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의 빛 안에서 살고,
하나님이 하신 일 가운데 안식하고,
하나님의 손 안에 미래를 맡기는 것이다.
--- p.26
우리가 무엇을 예배하는지는 주일 아침이 아니라,
나머지 6일 동안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에서
가장 잘 증명된다.
--- p.53
자신을 의롭게 여기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도 그러기를 바라며 점점 요구가 많아지고,
판단하게 되고 늘 실망하게 된다.
--- p.57
하나님의 자녀는
가만히 앉아 소망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렇다. 은혜는 우리를 일으켜 소망으로 살게 한다.
--- p.68
우리는 정체성을 찾겠다는 소망으로 일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정체성을 찬양하며 일한다.
--- p.74
우리는 경험이나 연구를 통해 지혜를 얻지 않는다.
우리는 관계를 통해 지혜를 얻는다.
그 관계는 은혜를 통해 가능해진다.
--- p.75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도록
우리를 부르실 것이다.
그리고 그 일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실 것이다.
--- p.84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처했는가? 그렇다면 기억하라,
당신은 지금 모든 것을 아시고 전적으로 지혜롭고 선하신 분의
세심한 통제 아래 있는 것이다.
--- p.104
어쨌든 우리의 작은 왕국은
오늘 우리에게 매우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런데 은혜는 바로 이 왕국에서 우리를 구하고자 쉬지 않고 일한다.
--- p.108
“예수님은 단순히 나의 과거와 나의 미래를 위해 죽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사실 나의 지금 여기(here and now)를 위해서 피를 흘리셨다. 예수님은 내가 배우자, 말 안 듣는 중학생 자녀 또는 친구와 나눠야 할 힘든 대화를 위해 죽으셨다. 예수님은 늘 불만스러운 표정에 걸핏하면 화를 내는 상사 밑에서 일해야 하는 나의 몸부림을 위해 죽으셨다. 예수님은 문제 많고 엉망인 우리 집안에 감도는 긴장감을 위해 죽으셨다. 예수님은 성적 매력을 드러내라는 세상 문화의 유혹을 받는 나를 위해 죽으셨다. 예수님은 나를 낚아채는 물질만능주의를 위해 죽으셨다. 예수님은 타인의 의견에 대한 나의 두려움을 위해 죽으셨다. 예수님은 나의 불안이 주는고통과 우울이 끌고 오는 어둠을 위해 죽으셨다.…
하나님이 나를 완전하고도 철저하게 받아들여 주셨는데, 심지어 내 최악의 모습까지 받아들여 주셨는데, 결함 많은 인간의 인정을 받는 데서 마음의 평안을 누리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현재의 은혜는 관계를 왜곡시키는 수많은 두려움과 통제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가 하나님이 명하신 일을 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그분의 임재와 은혜로 다 마련해 주시는데, 저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있을지 왜 두려워하는가?”
--- p.61
“이 타락한 세상에서의 삶은 고단하다. 죄인이 죄인과 결혼해 사랑과 화평으로 공존하려 애쓰는 결혼 생활은 심신을 지치게 만든다. 솔직히 말해 부모 노릇도 피곤하다. 아이들이 서로 작당이나 한 듯 단체로 말을 안 듣는 날은 특히 더 그렇다. 만사를 아는 듯 행동하면서 불평거리를 찾는 이웃집 사람을 별로 친절히 대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때로는 내 마음을 대하는 것만으로도 기진맥진하다. 알다시피, 품어서는 안 되는 욕망이 있고, 해서는 안 되는 생각이 있지 않은가. 어떤 때는 나 자신을 질질 끌고 가다시피 해서 예배나 소그룹 모임에 가기도 한다. 기독교라는 다람쥐 쳇바퀴에서 빠져나와 그냥 멍하니 있고 싶지만 그러지 못할 때도 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면 이 모든 일을 또 되풀이해야 한다. 또 유혹에 시달리고, 부부가 또 서로를 오해하고, 친구와 또 갈등하고, 아이는 오늘도 말을 안 듣고, 감정의 사계절을 오늘도 한순간에 느낀다. 지치고 무력한 기분일 때는 시편 121편으로 달려가라. 우리가 찾아야 할 은혜가 거기 있다.…
이 시편은 우리가 늘 기억해야 할 두 가지 진리를 우리 앞에 들이민다. 첫째, 우리는 홀로 이 싸움을 하는 게 아니다. 우리를 지키시는 분이 계시며 그분은 우리가 안전하리라고 약속하신다. 둘째, 우리를 지키시는 분은 절대 쉬지 않으신다. 그분은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영원히, 늘, 우리를 지키고 돌보신다. 지치지 않고 우리를 지키시는 분이 나의 도움과 힘이 되신다. 지칠 때는 그분께 달려가라.”
