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기호와 스토리텔링
이야기는 언어라는 기호체계를 통해 전달된다. 언어는 기호로 구성되며 기호의 결합과 배열을 통해 형태소, 단어, 구, 문장 등의 언어단위가 생성된다. 언어에 대한 기호학적 접근은 더 나아가 이야기 구조 자체에도 적용될 수 있다. 본 장에서는 기호의 기본적인 개념과 활용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1. 기호의 정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잠재적으로 기호가 될 수 있다. 존재 자체가 기호라기보다는 그 존재에 대한 우리의 규정과 해석이 그 존재에 기호로서의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어느 산책로에서 마주하게 된 이름 모를 들꽃을 보고 ‘참 아름다운 꽃이구나. 그런데 이 길가에서 외로워 보인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그 들꽃은 스토리의 구성요소가 되고 구성요소로서 기호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기호가 문명사회에서 필수적인 요소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관계 지향적 인간의 소통을 위한 매개수단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기호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언어다. 특정한 집단에 속한 인간은 집단이 공유하는 고유한 기호체계를 사용하여 서로 소통한다. 따라서 이 집단의 기호와 기호체계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 집단에 속하지 못한 것과 같다.
사람들 간의 소통에서 기호는 반드시 언어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무언의 약속을 거쳐 다른 소통의 매개로 사용되기도 한다. 17-18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부채언어가 그 좋은 예다. 부채는 더위를 이겨내기 위한 도구 또는 장식이었는데, 당시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어있던 여성들에게는 무례하지 않게 자신의 의지를 표현할 수 있는 훌륭한 소통수단이었다. 예를 들어, 한 여성이 자신의 거부의사를 표현할 때, 부채로 손바닥을 몇 번 치는 것으로 그 의사를 전달했다. 따라서 사교계에 진출하려던 여성들은 지인을 통해 부채언어를 배워야 했다. 이들에게 부채는 소통수단의 역할을 하는 하나의 기호였던 것이다.
기호는 그 기호를 이해하는 주체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기호를 통한 소통이 항상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남성과 여성이 붉은 장미에 대한 해석을 달리한다면, 여성에게 붉은 장미를 전달한 남성은 성공적으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성공적인 소통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송신자와 수신자의 공통된 이해 분모가 필요하다. 관계를 이루고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그 공통의 이해 분모를 학습과 경험을 통해 지식으로 축적한다. 대부분의 소통은 객관적이고 표준적으로 해석되는 기호를 공유하여 원활하게 진행되지만, 그 기호가 사용되는 시간과 공간, 주체의 감정 등이 문맥context이 되어 그 문맥 속에서 송신자와 수신자의 해석이 다를 수 있다.
이와 같이 단순하게 기호를 정의한다면, 의사소통의 매개수단으로 정의할 수 있으나 기호학자들은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다양한 측면에서 기호를 정의하고 분류하였다.
2. 기호의 종류
기호학의 창시자 찰스 샌더스 퍼스Charles Sanders Peirce(1839~1917)는 기호를 대상체의 기준으로 도상Icon, 지표Index, 상징Symbol으로 분류하였다. 그는 기호가 세 가지로 나눠진다 하더라도, 기호의 유형들은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 항상 함께 작용한다고 말하였다(Peirce, Houser, & Kloesel, 1992).
도상(Icon)
도상은 지시 대상과 형태적으로 유사한 특성을 가진다.
도상은 유사성에 의해 형성된다. 도상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과 물리적인 연결고리는 없지만 대상과 닮았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을 지칭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초상화다. 초상화는 사람의 이미지를 본떠 만들어진 것이다. 사람들은 초상화를 보고 지시 대상을 떠올릴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사람은 아니다.
지표(Index)
지표의 작용은 시공간적인 연관성에 의해 일어난다.
지표는 도상과 달리 기호와 대상 사이에 물리적인 연결고리가 존재하는데, 이러한 연결고리로 시공간적 인접성이나 인과성이 그 특징이 된다. 예를 들어, 물이 담긴 컵에서 김이 나는 것을 보고 뜨거운 물을 지각한다면, 그것은 물이 끓으면 기화한다는 인과성이 기여했기 때문이다. 지표는 자연지표와 인공지표로 나뉠 수 있다. 자연지표가 앞의 예처럼 물리적 현상을 표현하는 반면, 인공지표는 의사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신호signal로 나타난다.
상징(Symbol)
상징은 대상과 본질적으로 무관하고 자의적이다.
상징은 도상, 지표와 달리 지시 대상과 유사성이나 물리적 인접, 인과성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문화적 관습이나 규칙에 의해 만들어진다. 따라서 수용자는 다양한 규칙이나 관계를 교육받지 않으면 상징을 이해할 수 없다. 예로는 우리나라에서는 흰 비둘기와 평화는 아무런 유사성, 인과성과 같은 관계가 없음에도 관습적으로 수용자들에 의해 그 둘이 연결되지만 이러한 관습이 없는 문화권에서는 흰 비둘기를 보며 평화라는 상징을 떠올릴 수 없는 것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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