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너무 피곤한 나머지, 비몽사몽이던 제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장면은 엄마가 다섯 마리의 고양이 중 혼자 노란색 털을 지닌 새끼 고양이를 데려왔다고 말하며 활짝 웃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내 무릎 위에 놓인 작은 생명의 따뜻한 감촉도요.
--- p.12, 「일 년에 한 놈씩」 중에서
“일란성 쌍둥이는 하나의 집이 차차 분열되어서 두 개가 되는 거라 지금 단계에선 알 수가 없어요. 그런데 요 녀석들은 한 명이 한 개의 집을 가진 이란성 쌍둥이예요.” “그럼 어떡해요?”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어떡하긴요. 잘 키우면 되는 거지요.”
의사는 웃으며 말했다.
--- p.38, 「콩콩네 이야기보따리」 중에서
대문을 열고 나가 아빠를 마중했다. 살면서 한 번도 달갑지 않았던 취한 아빠를 보며 잠옷 바람에 아빠를 마중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가늠해보았다. 씻지도 않고 내 침대에 앉은 아빠에게 손 세정제를 건넸다. 아빠는 시키는 대로 열심히 손을 비비며 웃었다. 그러곤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빠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니?”
--- p.83, 「엄마, 아빠 딸로 살아가는 일」 중에서
그때 집에서 우리 가족은 모두 외딴 섬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서로에게 관심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 p.103, 「서툰」 중에서
도로에서 다른 차를 배려하지 않고, 곡예 운전으로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것만이 성공으로 빗대진다면 나는 앞으로도 쭉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깜박이를 켜는 누군가를 받아주며 더불어 살아가는 능력이 성공의 척도라면 나는 꽤 자신이 있다. 성공을 위해 기쁘게 노력할 자신 말이다.
--- p.120, 「인생은 운전과 달라요, 여보!」 중에서
그러다 우리는 다시 만났다. 다시 돌아온 우리의 모습을 발견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다. 내가 그들 없이 살 수 있을까? 내 마음속에 해결되지 않은 물음은 그 서러운 시간을 지나 내게 알려준다. 순수한 삶의 모습으로 뻗어 나가라고. 유산처럼 쌓인 사랑을 믿으라고. 다시 두터운 색채로 우리 집은 살아난다. 엄마는 햇살로 나를 감싼다. 지금 가족이 내 손을 잡아준다.
--- p.155, 「작별 인사」 중에서
벽에 걸린 사진을 본다. 내 곁에 선 엄마와 딸 옆의 내가 시공간을 넘어 한 사람인 듯 닮았다. 딸을 닮은 손녀를 보며 엄마의 엄마였던 외할머니를 생각한다. 엄마도 외할아버지 얼굴을 모른다 했으니 청상靑孀으로 남매를 키운 할머니가 외동딸에게 쏟았던 극진한 사랑은 익히 알고 있다. 엄마도 딸이었다. 딸이 엄마가 되는 삶은 그렇게 돌고 돈다.
--- p.195, 「가족, 뫼비우스의 띠」 중에서
“보리야, 목욕할까?”라는 말만 해도 불쌍한 표정으로 눈을 찡그리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던 보리. 보리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던 말이지만, 표정이 너무 귀여워 딱 한 번만 그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 “보리야, 목욕하자!”
--- p.217, 「네 발 달린 우리집 막내」 중에서
문득 할머니 영상을 찍었던 때가 기억난다. 그때는 그 가치를 미처 몰랐지만 하나둘 모인 할머니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그 순간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깨닫는다. 할머니는 우리 가족 채널에 26편의 영상을 남기고 2020년 3월 끝내 세상을 떠나셨다.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많은 영상을 남길 수 있었을 텐데 26편이라는 수가 너무나 아쉽다. 그래도 이마저 없었다면 정말 서운했을 것이라 생각하며 오늘도 할머니 영상을 꺼내 봤다. 영상에 비친 할머니를 한참 바라보다 문득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 영상을 찍어두길 정
말 정말 잘했다. 진짜 잘했다!’
--- p.241, 「가족 유튜버로 살아간다는 것」 중에서
(2013년 1월 28일 엄마가 아빠에게) 그동안 참 수고가 많았어. 이젠 무엇보다 당신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해볼 때인 거 같아. 그동안은 앞만 보며 살아왔잖아. 잠시 마음에 여유를 갖고 주변을 돌아보자. 무엇을 덜어낼지, 무엇을 보탤지 같이 생각해보자. 아직은 여러 가지로 아이들에게 우리가 필요한 때이긴 하지만 이쯤이면 우리 부부의 미래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도 세울 필요가 있는 것 같아. 그동안 잊고 지내던 당신의 꿈을 생각해보고 하나씩 준비해보자고.
--- p.257, 「우리 가족의 교환 일기」 중에서
닳고 닳아 빛바랬을 이 두 글자에 누군가 느낌표를 달아줬으면 좋겠다. 훗날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마음가짐에 대한 해답을 찾는 일을 ‘안 해도 별 상관없던 숙제가 아닌 무서운 선생님이 내준 숙제나 제대로 하지 않으면 별안간 큰일이 나던 과제처럼 나를 긴장케 하는 숙제’로 여겨야 할 것 같다.
--- p.297, 「가족이란 겨우 두 글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