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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초병이 있는 겨울별장

보초병이 있는 겨울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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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2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88쪽 | 462g | 140*200*20mm
ISBN13 9788974565336
ISBN10 8974565331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사람들은 과거사 캐내기를 좋아하지.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어떻게 나라고 얘기할 수 있겠어. 과거와 결합된 현재가 개인적인 삶의 형태로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것 역시 나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로는 불충분해. 소문만으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는 없지. 내게 무슨 일인가 일어났고 나는 지금 이곳에 있어. 그렇다면 이게 나일까? 내가 나라면, 어딘가에는 내가 아닌 나도 있지 않을까?”

-영미는 이전에 경험했던 모든 것들이 한 순간에 파괴되었음을 느꼈다. 이런 세계가 이토록 가까이 있었다니. 숨 막힐 듯 진부한 일상 속에,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존재하고 있었다니. 새끼 노루의 시신은 심오하고 야릇한 현실을 대변해주고 있는 듯했다. 죽음에 대한 삶의 우월성보다 더 원초적인 것은 없으며 인간들이 세운 화려한 기술과 진보는 환상에 불과하다고.

-유리는 천천히, 보라는 듯 당당하게 옷을 벗었다. 그녀는 한 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다른 손으로 아랫부분을 가린 채, 미소 지었다. 그것은 불가사의할 만큼 충격적인 미소였다. 너무 미묘해서 해석하기 어려운,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그녀에 대한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미소였다.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려온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짓궂음이 묻어 있었다. 또한 그 미소에는 어떤 흥분이 엿보였다. 성적 흥분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모호한 어떤 것.

-길가에는 물푸레나무가 비스듬한 햇살을 받으며 파릇파릇 돋아난 잎새를 떠받치고 있었다. 살갗을 파고드는 햇볕도 포근했고 공기마저도 따뜻했다. 그 따뜻한 공기 덕분에 몸 안의 온기가 되살아났다. 돌의 내음, 풀잎의 내음이 코끝으로 전해졌다. 이제 곧 꽃잎은 꽃망울을 피울 것이다. 빨갛고 노랗고 하얀 꽃들이 향기를 내며 눈을 어지럽힐 것이다. 우리는 꽃들과 더불어 별장에서 나가겠지. 벚꽃이 날리고 꽃망울을 품은 철쭉이 꽃을 피우면,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앞으로 살아가는 내내 별장에서의 경험은 끊임없이 질문들을 제기하며 우리를 괴롭힐지도 모른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살아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며 자유란 무엇인지. 각자 질문에 답하면서 자신의 삶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보다 확실하고 덜 혼란스러운 세계로 버스는 나아가고 있었다.

-갈증이 났다. 흉통이 시작됐고 토할 것 같았다. 치커였다. 몸 속 깊이 숨어 있던 바이러스가 피부를 뚫고,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려 했다. 몸이 거꾸로 뒤집힌 듯 했고 물 위를 둥둥 떠내려가고 있는 듯 했다. 그때서야 영미는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치커는 질병도 아니었고 한때 유행인 바이러스도 아니었다. 잊어버려야 할 아픈 추억도 아니었으며 묻어버려야 할 죽음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것은 두고두고 기억될 공포이자 재앙이었다.
--- 본문 중에서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필리핀의 치커 섬에서 시작된 원인불명의 바이러스가 아시아 지역으로 퍼지기 시작할 무렵, 영미는 혈액원 동료 간호사들과 함께 군부대로 출장을 갔다. 출장팀은 군 장교 별장인 용호별장에 머물며 군부대를 다니며 채혈을 했다. 채혈을 마친 후 영미는 양천시에 나갔다가 코피를 쏟는 사람들과 마른기침을 하는 사람들, 끊임없이 이어지는 장례버스 행렬을 목격했다. 이상함을 느끼고 뉴스를 찾아보지만 양천시에 대한 보도는 없었다. 별장에 돌아온 후 영미는 대위로부터 격리를 통보받았다. 대위는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가 부지기수이며 정부에서 거짓말을 한다고 했다. 지금 양천지역 경계에는 군인들이 통제중이며, 들어갈 수도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며 정부에서 모든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을 한 곳에 몰아넣고 집과 시설물을 폭파 시켰다고 말했다. 뉴스에서는 양천시가 폭설로 인해 무너진 인가와 축사가 수십 채에 달하며 모든 도로가 유실됐다고 보도했다.

영미는 바이러스에 감염돼 쓰러지고 며칠간 혼수상태에서 재인의 간호를 받으며 회복되었다. 그 사이 별장 안에는 더 이상 먹을 것이 없게 되고 대위는 사냥을 지시했다. 노루를 사냥한 그들은 주방 바닥에 앉아 피를 나눠 마시는 의식을 진행하던 중 대위는 ‘소원성취 게임’을 제안했다. 게임에서 이기면 3층에 있는 VIP룸을 쓰게 해 주겠다는 것이다. 대위는 출장팀을 한 곳에 모은 뒤, 소원을 들어준다는 명목 하에 안상병과 수연, 박상병과 유리의 성관계를 지시하고 정일병이 촬영했다. 봄이 왔지만 치커바이러스는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 모든 통신이 끊기고, 극도의 불안감속에 있을 때 재인은 김 기사로부터 격리가 해제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위는 그 사실을 숨기지만, 생명에 위협을 느낀 출장팀은 탈출을 결심했다. 실행 당일, 출장팀은 대위에게 격리해제를 통보받았다. 대위는 한 사람씩 불러 만약 이곳에서의 일을 발설할 경우, 3층에서 촬영한 동영상을 인터넷에 유포시키겠다고 말했다. 출장팀이 별장을 벗어난 순간, 총성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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