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들은 클래식 음악이 서양의 귀족 음악이고, 특수계층만이 누리는 고급문화라는 편견에 더욱 불을 붙이는 격이다. 여기서 음악가와 기획사의 이중 심리가 표출된다. ‘클래식 음악의 활성화, 대중화’를 부르짖으며 찾아가는 음악회, 문화 소외 지역을 위한 무료 음악회 등 봉사로 포장된 음악회도 열심히 개최하는 것이다. 문화 소외지역민들이 4, 50만 원을 호가하는 공연을 어찌 볼 수 있으며, 이런 음악회는 상위 1퍼센트의 특수계층만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인가.--- p.39
음악가는 사회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며, 사회를 아름답고 미래지향적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예술가 집단이다. 따라서 사회가 이들을 뒷받침해 주어야 하고, 이들도 사회적 책임을 느끼며 살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예술가들은 왜 한결같이 교육자를 꿈꾸는지 모르겠다. 영감, 창의성, 자유, 영혼, 표현, 열정 등의 단어들은 어디로 숨어버린 것일까.--- p.41
음악가의 가족, 친지, 지인들은 대부분 초대권으로 음악회에 와서 시계를 보거나 졸면서 앉아있다. 심하게는 얼굴도장만 찍고 돌아가는 경우도 다반사다. 수용자 중심의 음악회가 아닌, 실적을 위한 발표회식 음악회에서 감동을 받기는 매우 어렵다. 창작 발표회는 더 심각하다. 다라서 음악가 중심의 학구적인 프로그램에 초대된 청중들은 두 번 다시 클래식 음악회에 가고 싶지 않을 것이고,k 다시 가더라도 인사치레의 방문의 그칠 것이다. 청중 개발은커녕 ‘청중 몰아내기’가 아닌가 싶다.--- p.49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는가. 우리나라의 문화예술예산은 이렇게 특정인의 호주머니로, 불필요한 곳으로 흘러들어 간 것이다. 국가 보조금을 받는 대형 아트센터도, 시 보조금을 받는 문화재단도 비리로 얼룩진 ‘문화 권력 집단’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기금 심사 때 초청받는 심사위원 선정에 관해서도 한 번쯤 감사가 필요하지 않을까.--- p.107
선진국의 메세나 운동은 물품과 서비스 협찬 외에 예술상과 공모전 개최 등 후원 방식을 다양하게 늘려가고 있다. 또한 물리적 지원, 근시안적 협력 단계를 넘어 기업의 경영 노히우도 전수하고 있다. 즉, 자매 결연을 맺은 음악 단체에 경영 컨설팅을 제공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이들이 자생력을 가지도록 도우며, 이는 경제와 경영에 미약한 예술인들의 발전에 밑거름이 된다.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은 더 많은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이 더 양보할 줄 아는 것이고 이러한 정신으로 말미암아 ‘더불어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한국의 메세나 운동에서 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이 발휘되기를 소망한다.--- p.115
나는 희망한다. 독주회 한 번 개최할 때마다 체중이 줄어들 만큼 연습에 매진하는 연주자, 레퍼토리를 늘리고자 고서점을 뒤지거나 오선지와 씨름하며 편곡까지 하는 연주자, 방학 내내 정막한 곳에 틀어박혀 곡을 쓰는 작곡가, 도서실에서 논문 쓰느라 땀띠 났다는 음악학자, 극빈 가정 자녀에게 무료 레슨으로 봉사하는 교육자, 제자의 등록금에 정성을 보태는 교수, 콩쿠르와 오디션을 앞두고 연습실에서 힘든 시간을 함께 호흡하는 교수를 많이 만나보고 싶다. 모두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야 우리 음악계가 산다.--- p.147
이렇듯 유인촌 씨가 문화관광부 장관이 된 뒤로 문화계는 쑥밭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가 총대를 맨 공공기관장의 ‘물갈이’ 시도 또한 법률적 정당성에서 심대한 타격을 입었음에도 그는 부끄러운 줄을 몰랐다. 앞의 내용에서 밝혔듯이 문화예술계의 피해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정부는 줄줄이 패소하였다. 이명박 시대 한국 문화예술계의 통탄스러운 단면이다. 그 아픔과 상처를 누가 치유해 줄 것인가.--- p.184
스승만 바라보고 교수를 꿈꾸기보다는 자신의 적성과 능력을 발견하고, 그것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교육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세계 음악 시장의 추세, 전망 등도 발빠르게 고려하여야 한다.--- p.245
예술에서 ‘대충’이라는 단어는 없다. 죽을 때까지 배우고 연습하여야 비로소 완성되는 분야이다. 휴대폰 컬러링이 클래식 음악이라고, 클래식 음악 CD를 열심히 듣는다고,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모두가 클래식 마니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뼛속까지 클래식 음악사랑으로 무장되어 영원히 동거할 때만이 진정한 클래식 마니아, 클래식 음악가가 되는 것이다. 어릴 때 ‘신동’으로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음악가도 잠깐 인기를 끌다가 어느 순간 무대에서 사라지거나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된 사례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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