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딸 셋, 아들 하나인 집안의 막내아들입니다. 계속 딸만 낳다가 아들 하나를 보았으니, 가족들이 얼마나 기뻤을까요? 특히 모습도 뵌 적 없는 할머니께서 가장 기뻐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할머니께서 아무리 기뻤다고 한들, 과연 어머니의 기쁨에 비교할 수 있었을까요? 내가 태어난 때는, 대를 이을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자는 갖은 구박을 받았던 시대였습니다. 할머니께서도 예외는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내리 딸만 셋 낳은 어머니를 엄청 구박하셨다고 합니다. 할머니의 성격이 유독 모질었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자고로 여자란 집안의 대를 이을 사내아이를 꼭 낳아야 한다는 것이 그 시대의 중요한 가치관이었을 뿐입니다. 어떻게든 손자를 보고 죽는다면서 엄마를 힘들게 하셨다는 할머니께서는 기어이 소원을 이루셨습니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그렇게 힘들게 얻은 아들이었기에, 어머니의 아들 사랑은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어릴 때 내 별명이 ‘엄마꼬랑지’였다고 합니다. 마치 엄마 곁을 떠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하도 엄마만 따라다닌다고 해서 붙은 별명입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도 한동안 어머니가 나를 업어 통학시켜줄 정도였습니다. 내가 얼마나 어머니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는가 하면, 나를 업은 채 누나들 도시락을 챙기어 학교에 보낼 정도였습니다. 얼마나 무겁고 힘드셨을까요? 어머니는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좋아하기에 참고 견뎠던 것입니다. 내 기억으로는 어머니가 단 한 번도 그렇게 달라붙는 나를 타박하거나 혼내신 적이 없습니다. 커서도 나는 어머니와 잠시도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독자들이 비웃을지 모르지만, 고3때에도 어머니는 독서실까지 함께 걸어가 주셨습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함께 걸으면서 성경 구절도 알려주시고, 응원과 위로의 말씀을 조곤조곤 들려주시곤 했습니다. 학력고사(지금의 수능시험)를 앞두고 있을 때였습니다. 며칠 전부터 너무 초조하고 불안했습니다. 당일 아침까지도 그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차려준 아침을 먹고 신발을 신는 순간이었습니다. 갑자니 어머니가 쓰시던 손수건을 나에게 내밀었습니다. “초조해지거나 문제 풀기 힘들 거든 엄마 냄새를 맡으렴. 엄마가 항상 옆에 있다고 느낄 수 있으니까.” 손수건을 받아드는 순간 비로소 마음이 차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힘들 때 늘 편안함을 주던 어머니 냄새가 손수건에 오롯이 배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어머니 등에 업혀 맡았던 그 냄새, 세상에서 제일 좋고,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여 어디에서도 살 수 없는 어머니의 향기였습니다. 시험장에서 가끔 손수건으로 어머니의 냄새를 맡으면서 차분하게 임할 수 있었으며, 실수하지 않고 내가 공부한 만큼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라 왔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단 한 번도 부정적인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잘못을 하더라도 지적하고 다시는 그러지 못하도록 혼을 내면서도 부정적인 표현을 쓰지 않았습니다.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한 사람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이나 기대, 예측이 그 대상에게 그대로 실현되는 경향을 말합니다. 즉 주위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기대하면, 상대방은 기대에 부응하는 행동을 하게 되고, 결국 기대에 충족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이론입니다. 이와 반대 개념을 가진 효과를 스티그마 효과[Stigma Effect]라고 합니다. 우리말로 낙인 효과라고도 하는데, 무언가 편견을 가지고 한 사람을 부정적으로 보게 되면, 그 사람은 결국 좋지 않은 일을 되풀이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한 번 죄를 지은 사람들이 꼭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 바로 그것이 스티그마 효과가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주위 사람들의 편견이 크게 좌우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저 사람은 그럴 것이다.’라는 부정적 편견이 알게 모르게 작용하여 상대방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