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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란

토란

[ 개정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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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2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372쪽 | 460g | 133*200*30mm
ISBN13 9788954676335
ISBN10 8954676332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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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부부란 무엇인가? 적인가, 동지인가. 그와 그녀의 관계를 단적으로 설명하긴 힘들다. 명백히 동지는 아니고 그렇다고 적으로 단정하기에도 다소 의아한 데가 있다. 둘이 싸워서 한쪽이 지면 이긴 쪽이 진 쪽을 보고 쾌감을 느껴야만 적의 관계가 성립이 되는데 이들의 양상은 다르다. 싸움 끝에 벌렁 나자빠진 상대를 보면 그 남루한 꼴이 보기 싫고 미워서 다시 싸우고 상처받고 또 싸우고…… 그들은 싸우기 위해 태어나고 싸우기 위해 맺어진 부부처럼 보였다.
---「토란」중에서

남자의 눈에 산장이 고요해 보였고, 고요한 산장이 마음에 들었다는 남자의 말이 우스워서 여자는 웃었다. 고요라니…… 권태가 덕지덕지 쌓인, 보지 말았어야 할 인생의 비밀을 일찍 엿본 죄로 삶에 대한 정열이나 어떤 희망도 품지 않는 한 여자가 만들어내는 푸석푸석한 마른 날들의 풍경이 타인의 눈에는 고요하게 비칠 수도 있다니.
---「마른 날들 사이에」중에서

사내는 마룻바닥 대신 나경의 가슴에 발자국을 새기고 도망쳤다. 나경은 시커먼 발자국이 찍힌 가슴을 닦아내지 않고 지퍼를 채우는 것으로 마무리지었다. 어린 그녀는 몰랐다. 지퍼로 잠가진 가슴은 시간이 지날수록 먼지가 쌓이고 발자국도 점점 또렷해진다는 것을.
---「비하리에서, 나는」중에서

사랑이 천편일률적으로 같을 필요가 있는가? 여자는 남자를, 남자는 여자를 사랑해야만 한다는 원칙이 어디에 나와 있는가? 이런 내 마음과 그 여자의 감정도 존중되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순정성에 있어서 여느 사랑보다 순도가 높으면 높지, 낮지 않은 다음에야.
---「불두화」중에서

누구나 일생에 한 번쯤은 붉은 물이 뚝뚝 흐를 것 같은 강렬한 순간이 존재할 것이다. 간혹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선명하고 짙어서 두 눈이 뽑힐 것 같은 시간이 자기도 모르게 지나갔다는 걸 뒤늦게 깨닫기도 할 것이다. 그러면 수렁에 발을 빠뜨린 것처럼 허둥대다가 진흙이 목까지 차올라 숨이 턱턱 막히게 될 즈음에야 어렵사리 수긍하겠다. 홍수가 잠든 마을을 삼키듯이 소리도 없이 왔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뒤통수를 치고 가버려서 다들 그 순간을 선연한 핏빛으로 기억하는지도 모르겠다.
---「파꽃」중에서

양지뜰댁이 제 오라비들 험담 끝에 마침표를 찍듯 하고야 마는, 죽으라는 소리가 오늘따라 노인의 명치끝을 아프게 찌른다. 늙어가면서 기쁨이나 설렘 같은 좋은 감정은 점점 엷어지는 데 반해 이상하게도 서러움이나 노여움은 새록새록 진하게 느껴진다.
---「거미집」중에서

내 시대는 여자가 자신과 해로할 남자를 고를 수 있는 행운이 없었지. 그러나 난 남은 인생을 살필 수 있고, 나 자신을 위해 돈도 시간도 쓸 수가 있어. 그것만으로도 족해. 모든 걸 전부 내주었으니 책임지라고 뒤엎어지는 일, 사랑이라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하는 찐득찐득한 요구에 넌덜머리를 내는 다른 쪽이 있다는 걸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해. 그래야만 늙어서도 지청구꾸러기가 되질 않아.
---「거미집」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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