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영혼의 평화를 찾아 방황했던 힌두교 사두와 그의 아들 그리고 길에 버려진 여자아이의 삶을 ‘은총의 베 짜기’를 통해 서로 만나게 하시고 씨실과 날실 같은 운명으로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서로의 삶을 완성시켜 가셨다.
우리 삶을 주관하는 하나님의 시간 속에 우연이 있을까?
우연처럼 보이지만 은총의 베 짜기를 통해 필연을 만들어 가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을 뿐이다.
--- p.21
가련하고 절망적인 자신을 발견한 샤르마는 소리 지르며 울부짖었다.
“오, 하나님! 이 두려움을 거두십시오. 빛을, 당신의 빛을 제게 주십시오. 저는 빛이 필요합니다.”
그때 샤르마를 둘러싼 거룩하고 평안한 빛이 충만해지기 시작했다. 이 빛은 한낮의 태양빛보다 찬란했고, 무엇을 태우는 것보다 더 강렬했다. 영광스럽고 찬란한 빛이었다. 빛을 느끼면서 샤르마는 외쳤다.
“예수여, 오 예수여! 당신은 빛입니다. 당신은 내 영혼의 빛입니다.”
그날 샤르마에게 임한 강렬하고도 영광스러운 빛은 샤르마 안에 숨겨져 있던 두려움과 의심, 마음의 번뇌, 카르마와 윤회의 두려움을 불태우고 예수에 대한 사랑의 불을 지폈다.
시바신의 은총을 구하기 위해 힌두교 만트라를 외우던 입에서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가 이루신 놀라운 일들을 찬미하는 고백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샤르마는 자신의 이름을 ‘바울’이라 개명했다. 신의 안식으로 충만하다는 뜻의 ‘옴 샤르마’에서 ‘작은 자’라는 뜻을 가진 바울로 개명한 샤르마는 히말라야 곳곳을 다니며 영혼의 빛인 예수에 대해서 그리고 예수 안에서 누리는 안식과 생명의 기쁨에 대해 외치는 자가 되었다.
--- p.28-30
우다이뿌르 소녀들은 서로의 모습에서 상처받은 자신을 발견하고, 더 나은 삶을 갈망하는 자신들의 꿈을 보았다. 그리고 소녀들은 부모 세대의 운명과는 다른 선택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고속도로가 아닌 학교를 향해 걸어갔다. 낯선 사내의 손에 잡혀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연필을 잡고 자신들의 새로운 인생을 써 나가기 시작했다.
우다이뿌르 외곽 어느 마을에 기적이 일어났다.
우리는 첫 사람 아담의 얼굴을 통해 인간의 가련하고 비참한 운명을 마주한다. 그들의 결국은 죄가 왕 노릇 하는 삶이요, 사망과 심판이 운명이 된다.
그러나 둘째 아담 예수의 얼굴을 바라볼 때, 회복된 참 사람의 모습을 발견한다. 예수에게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생명과 희락, 평강이 충만한 삶의 비밀을 찾는다.
상대를 통해 나를 들여다보는 거울 보기는 변화를 끌어내는 놀라운 힘이 있다. 이제 거울을 보자. 곁에 있는 사람을 통해 내가 어떻게 비쳐지는지 한 번쯤 살피자.
--- p.64-65
두 번의 실패, 깨진 꿈, 에베레스트산 등반에 실패한 소머벨에게 당시 인도에서 의료 선교를 하던 푸(Pugh)가 함께 사역할 것을 제안해 왔다. 소머벨은 트라반코르(Travancore) 지역을 거점으로 귀족, 힌두교인, 지역 사회에서 배척당하는 불가촉천민들을 돌보았다.
사람들은 소머벨의 발걸음 소리를 마치 하나님이 찾아오는 소리로 들었고, 그에게서 하나님의 손길을 느꼈다.
꼭 내가 원하는 곳에 서야 성공일까? 내 계획이 틀어졌다고 실패한 인생일까? 에베레스트산을 오르기 위한 소머벨의 훈련과 노력이 성공으로 끝나지 못하고 꿈은 좌절된 것 같았지만, 오히려 아래로 내려가는 길을 선택함으로 그의 인생은 찬란히 빛나게 되었다.
소머벨의 별은 가장 높은 산 위에서 빛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자리, 불가촉천민들의 자리에서 반짝였다. 최고가 되고 높아져야만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라, 낮은 자리, 볕 한 줌 들지 않는 곳에서도 찬란한 빛으로 살아가는 인생도 있다.
--- p.76-77
빈손으로 시작했으나 하나님은 충만하게 공급하셨고, 순종함으로 꿈을 좇아갔더니 그 꿈은 모두의 꿈이 되었다.
묵티! 안식과 해방!
묵티공동체는 안식과 해방이 필요한 이들의 울타리가 되었다. 오갈 곳 없는 수천 명의 과부와 아이들이 찾아왔고, 그들을 보듬는 판디타에게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다.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예레미야 32:27)?”
부모님의 목숨을 앗아갔던 대기근이 인도 대륙에 다시 찾아왔다. 수백만 명이 굶어 죽었고, 인도는 아비규환의 땅으로 변했다. 판디타는 기근이 있는 지역을 찾아다니며 버려진 과부와 아이들을 묵티선교회로 데려왔다.
하나님은 오갈 데 없는 여인들의 연약함을 살피셨고, 대기근에도 불구하고 선교회의 우물이 마르지 않았다. 묵티선교회의 텃밭에는 과일과 야채가 자라고, 수확한 곡식으로 여인들과 아이들의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
광야에 길을 만들고, 사막에 강을 흐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이보다 더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을까? 하나님은 버려진 과부와 아이들을 자비의 그늘로 불러 모으셨고, 그곳에서 은총의 물을 마시고 생명의 떡을 먹으며 주님을 노래할 이유를 찾게 하셨다.
--- p.94-96
어느새 쿠마르의 마음에도 작은 헌신의 불꽃이 붙었다. 전에는 ‘나는 가난하니까, 가진 것이 없으니까, 나 말고도 다른 사람이 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자기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주님께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안 옷장 속에는 지금까지 그가 아등바등 모아 온 얼마의 돈이 있다. 은행에 맡기는 것도 두려워 돈이 생길 때마다 악착같이 모은 돈이다. 자신의 땀이고, 생명이고 자기와 어린 아들의 미래가 달린 돈이다. 그 생명 같은 돈을 교회 짓는 데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막상 봉투에 돈을 담으려고 하니 손끝이 약간 떨리는 것 같았다. 숨을 길게 들이마시고 평생 모은 소중한 돈을 호주머니까지 뒤져 동전 한 개까지 빠짐없이 봉투에 담았다. 25,300루피!
쿠마르는 신작로에서 흘린 땀과 눈물, 아들의 미래까지 모두 봉투에 담아 하나님께 드렸다.
--- p.153-154
하나님은 소피아를 고아들의 어머니로 부르시기 전부터 이미 그들이 머물 장소를 준비하고 계셨다. 간지뿌람의 12,000평의 땅은 이제 소피아와 그녀의 아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러브케어센터(Love Care Center)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은 우리의 시간과 조건에 제한받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고 보내시기 전에 앞서 준비하시니 여호와 이레의 시간은 언제나 정확하다.
--- p.22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