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5.16으로 집권한 군사정권은 군자리코스 자리에 어린이공원을 짓기로 결정한다. 여러 갈등 끝에 군자리코스를 포기한 사단법인 서울컨트리클럽은 그 매각 대금으로 한양CC를 인수하게 된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급작스럽게 어린이대공원을 지었던 까닭이 궁금했던 차에, 당시의 사정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1972년 5월 평양에 밀사로 파견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북한 김일성 주석을 면담하고 ‘7.4남북공동성명’을 이끌어냈는데, 북한에서는 그에게 평양 시내 ‘어린이공원’을 관람시켰다 한다. 당시에는 북한이 우리보다 잘 살던 때여서 자랑하고 기를 죽이려는 의도였던 듯하다. 돌아와서 이 사실을 보고하자 박정희 대통령은 서울에도 당장 어린이대공원을 만들라 지시했다 한다. 즉시 조성하라는 명령을 따라 급하게 준비하다 보니 이미 부지가 잘 조성된 군자리코스가 ‘징발’되었다는 것이다. 어린이대공원은 1972년 12월에 공사를 시작해 1973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개원했다.
--- 「서울·한양컨트리클럽」중에서
골프에서, ‘명문 코스’와 ‘명문 클럽’은 다르다. ‘명문(名門)’이란 큰 업적을 이룬 인물을 많이 낸 뿌리 깊은 가문이나 학교 등을 이르되, 스포츠에서는 우승을 많이 하는 등의 뚜렷한 실적을 낸 구단 등속을 뜻한다.
골프장 가운데서는 첫째, 이름난 토너먼트 등을 개최하여 변별성이 검증되고 특출한 우승자들을 꾸준히 배출하는 등 골프 문화 발전에 기여도가 높은 골프 코스를 ‘명문’이라 하며, 둘째, 사회에서 명망이 높고 영향력이 큰 사람들이 회원으로 모여서 커뮤니티를 이루고 파급력 있는 문화를 지속적으로 만들어가는 클럽을 또한 ‘명문’이라 한다. 셋째, 위의 첫째, 둘째 조건을 함께 충족하는 곳은 두말할 나위 없는 명문이다.
첫째의 ‘명문 코스’를 대표하는 곳으로 미국의 유명한 퍼블릭 코스인 ‘페블비치골프링크스’를 들 수 있겠고 둘째의 ‘명문 클럽’으로 우리나라에선 전통적으로 ‘안양CC'를 높이 쳐왔다. 셋째의 조건을 충족하는 곳의 세계 정점에는 마스터스 토너먼트가 열리는 오거스타내셔널 골프클럽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예를 들자면 ‘나인브릿지’ 등이 있겠다
--- 「해슬리나인브릿지」중에서
골프는 당연히 스트로크 플레이 ‘내기’로 하는 줄 알던 시절이 있었다. ‘배판’ 있는 ‘홀 당 스토로크 내기’는 ‘핸디'를 적용해도 상급자에게 유리한 것이지만, 돈 잃은 '하수'가 후반쯤에 스스로 ‘땅’과 ‘따당’을 부르게 하여 기어코 지갑을 약탈하는 것을, 골프 강호를 지배하는 정파(正派)의 법도로 알았다.
내기 골프용 코스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시절 나의 골프 친우들이 ‘내기 골프의 성지’로 숭앙한 곳이 아시아나 컨트리클럽 동코스였다.
어느 화창한 가을날 이 코스에서 내기 골프 라운드를 했다. 인코스에서 시작하여 실력이 가장 좋은 ‘ㄱ’이 가을걷이 하듯 돈을 빨아들이는 가운데 16번(아웃 7번) 홀에 이르자, 가장 많이 잃은데다가 지난 홀에서 트리플보기를 한 ‘ㅈ’이 홧김에 배판을 불렀다. ‘배배판’이 된 것이다......
--- 「아시아나 컨트리클럽」중에서
선수 출신인 잭 니클라우스는 다른 코스 디자이너들과는 설계의 관점과 방법이 달랐던 듯하다. 그는 현장의매 홀 각 지점을 걷고 밟으며 직접 손으로 스케치를 했다. 티잉 그라운드와 IP 지점, 그린의 높이와 굴곡, 벙커의 위치와 모양 등을 플레이어의 진행 위치에서 보는 입체적 시각으로 그려냈다.
토목이나 조경을 전공한 설계가들이 등고선 도면을 주된 바탕으로 작업하는 것과 달리, 그는 플레이어의 눈높이에서 보는 최종적인 모습(Final Appearance)을 통찰하고 구현했다. 현장을 걸으며 내리막과 오르막, 보이는 구간과 안 보이는 구간을 직접 세세하게 스케치했다 한다.
