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뺑소니 사고로 돌아가셨다. 딸기가 먹고 싶다는 도미의 말에 길 건너 과일가게에 가다 사고를 당했다. 장례식장에서 자신 때문에 아빠가 돌아가셨다고 수군거리는 소리에 아빠 대신 자신이 죽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아빠의 죽음으로 인해 엄마는 일을 해야 했고, 집도 작은 곳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 이삿짐 차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시골길을 달려 오래된 아파트 앞에 섰다. 벽은 낡아서 페인트가 벗겨졌고, 검은 녹물 흔적도 가득했다. 저녁을 먹으면서 오빠는 얼굴을 찌푸리며 이렇게 된 게 모두 도미 때문이라는 듯 도미를 노려봤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도미는 쉴 새 없이 가슴이 뛰었다. 말도 하기 싫었다.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고 약을 먹으면서 증상은 조금씩 나아졌지만 여전히 말은 나오지 않았다.
5학년 딸기반. 하필이면 왜 딸기일까. 수업이 끝나고 엄마와 학원에 등록하러 갔다. 문제지를 풀고 있는데 밖에서 들리는 ‘바보 같다, 모자란 거 같다’는 원장선생님의 말에 화가 난 도미는 문을 발로 차고 나왔다. 공원으로 가 음료수 자판기에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눌렀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처음 보는 남자아이가 자판기에 돈을 넣고 코코아를 뽑아주며 학교는 어디 있는지, 몇 학년인지 등을 물었다. 다음 날, 학교에 간 도미는 깜짝 놀랐다. 어제 공원에서 만난 윤동준이 전학을 온 것이다. 게다가 짝꿍이 되었다.
집에 돌아온 도미는 후진 학원에 대한 분풀이는 하는 오빠와 한바탕 싸움을 벌였다. 다음 날, 상담을 받으러 병원에 가는 바람에 학교에 가지 못했다. 아팠다는 도미 말에 윤동준은 식판에 밥을 받아다주고, 가방도 들어다주겠다고 했다. 허름한 집을 보여주기 싫은 도미는 집과는 반대방향으로 한참을 걸었다. 시골길을 따라 작은 동네가 나타났다. 계속 걷다 동네 맨 끝의 나무 대문집 앞에 멈췄다. 윤동준은 당장이라도 집으로 들어갈 기세였다. 당황한 도미는 휴대전화를 받는 척하며 엄마가 병원에 있다고 가봐야한다며 순간을 모면했다.
일요일, 윤동준에게 전화가 왔다. 외갓집에 왔다가 집에 가면서 도미네 집에 놀러오겠다는 거다. 놀란 도미는 얼른 나무 대무집으로 뛰어갔다. 약간 열려 있는 대문 사이로 집 안을 엿봤다. 마당에는 풀들이 제멋대로 자라 있었고. 사람의 기척도 전혀 없었다. 빈집인 것 같았다. 안심하는 순간, 방문이 열리더니 머리가 덥수룩한 꼬마가 나왔다.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뒤뚱거리며 쟁반을 들고 나왔다. 꼬마가 비틀대더니 장반이 떨어지고 밥덩이가 마당에 뒹굴었다. 그러자 꼬마는 주저앉아 밥덩이에 묻은 흙을 후후 불며 떼어냈다. 그렇다고 떨어질 흙이 아니었다. 마침 윤동준한테 전화가 왔다. 오늘은 못 오겠다는. 정말 다행이었다.
오빠는 동네가 후지고, 학원도 후지다고 고모집으로 보내달라며 악을 쓰며 울었다. 혼자 사는 고모는 오빠를 탐냈다. 틈만 나면 같이 살자고 했다. 도미가 오빠를 노려보자 오빠는 이게 다 도미 때문이라고, 아빠가 돌아가신 것도 다 도미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순간, 엄마가 오빠의 뺨을 때렸다. 그러자 오빠는 도미에게 달려들었다. 엄마가 말리는 사이 도미는 무작정 집을 뛰쳐나왔다. 한참을 걷다 보니 나무 대문집이었다. 살짝 마당에 들어갔는데 꼬마에게 들켰다. 꼬마를 따라 들어간 방은 엉망진창이었다. 방 가운데에는 깡마른 할머니가 누워 있었다. 꼬마는 도미를 부엌으로 데려가서는 냉장고에서 검은 비닐봉지를 꺼내 벌건 물이 줄줄 흐르는 고깃덩어리를 꺼냈다. 이미 썩어 있었다. 고장난 냉장고에서 온전한 것은 감자였다. 도미는 감자조림을 만들었다. 할머니와 꼬마는 도미가 만든 감자조림에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토요일, 도미는 나무 대문집에 갔다. 소리 나지 않게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방문이 열리자 동우와 도미는 서로 깜짝 놀랐다. 누런 이, 손등의 때, 떡진 머리. 도미는 따듯한 물에 동우를 씻겼다. 때구정물이 장난 아니었다. 잠시 후 윤동준이 왔다. 나무 대문집으로. 생일파티에 도미가 오지 않아서 음식을 싸들고 온 것이다. 도미는 윤동준을 제대로 볼 수 없어 마당에 풀을 뽑는 척했다. 윤동준에게 허름한 자신의 집을 보여주기 싫어 이곳으로 왔는데, 더 허름하고 낡은 나무 대문집이 자신의 집이 되고 말았다.
새벽에 잠이 깬 도미는 오빠 방에 들어갔다. 오빠는 결국 고모집으로 간 것이다. 책상 위에는 오빠가 아끼던 이어폰이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음 날 새벽, 도미는 저금통을 털어 고모집으로 갔다. 오빠는 여전히 찬바람이 불었다. 이어폰을 전해줬지만 이미 샀다는 말에 눈물이 나왔다. 더 이상은 남매가 아닌 듯한 기분이 들었다.
윤동준이 나무 대무집 할머니가 많이 편찮으셔서 병원에 입원하셨다고 했다. 도미의 거짓말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는 윤동준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다. 속이 부글부글 끊었다. 혼자 있을 동우 생각에 도미는 나무 대문집으로 갔다. 감자조림을 해서 밥을 먹고나자 동우가 책을 읽어달라고 했다. 도미가 고개를 흔들자 동우는 자신이 한글을 알려주겠다고 한 글자 한 글자 따라 읽으라고 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점점 재미있었다. 잃었던 웃음도 되찾았다. 동우 엄마는 동우를 낳다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하지만 동우는 엄마가 항상 자신을 지켜보고 있으며. 자신이 착해서 엄마가 행복할 거라고 했다. 그 말에 도미는 아빠를 생각하며, 아빠도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까 생각을 했다.
집 앞에서 엄마를 만났다. 오빠와 함께였다. 엄마는 오빠가 다시 우리랑 살기로 했다며 얼른 아빠한테 가자고 했다. 아빠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엄마는 오빠 손과 도미 손을 잡고 아빠 사진을 보며 이제는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오빠도 아빠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듯 아빠는 바라보고 있었다. 도미는 마음속으로 아빠에게 말했다. 자신이 잘못하면 우르릉 야단치고, 잘하면 별빛이 되어 우수수 웃어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