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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감은 두 눈이 다시는 떠지지 않기를

지금 감은 두 눈이 다시는 떠지지 않기를

: 스물두 살 문학청년의 충격적 데뷔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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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1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84쪽 | 342g | 140*210*20mm
ISBN13 9791158772079
ISBN10 1158772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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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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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교시 강의를 듣고 오후 6시나 되어서 강의실을 나왔다. 도쿄 가을의 해는 애석히도 짧아, 어두움에 그 허전함이 배가 된 듯한 캠퍼스만이 피곤함에 지친 나의 하굣길을 동행했다. 그날도 내 삶의 허무함이, 무의미함이 내가 알지 못하는 이유로 밀려와 나를 아프게 했다. 그저 마음이 전부 녹아내려 남는 것이 하나도 없을 것 같았다. 몸에서는 하나둘 가시가 튀어나왔고 난 주변인들에게 피해를 줄까 발걸음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집에 빨리 가야 했다. 누군가에게 또 상처를 줄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 기대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정말 이상하게 이기적인 마음이 들었다. 자취방에 들어가 혼자 보내야 하는 밤이 너무 싫었다. 그 아픔이 무섭고 혼자 버틸 내가 가여웠다. 재촉하던 발걸음은 느려졌고 공포가 내 몸을 휘감았다.

눈물이 왈칵 날 것 같아 비틀거리던 발걸음을 멈춘 채 눈을 감았다. 누가 볼까 손으로 눈을 가리며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눈을 감은 체 했다. 손을 내리고 잠시 감았던 눈을 떴을 때 내 앞에 그 아이가 서 있었다. 그 아이에게는 좋은 향기가 났다. 봄의 벚꽃 같은 향기가. 내 어깨 정도 오는 키, 큰 눈에 높은 코, 작은 얼굴, 단아하게 묶은 머리, 이 아이는 일본인이라 보기 힘든 동서양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같은 학과에 있는 아이라 얼굴은 알지만 공통된 친구가 없어 서로 인사 한 번 해본 적 없는 그런 사이였다. “오츠카레(수고했어)!” 아이처럼 웃으며 내게 인사했다. 그 목소리는 평생 화 한 번 안 냈을 듯 부드러웠다. 묘한 미소였다. 분명 순수함이 가득 들어 차 있지만 이상히도 아련하고 또 뭔가 허전했다. 그녀의 무언가에 ‘아름답다’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고 내 몸의 가시는 한순간 모두 사라졌다. 그녀의 미소에 화답으로 난 옅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것과 견줄 수 없는 내 것이 창피했지만 나도 인사하고 싶었다. “오츠카레.”
--- p.43~44

분명히 부모님이 내게 주는 것에 감사해야 하며 그들의 선물인 내 삶을 소중히 해야 할 의무가 내겐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그들의 선물이 너무나 아프다. 너무 쓰리고, 또 고통스럽다. 이것이 내가 타국에서 걱정스레 전화한 부모님의 전화를 형편없이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고 또 집에 점점 가고 싶지 않아지는 이유이다. 뭐 이유와 변명은 한끝의 차이 밖에 안 날 때가 많지만. 깊은 수렁에서 탈출해 찾은 ‘우리’의 숲은 미로와 같았다. 붉은 나무들이 옆을 가로 막아 그의 행동에 제한을 두었다. 높은 나무들 위로는 저 멀리 희고 둥근 달이 보였다. 아니, 토끼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그 달에게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로의 끝없음에 그는 주저앉는다. 아무리 걸어도 답답함과 제자리만이 있을 것 같았다. 그때, 호미가 숲의 나무를 치며 나타났다. 그의 칼 질 한 번 한 번에 커다란 벽 같았던 나무들이 이지러졌다. 호미는 그에게 다가갔다. 호미의 손에는 달이 들려 있었다. 그는 토끼를 받아안았다. 호미는 그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속삭였고 그는 또 한 번 행복이라는 미소를 탐욕스럽게 지을 수 있었다.
--- p.106~107

우리는 신사를 나오며 다시 손을 꼭 붙잡았다. 이제 우리는 함께 내 자취방으로 갈 것이다. 나츠코가 ‘나츠코 특제 계란말이’를 해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밤에는 함께 킨타로에 갈 생각이다.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착한 내 여자친구를 쿤상에게 자랑하고 싶어졌다. 쿤상뿐만 내가 아는 모두에게 자랑해대고 싶다. 누구를 만나든 난 나츠코의 손을 꼭 잡고 있을 것이다.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이 손을. 아, 오늘은 그녀에게 그녀는 푸른 잎을 닮았다고 말해줘야겠다. ‘말해줄 걸 그랬다’ 하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정말 내 정신병은 모두 사랑의 결핍이었을까? 확언할 수 없다. 난 아직도 결핍이 현현한 세상이 증오스럽고 이해 못 할 슬픔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아직도 약이 필요하며 부모님의 전화를 형편없는 목소리로 받아댄다. 앞으로도 부모님의 속을 아프게 하는 일만 가득할 수도 있다. 호미의, 아니 ‘나’의 숲 역시 내 마음 깊은 곳 어딘가 아직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아직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이 죽도록 싫다. 하지만 난 지금 나츠코와 손을 맞잡고 있고 그 덕에 조금 행복하다. 죽도록 싫지만 그녀를 위해, 나를 사랑해주는 가족을 위해, 또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해 정말 죽을 수는 없다.
--- p.281~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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