--- p.65
“하나님은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아신다. 하나님은 절대 내 연약함에 충격을 받거나 낙담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은혜로 내게 다가오시는 이유는 내가 연약해서 하나님 없이는 사나 죽으나 아무 소망이 없기 때문이다. 내 연약함에 충격 받고 낙심하는 이는 바로 나 자신이다. 내 연약함이 나를 괴롭힌다. 내 연약함 때문에 나는 창피하다. 내 연약함 때문에 나는 숨고 싶고, 나를 덮어 가리고 싶다. 연약함 때문에 나는 사람들 앞에서 과장된 몸짓을 보이고 혼자 있을 때는 나 자신을 기만한다. 예수님의 복음을 깨닫지 못하는 한 연약함은 나를 미칠 지경으로 몰아갈 것이다.
복음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약하고 무력한 백성에게 그분의 강력한 은혜를 부어 주시는 강하고 능력 있는 구주 이야기다. 그분은 내 연약함을 직시하게 하시며, 그리하여 그분에게 달려와 능력을 구하게 하신다. 그분은 나를 너무 거대해서 올라갈 수 없는 산으로 부르시고, 그래서 내가 무력함을 깨닫고 그분을 바라보게 하신다. 그분은 나를 인도해 실패를 맛보게 하시고, 그래서 내가 그분 안에서 소망을 발견하게 하신다. 그분은 내가 사실 얼마나 연약한지 힘써서 증명하시고, 그래서 내가 은혜로 나를 능력 있게 하시는 그분의 부르심을 반가이 받아들이게
하신다. 낭떠러지 끝에 이르는 것도 어쩌면 그리 나쁜 일은 아니다. 나를 기꺼이 돕고자 하시는 능력 있는 구주를 거기서 만난다면 말이다. 그러므로 연약함 중에 부르짖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 연약함을 인정하는 일은 나를 강하게 하는 은혜를 존중하고 축하하는 법을 내 마음에 가르치는 일이다. 우리는 다음 주 어느 시점에 또 자신의 연약함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스스로 강하다고 자신을 설득하려 하겠는가, 아니면 강하신 분께 달려가겠는가.”
--- p.66
“…문제는 우리가 대체로 너무 작은 것에 그냥 쉽게 안주해 버린다는 것이다. 우리는 작은 변화, 조금의 성장, 약간의 성숙에 만족한다. 우리는 얼마 안 되는 성경 이해와 변변찮은 신학 지식에 안주한다. 구속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고 말하지만, 은혜가 은혜의 일을 완료하기 훨씬 전부터 우리는 영적으로 만족한 상태다.
자녀 교육이 좀 효과 있어 보이면, 결혼 생활이 좀 할 만하면, 직장 일이 힘들지 않으면, 재정 상황이 참사 수준만 아니면, 좋은 집에 살며 좋은 교회에 다니면, 건강이 좋으면 우리는 대개 만족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만족하지 않으신다. 죄가 더는 없을 때까지 우리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계속 필요하다는 것을 하나님은 아신다. 우리가 완전히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할 때까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간섭이 계속 필요하다.…
우리 구주께서는 우리가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하는 순간에도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 구주께서는 자기 손으로 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은혜 주기를 그만두지 않으신다. 구원 사역에 대한 열심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분의 은혜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마칠 때까지 고삐를 늦추지 않으신다.
그래서 우리는 간혹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계획하지 않은 일을 처리해야 할 때도 있다. 내 인생에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걱정거리를 해결해야 할 때도 있다. 계획에 없고, 예기치 못하고, 원하지 않은 일을 마주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 일을 겪는 이유는 내 주님이 그 모든 힘들고 불편한 순간들을 사용해 나를 그 만족 상태에서 비틀어 빼내셔서 나로 주님의 구속을 존중하게 만들고 다른 어떤 방식으로는 불가능했을 변화를 내 마음과 삶에 이루시려 하기 때문이다. 주님은 내가 쥔 내 버팀목, 내 정신을 산만하게 하는 것을 빼앗아 없애실 것이다. 주님은 내 약점을 폭로하실 것이며, 그래서 주님 보시기에는 내게 필요한데 정작 나 자신은 없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결국 주님께 부르짖으며 구하게 하실 것이다.”
--- p.114
“예수님은 원칙과 약속만 한보따리 들려서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지 않으신다. 우리에게 가이드북만 주시고는 잘 따라가 보라고 하지 않으신다. 그렇다. 예수님은 훨씬 더 많은 일을 하신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가신다! 모든 상황, 모든 장소, 모든 관계, 모든 순간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절대 해낼 수 없음을 예수님은 알고 계신다. 예수님은 우리가 곤경에 처한 순간 행동에 돌입하는 구조대가 아니시다. 우리가 곤경에 처한 그 순간에 예수님이 함께하시는 것은 그때까지 계속 우리와 함께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악과 분투할 때 우리에게 도움이 될 유일한 선물을 주신다. 바로 예수님 자신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여정이 끝나기까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그분 안에 있음을 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 그분 자신이 곧 예수님이 은혜로써 주시는 최고의 선물이다.”
--- p.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