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스케, 이제부터 엄마가 하는 말을 정신 바짝 차리고 들어라.”
아빠가 체포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순간 성추행이나 원조교제를 떠올렸다. 혼자 후쿠오카에 가서 일하는 아빠는 이주에 한 번 집에 오면 많이 보는 편이었다. 길 때에는 한 달 이상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카이세이에는 비슷한 환경에 있는 친구들이 많았다. 배구부 선배가 말한 적이 있다.
“그런 남자들은 애인이 있거나 매춘부를 부르거나 둘 중 하나야.”
키도 작고 얼굴이 긴 아버지라면 분명 후자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후쿠오카 전에 부임했던 니이가타 시절부터 애인이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그녀를 후쿠오카로 불러오기 위해 아는 고객이 맡긴 돈을 착복하여 아파트를 샀다.
아까는 아무 생각도 없이 기뻐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간단할 리가 없다. 천만 엔을 보상하려면, 엄마는 삼 년 이상 병실에서 먹고 자는 생활을 해야 한다. 아빠가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대도 전과가 있는 중년 남성이 취직하기란 어려운 일일 것이다. 가뜩이나 돈도 집도 없는 상태에서 일해야만 하는데.
이혼하지 않겠다는 결정 때문에 엄마가 겪게 될 고생을 생각하면 아빠를 향한 분노가 더욱 거세진다. 그와 동시에, 이로서 아빠는 앞으로 엄마에게 평생 빚을 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엄마가 더 힘들까, 아빠가 더 괴로울까. 아무리 생각해도 끝이 나질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한 가족으로서 고난을 헤쳐나갈 수 있다니 감사한 노릇이다. 나는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소금 섞인 바람을 맞으며 어두운 파도를 바라보았다. 부부란, 부모란, 그렇게 괴롭고 힘든 관계일까? 아빠는 바람을 피다 못해 돈까지 횡령하다 체포되었다. 타쿠야의 양어머니는 남편이 죽자 자신이 아이의 보호자라는 사실을 감당하지 못했다. 이모의 남편이었던 고토 아저씨는 불륜 때문에 파경을 맞았다. 이시이 선생님도 그렇다. 사모님이 그렇게 비극적으로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똑같은 잘못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약간 흔들리는 것 정도는 눈감아줄 수 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아내와 자식을 선택하길 바란다.
“요스케. 힘든 줄 알지만, 삼 분 내로 진정해야 된다. 얘기해둘 게 몇 가지 있거든.”
선생님이 평소답지 않게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손목시계를 쳐다보았다. 문자판 위를 움직이는 초침을 쫓으면서 심호흡하려고 했지만, 가슴이 떨려서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엄마 미안, 엄마 미안, 엄마 미안.”
머릿속에서 세 번 되뇌었다. 요전에 엄마에 대해 가혹한 평가를 내린 자신이 부끄러웠다. 나는 휴대전화, 자기 방, 아니 집마저 잃고서 카이세이에서 삿포로의 시골 학교로 전학했다. 하지만 이모 덕분에 잘 지내고 있고, 여름 여행까지 만끽하고 있다. 반면 엄마는 홀로 험한 세상 속에 버려져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나는 아빠만 걱정하고 있었다. 엄마 같은 건 이모의 발끝에도 못 미친다고 건방지게 내려다보기까지 했다.
“즉, 자신에 대한 기반이 있는 거야. 케이코가 도와주긴 했지만,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는데도 무너지지 않았던 것은 그전까지 너를 지탱해왔던 힘이 네 안에 있기 때문이지. 이해되지? 게다가 나미코까지 얻었고 말야.”
급소를 찔린 얼굴이 빨개졌다. 나미코만이 아니다. 이모, 이시이 선생님, 타쿠야, 타케시, 아리사, 나츠, 와다 아저씨, 우메모토 씨, 고토 아저씨가 있어주었기 때문이다. 소중한 사람들의 이름이 줄줄이 떠올랐다. 이 중 한 명이라도 없었다면, 이렇게 빨리 회복되었을 리가 없다. 나 자신의 행운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아줌마는 최고야!”
오른쪽에 서 있던 타쿠야가 말했다.
“하지만 니네 엄마도 만만치 않은데.”
“그럴지도 모르겠어.”
타쿠야와 나란히 서서 이모를 바라보았다. 나도 이모처럼 온 힘을 다해서 살아가고 싶다. 어디서 무얼 할지는 모르지만, 뭐든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모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의대를 지망하고, 배우가 되고, 연극에 빠져들었겠지. 그러니 나도 자신이 결정한 일에 온 힘을 다해 부딪친 후, 그 결과가 아무리 비참한 현실이라 해도 이모나 타쿠야가 그러는 것처럼 가슴을 펴고서 살아
가고 싶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