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관 방에 들어선 즉시 조나스는 오늘은 돌려 보내지는 날이라는 것을 알았다. 노인은 손에 얼굴을 파묻고 의자에 앉아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조나스는 재빨리 말했다. 그리고 조금 망설였다.
'뭔가 제가 선생님을 도울 수 있는 일이 없다면요.'
노인은 조나스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부탁한다.'
그가 숨을 헐떡였다.
'이 고통을 좀 가져가 다오.'
조나스는 노인을 침대 옆의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는 재빨리 윗도리를 벗고 침대에 엎드렸다.
'손을 올려놓으세요.'
곧 노인의 손이 왔고, 손과 함께 고통도 그에게 건너왔다. 조나스는 마음을 가다듬고, 노인을 고문하고 있는 그 기억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혼란스럽고 시끄러운 곳에 있었다. 환한 이른 아침이었지만, 땅 위는 자욱한 노란색과 갈색의 연기로 뒤덮여 있었다. 그의 주위 어디에나, 그의 시선이 닿는 먼 곳까지 신음하는 남자들이 누워 있었다. 벗겨진 재갈이 대롱거리는 말 한 마리가 눈을 크게 뜨고,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공포에 질려 힝힝거리며 누워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미친 듯 뛰고 있었다. 말은 마침내 비틀거리더니 넘어져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조나스는 바로 옆에서 어떤 목소리를 들었다.
'물.'
바짝 마르고 갈라진 목소리가 속삭였다. 목소리 쪽으로 머리를 돌린 조나스는 자기 또래 소년의 반쯤 감긴 눈을 보았다. 소년의 얼굴과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먼지로 얼룩져 있었다. 그는 널브러져 누워 있었고, 회색 군복은 흘러내리는 축축한 피에 젖어 반짝였다. 전쟁터의 색깔은 기괴하게 밝았다. 먼지투성이인 거친 군복을 적신 피의 진홍색, 소년의 금빛 머리카락 속에서 반짝이는 잡초의 청록색. 소년이 조나스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물.'
그는 다시 애원했다. 그가 말을 하자 새로운 핏덩이가 그의 거친 군복 위로 쏟아져 가슴과 팔을 적셨다. 조나스의 한 팔은 고통으로 움직일 수 없었다. 찢어진 옷소매 사이로 자기의 너덜거리는 살과 튀어나온 뼈 같은 것이 보였다. 다른 한 팔을 시험하듯 움직여 보았다. 그는 허리춤에 물통이 있는 것을 느끼고 천천히 손을 뻗어 뚜껑을 열었다. 그 조그만 동작에도 때때로 손을 멈추고 아픔이 가라앉기를 기다려야 했다.
마침내 뚜껑이 열리자 그는 피로 물든 땅 위로 천천히 조금씩 팔을 뻗어 물통을 소년의 입술로 가져갔다. 애걸하는 소년의 입 위로 물방울이 떨어져 때묻은 턱으로 흘렀다. 소년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곧 그의 머리가 뒤로 떨어졌고, 경련하던 입술은 마치 뭔가에 놀란 것처럼 벌어졌따. 흐릿하고 어두운 빛이 그의 눈을 천천히 스쳐갔다. 잠시 후 소년은 조용해졌다. 그러나 사람들의 낮은 목소리는 사방에서 계속됐다. 부상당한 사람의 비명 소리, 물을 달라고 애원하는 소리, 엄마를 찾는 소리, 죽음을 원하는 울부짖음……. 그 곁에선 말들이 하늘을 향해 발길질을 하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저 멀리서 대포가 울리는 소리도 들렸다. 넘치는 고통에 어쩔 줄 모르며 조나스는 몇 시간 동안 거기 누워 공포에 가득 찬 시간을 보냈다.조나스는 사람들과 짐승이 죽어 가는 소리를 들으며 전쟁이 무엇인가를 배웠다. 마침내 이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차라리 죽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때 그는 눈을 뜨고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 노인은 자기가 조나스에게 한 짓을 견딜 수 없다는 듯 허공을 보고 있었다.
'날 용서해라.'
--- p.169-172
다시 한 번 놀이터에서 그랬듯이 조나스는 숨막히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금발 머리에 피를 흘리던 소년의 얼굴, 그 눈에서 생명의 빛이 사라지던 순간을 보았다. 기억이 되살아났다.
'아기를 죽였다! 아빠가 아기를 죽였다!'
조나스는 혼자 중얼거리며 자기가 깨달은 사실에 놀라 얼어붙은 듯했다. 그는 마비된 듯 움직이지 않고 계속 화면만 지켜 보았다. 아빠는 방 안을 정돈했다. 그리고 바닥에 놓여 있던 자그만 상자를 집어 올려 침대 위에 놓고 축 늘어진 아기의 몸을 그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상자의 뚜껑을 꼭 닫았다. 그는 상자를 들고 방의 다른 쪽으로 갔다. 그리고 벽에 붙은 작은 문을 열었다. 조나스는 문 뒤의 어둠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학교에서 쓰레기를 버리던 곳처럼 경사져 있었다.
--- p.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