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 제1권의 대상은 ‘자본의 생산과정’이다. 그러나 제1권은 생산과정이 아닌 상품 분석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는 자본주의 생산이 상품생산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 생산과정에 앞서 상품을 먼저 해명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도 상품과 화폐는 자본에 선행하는 범주다. 따라서 제1권은 상품의 내적 모순으로부터 가치형태의 전개를 설명하고, 이로부터 화폐라는 형태를 도출하며, 그 위에서 화폐로부터 자본으로의 전화를 분석한 후에 비로소 자본의 생산과정 분석으로 들어간다. 자본의 재생산과정은 생산과정과 유통과정의 통일인데, 제1권은 유통과정의 원활한 매개를 전제하고 그 위에서 직접적 생산과정을 분석한다. 유통과정에서는 어떤 교란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유통과정은 생산된 가치와 잉여가치가 실현되고 또 생산수단과 노동력이 구매되는 과정인데, 현실에서 이 과정은 자본주의 생산의 무정부적 성격 때문에 결코 조화롭게 진행되지 않는다. 불균형과 공황, 그리고 그 결과 생산의 감축 또는 중단도 발생한다. 그럼에도 유통과정의 교란을 추상하는 것은 『자본』이 ‘자본의 이념적 평균’이라는 분석 수준에서 서술되기 때문이다.
--- p.34~35
상품에 표현된 노동의 이중적 성격은 상품의 두 개 요인을 이번에는 그 생산에 투입된 노동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신이 처음으로 노동의 이중성을 비판적으로 입증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하나는 유용노동이라는 성질, 그것이 사용가치로 결실을 가져온다. 다른 하나는 추상적 인간노동이라는 성질, 그것이 가치라는 결정체를 가져온다. 구체적 유용노동은 특정한 형태로 지출되며, 다른 노동으로부터 질적으로 구별되는 노동이다. “우리는 그것의 유용성이 그 생산물의 사용가치로 표현되거나, 또는 그것의 생산물이 하나의 사용가치인 그런 노동을 간단하게 유용노동이라고 부른다.”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구체적 유용노동, 예컨대 소맥을 생산하는 노동, 철을 생산하는 노동, 상의를 생산하는 노동 등등은 사회의 재생산과 관련된 여러 가지 유용한 생산물을 생산하고, 그 전체로 보면 사회적 분업을 이룬다. “다양한 사용가치 또는 상품체들의 총체에서 유·종·과·아종·변종[생물집단 분류상의 단위들: 인용자]에 따라 똑같이 다양한 유용노동들의 총체, 즉 사회적 분업이 나타난다. 사회적 분업은 상품생산이 실존하기 위한 조건이다. 그러나 역으로 상품생산은 사회적 분업이 실존하기 위한 조건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유용노동은 어떤 사회형태에서나 사회의 재생산과 인간의 실존을 위한 절대적 조건이 된다.
--- p.54~55
이제 시작이 어렵다는 처음 두 개 장이 지나갔다. 제3장도 여전하긴 하지만, 그래도 앞의 장들보다는 읽어나갈 만하다. 이 장에서는 화폐와 상품이 상호 운동을 전개하는 속에서 새로 전개되는 여러 관계 또는 거기서 생겨나는 새로운 형태 및 기능이 해명된다. 제1장과 제2장에서는 화폐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논의, 즉 일반적 등가물에 관한 논의였다. 이제는 그 본질을 더욱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또 실천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화폐의 여러 구체적 형태 및 기능을 살펴본다. 화폐의 주요한 형태 또는 기능은 다음 다섯 가지다. 가치의 척도, 유통수단, 그리고 금은의 모습으로만 담당할 수 있는 다음 세 가지 기능, 즉 축장화폐, 지불수단, 세계화폐다. 화폐의 기능이 다섯 가지나 나와서 이 장은 내용이 좀 복잡하다. 그래서 그 체계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기능들의 순서는 전체적으로 보면 대체로 화폐의 발전사이며, 병렬적인 의미가 아니다. 화폐의 여러 기능이 순차적으로 전개되면, 그것은 상품교환의 매개를 원활하게 진전시키게 된다. 그래서 상품교환의 발전을 해명하는 것은 화폐의 발전을 보는 것이기도 하다.
