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 라이트에 비추어진 얼굴은 분명 고류지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단 한 곳이 결정적으로 달랐다. 왼쪽 뺨에 피가 흐르고 있고, 그 위의 왼쪽 눈이―원래 왼쪽 눈이 있어야 할 자리가―노란색 동그라미가 되어 있었다. 뭐야, 이, 이 노란 거……. 눈이 둘, 코가 하나, 입이 하나라는 인간 얼굴의 기본형. 그것을 망가뜨리는 이 황당한 노란색은 어쩐지 낯이 익었다. 표면이 까끌까끌했다. 그때 피와 감귤이 뒤섞인 듯한 그 냄새가 다시 났다. (……) 혹시 범인이 고류지의 왼쪽 눈을 도려내고, 그곳에 금귤을 쑤셔 넣은 것이 아닐까. 금귤은 감귤류 중에서도 제일 작아 지름이 3센티미터 정도이니, 넣으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들어가지 못할 것도 없다. (……) 식칼을 책상 위에 놓고, 이중으로 장갑 낀 오른손을 금귤로 뻗었다. 그리고 검지로 껍질 표면을 눌러봤다. 물컹.
--- p.14~15
무차별 살인귀―그런 위험인물이 폭풍으로 가로막힌 이 외딴섬에 있다고? 만일 그렇다면 서른일곱 명의 아이들 가운데 누군가일까(너무 어린 아이는 물론 불가능하겠지만), 아니면 육지로 건너간 척하고 아직도 섬에 숨어 있는 직원 중 누군가일까, 아니면 시설에 속하지 않은 외부 사람일까? (……) 그도 그럴 것이, 이번에는 내가 표적이 될지도 모른다. 싫다. 죽고 싶지 않다.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기로 한 입장에서 자기중심적인 말이 될지 모르지만, 그래도 내 목숨은 아깝다. 게다가 내가 이제부터 죽이려고 생각하는 목표물이 먼저 살해당하는 일이 또 일어날지도 모른다. 어차피 죽이려고 생각했던 인물을 누군가 대신 죽여준다면 잘된 일―은 결코 아니다. 그들의 숨통은 내 손으로 끊어야만 한다. 절대로. 반드시.
--- p.19~20
뭐야, 저 녀석, 혼자 열쇠나 만지작거리고, 기분 나빠……. 부모가 없으면 친구도 없는 건가……. 저렇게 되면 인생 끝장이지. 나는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야……. 조금 불쌍하지만, 그 시설의 애니까 말을 걸 수는 없겠네……. 저런 녀석이 있으면 교실 분위기가 나빠져……. 분위기 파악 좀 하고 교실 밖으로 나가면 안 되나……. 알았어, 알았다고.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내가 나가줄게. 나는 열쇠를 필통에 넣고 교실을 나왔다. 욱하는 마음에 나오기는 했지만,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학교 탐색을 시작한다. 몸을 움직이면 안 좋은 일도 잊을 수 있다고 흔히들 말한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발걸음에 맞춰 부정적인 생각이 계속해서 떠오르는 것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앞으로 어떡해야 좋을까. 중학교 생활은 계속 이런 느낌일까. 아니, 어쩌면 평생 이런 느낌일까…….
--- p.20~21
그건 그렇고, 이날도 고류지 패거리는 3인조로 한 여학생을 둘러싸고 있었다. 푸석푸석한 앞머리로 얼굴이 반쯤 가려진 얌전해 보이는 여자아이를. ‘집단 괴롭힘’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일반 학생이 시설의 아이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시설 아이들 사이에서 괴롭힘이 일어난단 말인가? (……) “야, 고미. 너는 몇 번 말해야 알아먹는 거야. 학교에서 쓰레기 뒤지지 말라고 말했잖아.” “고류지 선배에게는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았잖아요…….”
--- p.23
“아바시리, 우리는 아마도 평생 행복해질 수 없을 거야.” 그 말이 내 가슴에 깊숙이 박혔다. 우리는 평생 행복해질 수 없다―정말로 그렇단 말인가?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거지?
