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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의 풍경

김춘수의 풍경

: 한 스타일리스트 시인의 흑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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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1월 04일
쪽수, 무게, 크기 368쪽 | 436g | 134*200*22mm
ISBN13 9788970129426
ISBN10 8970129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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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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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그야말로 시 아닌 것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등산도 바둑도 스포츠도 자동차 운전도 하지 못했다.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비행기도 타지 못했고 쉰일곱 살에 경북대학교에서 영남대학교로 교수 자리를 옮겨 연구실이 연구동 22층 건물의 복판, 12층에 배정되었을 때, 그 방에 들어가서 창밖을 내다보다가, 갑자기 “아……!” 하고 주저앉았다는 말이 전해지기도 하는, 높이에 대한 공포를 가진 병증病症의 시인이었다.
--- p.16

트릭이라는 말은 그가 알쏭달쏭한 시를 써놓고 그것을 궁금해 하는 독자들에게 넌지시 뽐내며 하는 말이었다. 그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시행을 만들어 놓고 독자가 안달하는 것을 퍽도 즐겼다.
--- p.26

김춘수 시인은 스스로가 베일에 싸여 있기를 좋아했다. 점심식사도 여러 사람이 드나드는 학교 구내식당에는 웬만하면 가지 않았고 양복도 남이 입는 색깔의 양복은 되도록 피했다. 그는 연황색 싱글 포켓 셔츠나 플란넬 셔츠, 베이지색 양복, 올이 굵은 코르덴 재킷을 자주 입었다. 여러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그 모습 그대로, 평소에는 노타이 차림이다가도 격식을 차릴 때는 주로 나비넥타이를 맸다. 나비넥타이는 그 당시 우리의 관습으로는 용기가 없으면 할 수 없는 복식이었다.
--- p.63

“세상에 시라는 게 있었구나!”
고양된 어조로 손가락을 조금 떨면서 했던 시인의 이 말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간다의 책방에서 우연히 뽑아 든 헌책, 거기서 만난 릴케와 김춘수의 정신적 접신은 영감 이상의 영혼의 결합, 바로 그것이었다 할 수 있다.
--- p.106

시인은 백지 같은 결벽증 속에서도 마음속으로는 수 십 가지 생각과 사상事象을 이어붙이며 생각의 연속무늬를 짜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의 시론을 빌리자면, 이 세상엔 사물은 없고 그 사물을 지칭하는 언어가 있을 뿐이다. 그 언어를 최초로 불러주는 사람이 시인이다.
--- p.130

던져두면 한갓 사물의 이름일 뿐인 명사들이 그의 시에 편입되면서 시의 향기를 발하는 언어로 변신했다. 시인의 연금술과 같은 언어 제조의 일면이다. 새로운 언어는 시인의 손에서 태어난다. 그래서 시인은 창조하는 사람이다.
--- p.147

김춘수 시인이 난해한 시를 쓰고 무의미시라는 돌출한 이론을 펼칠 때, 우리는 그가 기교를 말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솔직한 시인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그가 ‘새똥 냄새도 오히려 향긋한 저녁’을 바라는 시인이었고, ‘시를 통해 언어 실험을 극한까지 밀고나가려던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했던 시인이라고는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김춘수는 범접하기 어려운 고급한 예술정신을 지향했던 엘리트이자 자기신념에 투철했던 실험 시인이었다.
---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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