--- p.75
상품과 화폐의 토대 위에서 이를 기반으로 근대사회의 진정한 주역인 자본이 등장한다. 자본의 등장을 매개하는 가교 같은 장이 제2편 제4장이다. MEW판 『자본』 제1권 제2편은 제4장 한 개 장으로 구성된다. 이제부터는 앞의 장들보다 비교적 어렵지 않게 읽어나갈 수 있다. 일단 큰 고비를 넘긴 셈이다. 제1편에서 해명한 상품과 화폐 그리고 상품·화폐관계를 기초로 자본이라는 새로운 범주가 등장한다. 그 탄생의 무대, 자본의 출발점을 이루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상품유통이다. 그래서 자본이 상품유통의 영역에서 나타나는 운동 형태 G-W-G′의 분석으로부터 시작한다. 여기서 자본은 당장 일정량의 가치 G(화폐)가 더 큰 가치 G′를 창조하는 가치증식 능력을 띠고 나타난다. 지금까지의 상품·화폐관계에서는 없었던 불가사의한 능력이다. 이렇게 ‘자기증식하는 가치’가 자본이다.
--- p.99
마르크스는 제1권 중에서 노동일을 다루는 이 장에 상당한 분량(독일어판의 76쪽)을 할애하고 있다. 제1권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장은 기계장치와 대공업을 다루는 제13장(서문을 포함해 독일어판 전체 802쪽 중 무려 140쪽의 분량)이다. 이 두 개 장이 제1권의 1/4이 넘는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제8장은 절대적 잉여가치 생산의 역사적 분석이고, 제13장은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의 역사적 분석이다. 이 방대한 장들을 보면, 특히 공장에서의 노동과 기계장치에 관한 세세한 서술들을 보면, 마르크스의 사고가 얼마나 구체적이고 세밀한지, 마르크스의 추상적인 개념과 이론이 자본주의 현실과 역사에 대한 얼마나 구체적인 분석에 입각한 것인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노동일을 둘러싼 구체적인 역사과정을 다루는 이 장을 통해 우리는 오늘날의 노동시간 단축투쟁의 의미를 되돌아볼 수 있다. 그러면 노동일이란 무엇인가? 노동력의 1일 가치를 지불하고 입수한 노동력을 자본가가 소비해도 좋은 시간의 길이는 도대체 어느 정도인가? 다시 말해 노동력의 재생산에 필요한 시간을 넘어 어느만큼 노동시간이 연장될 수 있는가? 이것이 여기서의 문제다.
--- p.130~131
2018년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기념 기사들에서도 보다시피 흔히들 마르크스주의를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에 문제를 제기한 사상, 이론으로 이해하지만, 자본주의의 불평등 문제를 제기한 논자들은 근년에 크게 주목받은 피케티T. Piketty를 비롯해 차고 넘쳐난다. 마르크스의 고유한 이론적 기여는 자본주의하 불평등의 근원이 자본가계급에 의한 노동자계급의 착취에 있다는 점을 규명한 데 있다. 따라서 마르크스에게 있어 자본주의의 불평등은 여타 논자들 주장처럼 소득과 부의 재분배를 통해 해소될 수는 없고, 착취관계의 폐지를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다. 물론 리카도파 사회주의자들을 비롯해 여러 논자가 자본주의의 착취를 논한 바가 있다. 마르크스 경제학의 독자적인 기여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교환을 부등가 교환에 따른 착취나 수탈로 파악하는 이들과 달리 가치론과 가치법칙에 입각해 자본주의의 착취를 과학적으로 규명했다는 점이다. 즉 노동자가 자신이 생산한 가치보다 더 적은 부분만 임금으로 받는다는 점에서 이들이 자본가와 노동자의 교환을 부등가 교환과 착취로 설명하는 데 반해, 마르크스는 노동력과 노동, 노동력의 가치와 사용가치를 구별함으로써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등가교환 속에서 이뤄지는 노동자 착취와 잉여가치를 해명했다.
--- p.315~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