--- p.38~39
“남겨진 물건 주제에!” 모가미의 안경 뒤 눈동자가 빛을 잃었다. 메시모리는 그대로 떠나갔다. ‘남겨진 물건.’ 아동보호시설에서는 원칙적으로 18세가 되면 퇴소해서 자립해야 한다. 그 전에 입양되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모가미는 불행히도 받아줄 사람이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소극적인 성격이 마이너스로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고등학교에서도 계속 따돌림당해 자퇴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지금, 육지에 가지 못하고 계속 섬에 머물러 있다. 시설의 직원은 모가미에게 자신감을 주기 위해 아이들을 관리하는 리더 역할을 맡겼다. 성실한 그는 역할을 다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지만, 일부 아이들로부터 ‘남겨진 물건’이라고 얕보여 오히려 그 역할이 무거운 짐이 되어버린 것이 현재 상황이다.
--- p.49
카가노미야는 나불나불 떠들고 나서 문득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아, 맞다. 쥬라한테도 물어보는 게 어때? 아직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아서, 탄자와 군이 설명해줄 필요가 있겠지만.” “으, 으응, 그러네.” 탄자와는 수사 개시 이후 처음으로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 쥬라를 불러올 테니까 조금 기다려.” 카가노미야는 주머니에서 콤팩트를 꺼내 열었다. 그리고 거울을 보면서 평소대로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누구?” 그러자 카가노미야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눈초리가 올라가고, 눈동자가 도발적인 빛을 띠고, 다정다감하던 분위기가 아주 표독스러운 것으로 변모해간다. 그녀―쥬라는 주문처럼 대답했다. “나야.”
--- p.78~79
“……너, 대체 뭐 하고 있는 거야?”안 그래도 내가 신경 쓰이던 것에, 다행히 탄자와가 나서서 딴지를 걸어주었다. 아시하라가 맞은편 소파에 드러누워 상체를 일으켰다가 눕히고, 일으켰다가 눕히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유별나네. 참고인 조사를 하던 중 아니었나? “뭐냐니, 근력운동인데?” 아시하라는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대답하면서 복근 단련을 계속하는데, 전혀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근력운동이란 건 보면 알 수 있지. 내가 듣고 싶은 대답은, 어째서 이런 비상사태에 그렇게 태평스러운 짓을 하고 있느냐는 거야.” “태평스러운 짓이라고? 범인이 습격해 와도 물리칠 수 있도록 몸을 단련해두지 않으면 큰일이잖아.”
--- p.91
확실히 이 시설에는 이상한 녀석이 많다. 하지만 역시나 ‘이 녀석이라면 시체의 눈을 도려낼 것 같네’ 싶은 녀석은 없다. 애초에 어떤 녀석이 시체의 눈을 도려낼 수 있는가? 살인귀, 너는 어째서 그런 짓을 한 것이냐? 나는 절대 이해 못 할 그 내면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 p.94
“탐정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아.” “그런가? 탐정이 범인인 추리소설은 없어?” “……뭐, 그 점은 믿어달라고 할 수밖에 없겠네.” 내가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은, 이 섬에는 나 말고 또 한 사람의 살인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그 녀석은 시체의 눈에 금귤을 박아 넣는 엽기살인귀다. 그게 탄자와가 아니라는 보증은 없다. 이 사실을 의식하니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저기, 한 사람이 앞에 서면 좀 겁나니까 이제부터는 항상 나란히 걷기로 하자.” “나는 처음부터 그렇게 하고 있었어.” “어? 아, 그러고 보니…….” 탄자와가 건물을 나온 이후로 줄곧 내 옆에 나란히 있었다는 말인가. 처음부터 나를 경계하면서도 배려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난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러면 나도 그 규칙을 따르도록 할게.” 우리는 풀이 무성히 난 오솔길을 나란히 걸었다.
--- p.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