 묘사했다. 조개껍데기나 갈풀로 가장자리를 두르고, 그 안에 진홍색, 감미로운 분홍색, 보라색, 주황색, 노란색, 흰색 꽃이 가득히 “전부 질서 속에서 무질서한 모습으로 자라나는” 한적하고 오래된 정원이었다.
--- p.84
“길모퉁이”는 몽고메리의 삶과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면서도 중요한 은유의 형태 가운데 하나이다. 26 에 실린 시 〈길모퉁이〉는 알 수 없는 미래가 가지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묘사하고, 그 위에 배치한 우편엽서와 잡지에서 오려낸 왼 아래 사진은 길모퉁이를 시각적으로 해석해 보여준다. 앤 셜리는 『빨강 머리 앤』 앞부분에서 매슈와 함께 에이번리로 들어서는 길모퉁이를 돌았을 때 해 질 녘 “기쁨의 하얀 길”의 아름다움에 말문을 잃는다. 끝부분에서는 한층 자란 앤이 길모퉁이를 은유적으로 표현하여 자기 앞에 놓인 삶의 여정을 놀랍고도 멋진 모퉁이들이 있는 길로 이해한다. 『빨강 머리 앤』의 마지막 장 제목은 “길모퉁이에서”이고, 이 소설의 끝에서 두 번째 문장은 “길에는 언제나 모퉁이가 있었다!”로 앤의 낙관주의가 드러난다. 잡지 사진(레드 스크랩북 26 왼 아래)은 캐번디시 해안이다. 흥미롭게도 몽고메리가 찍은 사진 중에서 많은 사진이 비슷비슷한 굽이를 보여준다. 몽고메리와 앤이 사랑하는 연인의 오솔길도 사진으로 많이 남겼는데 거의 항상 은근히 굽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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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앤의 삶에 고양이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수수께끼다. 물론 고양이를 허락하지 않았으리라고 짐작되는 마릴라의 생각은 고양이는 집 안이 아니라 헛간에서 살아야 한다고 믿었던 외할머니의 생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을 것이다. 외할머니도 나이가 들고는 회색 얼룩 고양이 대피를 점점 좋아하여 대피에게서 위안을 얻기도 했다. 고양이는 앤이 성인이 된 이후의 삶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외할머니가 더 이상 세상에 없어서 그 이야기를 읽지도 못할 터이기 때문이다. 몽고메리는 에밀리 버드 스타에게는 고양이를 대단히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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