“티잉 구역에서 그린이 보이게 한다”는 것이 잭니클라우스의 ‘코스 설계 철학’이라고 흔히 알려지는데, 그는 티잉 구역 뿐 아니라 모든 플레이 구역에서 골퍼가 ‘직접 보고 느끼도록(Look &Feel)’ 하는 직관적 배치를 중요하게 여겼다. 자기 눈으로 직접 보고 공략 방법을 판단할 요소들을 플레이어의 눈앞에 되도록 많이 드러내어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 플레이어가 자신의 능력과 한계(비거리, 정확도, 구질, 탄도......)를 스스로 깨달아 플레이 하도록 하는 것이 그의 설계 성향, 더 나아가 설계 철학의 일부라 하겠다.
--- 「잭니클라우스 골프클럽 코리아」중에서
15번 홀, 바다 건너 200미터 거리에 놓인 그린으로 공을 보내야 하는 플레이어의 심장 근처까지 바닷물은 밀려온다. 섬처럼 아득한 그린 너머에는 파인비치의 상징이라는 한 그루 소나무(Pine)가 바람 속에 흔들리고 있다. 그 뒤 수평선으로 언뜻언뜻 섬들이 떠간다. 핀을 향해 똑바로 공을 치면 170미터 이상 보내야 절벽을 안전하게 넘길 수 있으니 이 홀은 ‘플랜B의 자비’가 없다. 잘 치는 고수나 잘 못 치는 하수나 모두 그린을 직접 노리고 공을 날려야 하는 것이다. 프로 수준의 골퍼들은 그린 위 어느 자리에 공을 떨어뜨려야 할지 선택하겠지만 대부분의 골퍼들에게는 절벽을 넘겨 그린에 도달하는 것이 과제인 홀이다. 비교적 가까운 왼쪽 절벽 너머로 안전하게 공을 보낼 수는 있겠지만 이 장엄한 홀에서 누가 그렇게 비루하게 치고 싶겠는가. 그렇게 치고 나면 스스로를 탓하며 잠 못 이룰 것 같다.
--- 「파인비치 골프링크스」중에서
이 코스의 각 홀들은(모든 홀은 아니지만) 대략 세 가지 공략 루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겠다.
첫째, 베스트 샷의 경로이다. 캐리 벙커 등의 장애물을 넘긴 곳에 다음 샷을 하기 가장 좋은 자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는 그린 입구가 가장 열려있고 그린의 타원 방향도 길게 마주하게 되므로 어프로치 샷을 편하게 구사할 수 있다.
둘째, 표준 경로이다. 대략 IP(Intersection Point) 지점을 랜딩 존으로 여기고 공략하는 것인데 티샷을 안전하게 보낼 수 있으면서도 적당한 기술(Spin) 샷을 구사하면 어프로치에서 기회를 노릴 수 있는 루트이다.
셋째, 안전하게 우회하는 경로이다. 티샷에 자신이 없거나 실수했을 때, 레귤러 온 하기 어려우면 그린 주변의 전략적인 지점(Bail out area)으로 경유해서 어프로치 마무리하는 루트이다.
골퍼마다 자신의 능력에 따라 전략을 세워 ‘생각하는 플레이’를 하라는 것이다.
--- 「더플레이어스 골프클럽」중에서
‘잘 친 샷’에는 분명한 보상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 ‘샷 밸류 높은 코스’의 원칙이다. 그렇게 잘 친 샷의 볼이 떨어진 곳에서 핀을 공략하는 방향에 벙커가 가로막고 있지 않거나 그린의 타원 모양이 공의 진행 방향으로 나 있거나 해서 공을 잘 받아주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이렇듯 잘 친 샷의 가치가 높게 드러나게 하는 개념을 샷 밸류라 하며, 이 밖에도 14개의 클럽을 모두 사용하게 해서 골퍼의 모든 샷 기량을 테스트하는 것, 코스의 공정성 등까지 샷 밸류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설계가들은 샷 밸류를 높이기 위해서 페어웨이의 진행 방향을 비틀고 장애물을 설치하며, 그린의 모양과 방향에 변화를 주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설계가들 또는 코스 평가위원들은 ‘똑바로 치면 되는 코스’를 낮추어 보곤 한다.
90년대 초 이전에 문을 연 우리나라 골프장들은 대개 일본식의 ‘똑바로 치는 코스’들이었다. 레이크사이드CC를 그런 범주에 드는 하나로 간주하는 이들도 많다.
그런 면이 없지 않겠지만 나는 다소 다르게 본다. 최근에 만들어진 코스들이 샷 밸류를 높이기 위한 인위적인 장치들을 많이 적용하고 스타일리시한 조형을 추구하는 반면에, 정직한 토목 위주의 설계로 빚은 이 코스의 가치는 인위적인 설계 기교와 조형에 있지 않다. 티샷은 마음껏 칠 수 있도록 페어웨이가 넓으며 길게 남는 어프로치 거리는 잘못 맞은 공의 그린 안착을 허락하지 않는다.
--- 「레이크사이드 컨트리클럽」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