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의 말
이 책은 대학교 1학년 때 번역서로 처음 접했다. 그 당시는 개인용 컴퓨터의 주도권이 8비트 컴퓨터에서 16비트 컴퓨터로 넘어가면서 PC 통신이라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도래하던 격동의 시기였고, 운영체제는 물론이고 유틸리티와 게임을 비롯한 각종 소프트웨어를 염가(?)로 디스켓 가격만 지불하고 사이좋게 나눠 사용했다. 개인용 컴퓨터가 개인들의 손에 쥐어지고, 한 걸음 더 나가 각 컴퓨터가 서로 연결되고 있는, 참으로 시의적절한 시점에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철부지 고등학생 시절에 이 책을 읽으며 불철주야 해킹이라는 지고지순한 목표에 매진하는 해커들의 활약상에 환호성을 질렀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 이후 인터넷을 접하고, 모자이크라는 웹 브라우저로 곳곳을 탐험하며, 이 책에서도 나오는 영원한 해커들의 대인배 디지털 이큅먼트 사가 운영하던 ftp 사이트에서 온갖 유닉스 소프트웨어 소스 코드를 구하고, 오픈 소스의 효시인 X11과 GNU 소프트웨어를 가져다 컴파일하면서 해커들의 멋진 선물을 접하게 되었다. 학창 시절을 마치고 회사에 들어가 이런저런 일상에 치이다 보니 무려 20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고, 이 책을 읽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무렵, 때마침 25주년 기념판이 오라일리 출판사에서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출판사 요청을 받아 그때 그 시절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번역 작업을 시작했는데, 그동안 경험이 쌓였는지 몰라도 이 책에 대한 느낌이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이 책은 요즘은 물과 공기처럼 너무나 자연스러운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네트워크를 존재하게 한 투사들의 기록이다.
이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던 초창기 시절에 실제 컴퓨터라는 물건을 만들어내는 MIT 해커 이야기, 컴퓨터로 사회를 혁신적으로 바꿔놓겠다는 일념하에 개인이 조립 및 사용 가능한 컴퓨터를 만들어내는 하드웨어 해커 이야기, 급속도로 전파되는 하드웨어를 쓸만한 물건으로 만드는 동시에 상업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게임 해커 이야기, 그리고 세월이 흘러 변신한 해커 뒷이야기가 서로 연관을 맺으며 반세기를 관통하며 흐른다. 50년이 지나 해커 정신은 이제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진 오픈 소스와 실생활에 필요한 하드웨어를 직접 만드는 (아두이노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오픈 하드웨어와 (홈페이지와 게시판으로 시작해, 블로그와 SNS로 발전한) 개방된 정보 환경을 지탱하는 원동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집필한 스티븐 레비에게 감사하고 싶은 이유가 하나 있다. 이 책은 사실상 스타트업을 최초로 다루는 서적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1980년대 격동기 스타트업 기업들의 성장과 발전, 퇴보와 죽음을 제대로 다루고 있다. 1980년대 해커 선배들이 회사를 운영하며 산전수전 다 겪는 모습을 보며, 역자 역시 용기를 얻어 새로운 세상으로 뛰어들었다. 앞으로 순수한 해커 정신과 상업적인 해커 정신이 요즘과 같이 복잡한 세상에서 어떻게 상호작용 할지 현장에서 체득할 예정이며, 기회가 닿으면 여기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기록을 남기려 한다. 마지막으로 해커 정신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해준 국내외 모든 선후배 해커 여러분께 감사를 표한다.
2013년 7월, 박재호
지은이의 말
컴퓨터와 관련된 일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프로그래머들과 디자이너들, 소위 해커라 불리는 사람들에 관한 글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이 든 동기는 그들이 굉장히 흥미로운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일부는 해커라는 용어를 조롱조로 ‘멍청한 사회적 부적응자나 지저분하고 표준에 어긋나는 코드를 내놓는 전문가답지 못한 프로그래머’라는 의미로 사용하지만 나는 해커를 다르게 생각한다. 평범한 외모 속에 감춰진 그들은 대개 모험가, 선지자, 도전자, 예술가였으며, 컴퓨터가 진정으로 혁명적인 도구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분명히 이해하는 사람들이었다. 해커 정신으로 무장하여 파고들면 한계란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잘 알았다. 이 책을 쓰면서 나는 진정한 해커가 해커라는 호칭을 경멸이 아니라 영광으로 여기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1950년대 수백만 불짜리 장비를 길들였던 사람들부터 자기 집 침실에서 컴퓨터를 정복한 젊은 현대 마법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디지털 탐험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컴퓨터라는 우아한 논리 흐름에 연결된 한 가지 공통적인 요소, 공통적인 철학을 발견했다. 그것은 공유와 개방과 분산과 무슨 일이 있더라도 기계를 손에 넣어 이 기계를 그리고 세상을 개선하겠다는 의지의 철학이었다. 이 해커 윤리는 그들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며, 심지어 컴퓨터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도 가치 있는 선물이 되었다.
해커 윤리는 문서로 규정되기보다 행동으로 실현되는 윤리다. 이 책에서 나는 컴퓨터에서 마법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마법을 부렸던 사람들, 한 걸음 더 나가 우리 모두에게 이익이 되도록 마법을 해방한 사람들을 여러분에게 소개할 참이다. 50년대와 60년대 MIT 인공지능 연구실에서 일하던 진정한 해커들, 70년대 덜 은둔적이고 더 대중적인 캘리포니아 하드웨어 해커들, 80년대 개인 컴퓨터 시대에 명성을 떨쳤던 젊은 게임 해커들을 소개하겠다.
이 책은 컴퓨터 분야에서도, 내가 집중한 해커 분야에서도, 절대로 공식적인 역사서가 아니다. 사실 여러분이 이 책에서 만날 사람 중 다수는 컴퓨터 연보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도 (물론 가장 부자인 이름도) 아니다. 여러분이 이 책에서 만날 사람들은 가장 심오한 수준으로 컴퓨터를 이해했으며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과 새로운 영웅의 모습을 보여준 무대 뒤 천재들이다.
리차드 그린블랏, 빌 고스퍼, 리 펠젠스타인, 존 해리스와 같은 해커들은 컴퓨터 분야 자체의 정신이자 영혼이다. 나는 그들의 비전, 컴퓨터 자체에 대한 친밀함, 그들만의 세상에서 겪은 특이한 경험, 때로는 극적이고 때로는 어처구니없는 바깥세상과의 교류 방식이 컴퓨터 혁명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보여주는 진정한 이야기라 믿는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