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호수, 강, 그리고 태양은 나의 친구들이었고,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내가 자랄 수 있도록 도왔다. 오랫동안 나는 어떤 사람들이나 그들과 나눈 삶보다도 그것들을 더 다정하고 더 친숙하게 느꼈었다. 그러나 내가 반짝거리는 호수와 왠지 서글퍼 보이는 전나무, 햇볕이 내리쬐는 바위보다 더 좋아했던 것은 구름이다.
이 드넓은 세상에서 구름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고, 나보다 더 구름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 세상에서 구름보다 더 아름다운 사물이 있으면 나에게 가르쳐다오! 구름은 즐거움을 주면서 위로도 해 주는 존재이다. 그것은 신이 구름에게 부여한 축복이자 재능이며, 분노이면서 동시에 죽음의 위력을 지녔다. 구름은 마치 갓 태어난 생명처럼 감미롭고 부드러우며 평화롭다. 그것들은 아름답고 풍요롭고 마치 착한 천사들처럼 너그럽다. 또한 그것들은 죽음의 사자처럼 어둡고 벗어날 수 없으며 또 인정사정 보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구름은 나에게 다정한 여자 친구이자 누이들이었다. 골목길을 지나가다가도 우리들은 마주치면 고개를 끄덕이며 아는 체했고 때로는 눈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또 그 당시 구름에게 배운 것 역시 나는 잊지 않았다. 구름의 모양과 색, 하늘에서 즐기는 유희, 함께 빙빙 돌며 추는 윤무, 이어지는 휴식. 그리고 그들이 흘러가면서 지상과 천국에 관해서 들려주는 이상야릇한 이야기들을…….
---「아름답고 우울한 구름」 중에서
건강하고 씩씩하며 낙천적인 것, 모든 심각한 문제들도 웃으면서 대할 줄 아는 자세, 비난의 말은 거부하며, 순간을 즐기면서 얻는 생명력.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사는 시대가 내세우는 슬로건이다. 이런 식으로 이 시대는 세계 대전에 대한 부담스러운 기억을 허위(虛僞) 속에 잊어버리려고 한다. 마치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이 과장되게 행동하고, 지극히 미국적인 것을 따라한다. 살찐 아기처럼, 분장한 배우처럼 일부러 과장되고 어리석게 굴면서 믿기 어려울 정도로 행복해하고 환하게 웃는다. 영어로 ‘스마일링smiling’이라고 하던가. 그런 낙관주의가 팽배하다. 환하게 빛나는 꽃잎들로 매일 새로운 치장을 하고 새로운 영화배우의 사진들을 걸고, 신기록을 나타내는 숫자들을 보며 즐거워한다.
---「대립」 중에서
우리가 어렸을 때는 슈바르츠발트에서 자란 전나무 둥치들이, 여름 내내 거대하고 튼튼한 뗏목 위에 실려 모든 강들을 지나 만하임으로, 때로는 저 멀리 네덜란드로까지 운반되었다. 뗏목 운반은 독특한 사업이었는데 강에 접한 모든 도시들에서는 봄이 되면, 처음 뗏목이 강 위에 나타나는 일이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마른 가지에서 꽃이 피는 것보다 더 소중하고 주목할 만한 일로 여겨졌다. 그런 뗏목(슈바벤 방언으로는 뗏목이라고 하지 않고 좀 둔탁하게 뎃목이라고 불렀다)들은 아주 키 큰 전나무와 가문비나무 둥치로 잘라 만든 것이었다. 껍질을 벗기기는 했지만 나무를 자르지는 않고 원형대로 짜 맞추었다.
뗏목은 여러 개의 마디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각 마디는 대개 여덟 개 내지 열두 개의 나무줄기로 짜 맞춰 그 끝을 모두 묶었다. 모든 마디와 마디 사이는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뗏목은 아무리 길어도 유연하게 움직이면서 강의 굽은 곳을 무리 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도 뗏목이 흘러가다가 갑자기 장애물에 부딪혀 정체하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
(중략)
우리 어린아이들이 무엇보다도 좋아한 멋진 동화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한 소년에 관한 것이었다. 그 소년은 옛날 어느 때인가 금지 규정을 무시하고 강 위로 흘러가는 뗏목 하나에 몰래 올라탄 뒤 네덜란드까지 갔다. 그리고 마침내 바다에 이르렀다가 몇 달이 지난 후에야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그의 실종을 슬퍼하던 부모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수년 동안 내가 마음속 깊이 남몰래 간직한 소망은, 바로 그 동화 속의 소년과 똑같이 해보는 것이었다.
---「뗏목 여행」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