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처음으로 협업한 사람은 미슐랭 별을 받은 셰프들로 리에르뉘에 있는 ‘래르 뒤 탕(L’Air du Temps)’의 상훈 드장브르(Sang-Hoon Degeimbre), 드라나우터에 있는 ‘인 드 불프(In de Wulf)’의 코베 데즈라몰트(Kobe Desramaults)였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만나서 브레인스토밍을 했고, 그들이 준비하던 후보 메뉴 아이템들을 논의했다. 그런 모임 중에 상훈 셰프가 “베르나르, 키위 냄새를 맡았는데 바다 냄새까지 맡게 되는 것은 무슨 이유때문일까요? 이게 가능한가요?”라고 질문했다. (…) 겉보기에는 관계없어 보이는 이 두 재료 사이의 아로마 관계는 첫 푸드페어링의 토대가 되었고, 여기에서 ‘키위트르(kiwitre)’가 탄생했다. 상훈 셰프의 이 탁월한 창작물은 래르 뒤 탕의 시그니처 음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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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잡식동물은 언제나 잠재적으로 위험한 물질들을 경계하여 쓴맛이 나는 것에는 독성이 있고, 아주 시거나 매운 음식은 고통을 유발할 수 있으며, 음식에서 상한 냄새가 나면 손대지 말라고 얘기한다. 익숙한 것이 곧 안전한 것이므로 이전에 먹고서 확실히 생존했던 것들만 먹는 것이다. 그러나 음식을 선택하는 문제에 관한 한 안전만이 우리의 유일한 동기는 아니다. (…) 우리를 지속적으로 자극해줄, 새로운 맛을 가진 새로운 음식을 우리는 원한다. 그러나 이런 음식들은 해가 될 수 있는데 그것들을 먹어도 안전한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는 두 반대 세력이 있는데 하나는 익숙한 음식만 먹고 안전하게 사는 세력이고, 또 하나는 그와 반대로 아플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새롭고 흥미로운 맛을 경험하는 세력이다. 이 두 세력이 잡식동물의 딜레마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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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성공적인 푸드페어링은 복합성과 일관성 사이에서 신중하게 균형을 잡았다는 인상을 준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다양성을 갈망하지만 새로운 경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익숙한 요소들이나 구조들을 찾아내기도 한다. 심리학자인 대니얼 벌린이 새롭게 만든 말인 ‘다양성 속의 통일성(unity-in-variety)’이라는 심미적 원칙은 호기심과 배우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면서도 우리가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서로 이질적인 요소들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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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을 만드는 것은 매우 복잡한 과정이며 각 단계마다 새로운 맛과 아로마가 아주 복합적으로 다양하게 생성된다. 카카오 3대 품종인 크리올로(Criollo), 포라스테로(Forastero), 트리니타리오(Trinitario)는 고유의 뚜렷한 향을 지니는데 이런 특성은 열매가 가공되는 과정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수확과 발효 과정은 물론 원산지, 토양 조건, 기후, 숙성 정도 같은 환경 요인도 모두 초콜릿의 다양하고 독특한 향을 만드는 데 일정 역할을 한다. 이웃 농장과 카카오 농장의 근접성 같은 요인도 그 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종종 원산지 설명이 들어간 초콜릿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페루 다크 초콜릿은 견과류향이 더 많이 나는 코스타리카 다크 초콜릿보다 과일향과 꽃향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 --- p.58
주로 풀향-오이향과 지방향을 지닌 수박은 과일향, 꽃향-제라늄향, 오트플레이크향도 가지고 있어 프리카, 캐슈너트, 예네버르(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북부와 인접한 지역, 독일 북서부 지역의 주니퍼향이 나는 높은 도수의 리큐어), 다즐링 차, 심지어 미역과도 아로마 연관성이 있다. 달고 즙이 많은 수박의 풍미는 사촌 격인 오이와 비슷하고, 그래서 분홍 속살은 짠맛이 나는 재료와도 잘 어울리는데, 3,6-노나디엔알은 수박의 두꺼운 껍질에 과일향과 오이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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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요리에서 간장은 주로 설탕 같은 감미료로 맛의 균형을 맞추지만 간장과 아로마 분자를 공유하는 꿀도 잘 어울린다. 닭고기나 칠면조 고기를 요리할 간단한 마리네이드로 간장과 꿀에 올리브 오일, 레몬즙을 섞어 만들면 핵심 미각들, 곧 감칠맛, 짠맛, 단맛, 기름진 맛, 신맛을 모두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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