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개신교는 종교개혁적이어서가 아니라 종교개혁적이지 못해서 실패했고 실패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의 근본정신과 의미를 이해하고 새롭게 해석해서 창조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 p.11
진정한 의미에서 신본주의는 인본주의와 대립되지 않는다.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인간을 위하는 것이고, 인간을 위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다. [...]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 p.61
교회가 완전할 수는 없다. 교회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여러 가지 것들이 다 드러난다. [...] 그래서 문제 있는 교회를 개탄하고, 비난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고, 어떻게 좋게 만들어나가느냐가 중요하다.
--- p.74.
본질적으로 신앙의 문제이고, 신앙으로서 추구되는 이해, 즉 신학의 문제이다. 실천이나 방법이나 기술들은 거기에 따라오는 문제들이다. 한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을 계시하신 은혜로운 하나님을 다시 믿고, 받아들이고, 그분의 뜻과 진리를 언제나 다시 찾고 알아나가는 과정에 들어서는 것이 중요하고 또 필요하다. 즉 진리 안에서 참 자유와 구원을 얻으려는 구도자가 되는 것, 구도자의 삶을 사는 것이다.
--- p.75
한국 개신교회들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정신이라고 통칭될 수 있는 신학이나 사상, 생각의 문제이고 그런 것들이 빚어내는 존재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 p.103
그렇게 설명되는 프로이트의 신은 한국교회의 신앙 형태 속에 나타나는 신과 흡사하다. 교인들은 절대자 하나님에게 의탁하고, 그의 보호 아래서 안심하며 살아간다. 하나님을 대리하는 ‘목자’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카리스마 넘치고 자기주장이 강한 목사의 교회 안에서, 강력한 아버지의 처벌(거세)을 두려워하면서 동시에 애착관계를 보이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교인들에게 재현되고 일상화된다.
--- p.109
한국교회는 언제까지나 자기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교회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불안이다.
--- p.116
한국교회는 자기 속에 갇혀 사는 자폐증마저 보이고 있다. 자기에게 묻혀있음으로 바깥세상과는 담을 쌓고 산다. 한국교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그것이다. 약자, 빈자, 소수자들의 인권이나 생존조건 개선 등을 위한 참여나 봉사나 희생에 역동적이지 못하다. 믿는 사람들이냐 아니냐, 교인들이냐 아니냐, 그것을 기준으로, 아니라면 상관없는 일로 치부한다. 그저 교회의 확장, 강화, 19세기식 선교... 그런 데만 힘을 쓴다. 유치하고 망가진 자신을 확장하고 강화할 때 어떤 결과가 나올 지에 대해서도 관심 없다.
--- p.117
실존적 신앙은 집단적 신앙을 대체한다. 그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주체적 인격으로 인정하고 고무한다. 그래서 남들에게, 다수에게 휩쓸리지 않게 하고, 묻어가지 않게 한다. 남들로부터 자유롭고, 자신의 양심을 따르며 책임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것이다.
--- p.124
구원의 확신에서 나오는 감사나 기쁨이 없으면 자유도 없고, 자발적인 사랑과 헌신, 참여도 불가능하다. [...] 그래서 항상 자기의 구원을 염려하며 소극적으로, 방어적으로 살아가는 반쯤 마비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 윤리가 없는 것은 바로 그런 데서이다.
--- p.177-178
나는 현재 한국교회들의 위기는 교회가 되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일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리스도인이 되지도 못했는데 그리스도인처럼 살기를 요구하니 될 일이 아니다. 교회가 되지도 못했는데 교회처럼 하라고 요구하니 가능한 일이 아니다.
--- p.181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개인이 겪는 성화의 과정을 똑같이 겪는다. 그 말은 교회에도 여전히 죄와 허물과 그에 따른 악행들도 많이 일어난다는 의미이다. 그런 일들을 줄여나가기 위해 기도하고, 노력하고, 개혁하지만, 항상 잘 되는 것은 아니고, 다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교회도 역시 항상 겸손하고 자기를 낮추는 게 필요하다.
--- p.182
교회가 가진 유일한 무기가 ‘말씀’이다. 마치 십자가의 그리스도처럼, 말씀은 현실에서 아무 힘도 없고 무시되고 그래서 실패하는 것 같지만, 우리는 말씀의 힘을 믿어야 한다. 말씀은 악의 허울을 벗겨내고 실체를 파악하게 하며, 진정한 화해와 변화를 통해 자유와 사랑 그리고 ‘하나 됨’의 길을 가고자 하는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죄인들에게도 그런 깨달음을 주고, 그런 의욕으로 가슴 뛰게 하는 게 말씀이다.
--- p.196
교회는 죄를 용납하지 않지만, 인간의 약함과 악함, 어쩔 수 없음을 이해하고 용서한다. 용서하면서 사랑하고, 사랑하면서 용서한다.
--- p.197
자신을 용서할 때 자기비하나 자기정죄, 자기처벌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통해 죄의 문제를 아는 사람들이기에, 자신이 죄인임을, 용서받은 죄인임을 안다. 그리고 이제는 자기 자신도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게 된다. 지나친 죄의식에 사로잡혀서 자책하고, 부끄러워하고, 나서지 못하는 건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불신하는 것이다.
--- p.198
아무리 행사를 자주하고, 아무리 기도회를 자주 열고, 일주일에 한 번씩 찬양집회를 해도, 그것이 신자들의 참된 생각으로서, 아름다운 삶으로서 이어지지 않으면, 하나의 반복에 불과하다. 하나의 반복, 언제나 되풀이해서 그냥 그렇게 하는 것,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편한 것, 불안한 것, 그런 것일 뿐이다.
--- p.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