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 전승 작가들이 알고 있던 것은 바벨론 신화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중동의 다른 지방 신화들도 알고 있었고, 그 신화들을 도입해 우주, 인간 창조, 홍수 설화를 완성해간다. 히브리 고대 전승은 입과 귀로 이어져 오면서 화자요 청자들인 목동들에 의해 고쳐졌고, 어느 정도 본문이 정립되었을 것이다. 이때 인간의 기억력은 정확하지 않아 그 이야기들은 세월 속에 변형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 이 이야기들은 바벨론 포로 이후 문장력이 뛰어난 서기관들, 제사장들에 의해 편집되며 신학적, 철학적, 언어적 이유로 수정되기도 했을 것이다. 초창기에는 구약이 구전으로 이어졌다는 이론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어찌 그렇게 정교하게 말로 전달될 수 있을까 의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대의 정교한 소설 호메로스(Homeros)의 일리아드(Iliad)도 구전으로 이어졌고, 화자와 청자가 완성시킨 문학이다. --- pp.9~10
히브리 전승에서 노아가 홍수를 만난 때는 노아가 600세 되던 해 2월 17일이다. 그리고 물이 물러간 때는 7월 17일이다. 이집트 신화에서 보면 죽음의 신 오시리스는 17일에 악의 신 티폰이 만든 관에 넣어져 강물에 버려졌다. 이밖에도 그리스와 터키, 이슬람 전통에서도 숫자 ‘17’은 종교 제의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처럼 바벨론으로부터 시작된 홍수 설화는 메소포타미아와 히브리, 이집트, 그리스 등 서로 매우 비슷하다. 신의 진노로 시작해 배에서 새들을 날려 보냈으며, 배는 아르메니아 지방에 정착했고, 배에서 나와 제사를 드리고, 신이 다시는 홍수로 인간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 등……. 물론 서로 다른 부분도 있으나 그것은 긴 세월 동안 전달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자연스러운 차이일 것이다. 히브리 전승이 보다 정교하고 세련된 것은 수메르나 바벨론 신화보다 1,000~2,000년 후의 문학이기 때문이다. --- p.35
모세는 동족을 학대한 이집트 관원을 죽이고 광야로 나가 가나안 시나이 산으로 올라간다. 시나이는 이 지역 유목민들이 섬겼던 달의 신인 신(Sin)의 이름을 따 명칭 되었을 것이다. 현재의 ‘예벨(아랍어로 ‘산’) 무사(아랍어로 ‘모세’)’라고 알려져 있는 이 산은 운해(雲海)가 치맛자락처럼 산봉우리를 가리고 있으며 높이는 7, 363피트나 된다. 해가 뜰 때는 산맥들이 금빛으로 물들고, 그 위로는 푸른 하늘이 바다처럼 출렁거린다. 숨이 멎을 것 같은 이 경이감 때문에 신이 살고 있는 장소처럼 보이기도 한다. 고대 역사가인 요세푸스도 이렇게 표현했다. ‘그 산은 신께서 거하신다는 풍문 때문에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으며 감히 접근할 수도 없었다’ --- p.69
왕이 된 다윗이 이집트에서 유일신 혁명을 일으킨 파라오 ‘아켄아톤(아톤 신을 모시는 사람)’의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가 있다. 모세보다 한 세대 앞섰던 아켄아톤은 구 종교도시 테베에서 신 종교도시 아마르나로 도읍을 옮기고, 신진 인재들을 등용했으며 다신론에 빠져있던 이집트에 ‘아톤’이라는 유일신을 소개한 자다. 아켄아톤은 이 혁명을 통해 왕조를 굳건히 했다. 다윗이 지은 시편을 보면 아켄아톤의 태양신 찬미와 아주 흡사하다. --- p.156
고대인이나 현대인이나 정보량은 달라도 뇌의 인식은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과학 정보가 없던 그들이 자연현상에 대한 고민이 더 깊었을지도 모른다. 청동기 후기 인물인 모세를 비롯한 당시의 인간들도 우주를 보고 생성원인을 생각하고, 창조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신들이 그것들을 만들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 신들을 만든 최고의 신이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유일신이다. --- pp.221~222
그동안 성서의 사건들은 현대 신학자들로부터 역사성에 대해 의심받아 왔다. 오늘날 세계인들은 ‘성서에 쓰여 있기 때문에 틀림없는 사실이요 진리’라는 상투적인 말에 굴복하지 않는다. ‘성서에 이렇게 쓰여 있으니 이렇게 행동하라’는 문자주의자들의 주장 역시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제 구약성서가 문자적으로 사실인가에 관한 문제보다 왜 이스라엘인들이 오랜 세월 그런 이야기를 꾸며 기억했으며, 그 이야기들이 왜 그렇게 수천 년 동안 지켜졌는가가 연구과제다.
--- p.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