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부산
정전이라 카바이드 가스등 아래에서
1948년 2월 5일, 목요일
오전 6시 30분
나의 사랑하는 이에게,
어제는 긴 할 일들의 목록에서 순조롭게 출발조차 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수요일 오후가 근무를 쉬는 반공일이라 그런지 상당수가 수요일 아침에 길을 떠나는 듯합니다. 이번 주에 꼭 하고 싶은 한 가지는 등유 한 통을 구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일입니다. 머지않아 우리 자신의 것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에 대비해서 준비해 놓기 위함입니다. 난로와 여분의 심지는 있습니다. 음식도 조금 있고, 만일의 경우에는 한국 시장에서 언제든 비싼 환율로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굶을 일은 없을 겁니다.
어제 정오에는 이 지방 군정장관인 질레트Gillett 대령이 나를 그의 식탁으로 초대했습니다. 그는 요즘 우리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특별히 이 나라의 경제에 관한 내 견해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만약 전국 단위로 일을 처리할 수 없다면 왜 지역 단위로 할 수 없는지 그에게 물었고, 내 제안에 그가 솔깃한 듯했습니다. 그는 지난 4월 내가 러치Lerch 장군에게 보낸 편지를 보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어젯밤에 그 복사본을 쳐야 했습니다.
어제 아침에는 옛날 한국 의학서 등을 얻으려고 기독교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한국 서적과 문방구를 도서관에 전시하려고 하는데 이번 주에 진열할 예정입니다. 이 일을 제대로 할 시간이 주어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나는 또한 전화 한 통을 했는데, 미국 운송업체 가운데 호의의 표시로 미국으로 유학 가는 학생 두 명 혹은 그 이상을 매달 무료로 태워줄 수 있는 데가 있을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담당자는 부재중이었습니다).
어제 오후에는 YFCYouth For Christ 회원들이 하이킹을 갔습니다. 모두 14명이었습니다. 떠나기 직전에 한 미군이 PX에서 딕 프레트Dick Pratt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습니다. 우리는 간식거리를 사는 중이었습니다. 그는 내일 집으로 간다고 하면서, 자신이 한국에서 기독교인이 되었는데, “그것이 군대가 내게 해준 유일한 것이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나는 그를 잘 몰랐지만, 그는 우리 두 사람을 알고 있었고, “9년 뒤에 의료선교사로서” 이 지역 어딘가로 다시 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YFC 집회에서 결심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마 종교강조주간에 했을 겁니다. 어쨌든 그는 우리를 알고 있었고, 우리에게 간증하고 싶어 했으므로 우리가 적어도 어떤 도움을 준 것 같습니다.
하이킹을 갔던 무리 중에서 딕 프레트(우리의 새 리더)는 메인Maine주 출신이고, 헨리 에버레트Henry Everette (헌병)는 보스턴Boston출신이고, 조지 닐슨George Nielson (루터교도인데 이곳에 있는 동안 실제로 활발하게 신앙생활을 하게 된 친구)은 아이오와Iowa주 출신이며, 커미트 넬슨Kermit Nelson은 워싱턴Washington주 출신입니다. 바로 미국 전역에서 온 친구들입니다. 한국인은 시내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 두 명, 여고에서 정치 또는 상업지리를 가르치는 사람 한 명, 무선전신 기사 한 명, 교도소 간수 한 명, 고등학생 한 명, 신학생 한 명, 도의 복지부 책임자와 그의 어린 아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선교사도 한 명 있었습니다. 꽤 흥미로운 조합이었습니다. 우리는 섬에 있는 산을 걸어서 올랐습니다. 당신이 보낸 필름을 전부 썼습니다.
안타깝게도 숫자를 들여다보는 뒤쪽 어두운 유리에 구멍이 난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을 발견한 것이 나빴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문제로 필름 전체가 못쓰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대위 한 명이 현상해주기로 했으니까, 내일이면 알게 되겠죠. 당신이 카메라에 대해서 물었지요? “Six-20” 필름을 쓰는 중고 “브라우니 스페셜” Brownie Special입니다.
게이츠Gates 대위와 그의 아내, 그리고 엘렌(2월 13일에 11세가 됩니다)이 찾아와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엘렌은 코니와 데이비드 또래인데, 데이비드가 한 살 위입니다. 게이츠 부인이 나를 보고 “헌트 선생님 맞으시죠?”라고 물었을 때(나는 전에 그녀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오랫동안 밖에 나와 있는 나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당신이 바로 최근 도착한 800개의 우편물 행낭 중에서 700개를 받을 분이시군요.” 그저 농담일 뿐이었지만 진실에 꽤나 가까운 말인 듯했습니다. 이곳에 보통 약 90개의 해외우편물 행낭이 오는데, 게이츠 대위는 그것이 한국에 오는 행낭의 절반가량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800개는 이례적입니다. 누구한테서 그 우편물 소식을 듣고 게이츠 부인은, “800개 중에서 700개는 게이츠네 집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그들은 소포를 몇 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자 우편 직원이 대답하기를, “그것들은 헌트 박사의 소포일겁니다”라고 했습니다-그래서 그녀가 저에게 관심을 보인 겁니다. 할리 보르도Harlee Bordeaux가 소포를 많이 보내리라는 건 알았지만 얼마나 보냈는지는 들은 바가 없었습니다. 어쨌든 기다려보면 알겠지요. 그러나 적어도 이것이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답니다.
어젯밤에는 테이트 양과 핸디사이드 양의 주택에 관한 편지 두 통을 서울로 부쳤고 (아침에 서울에 전화해야 했습니다), 또한 핸디사이드 양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어제는 처칠Churchill의 구호 물품과 [위트니스]Witness 지 한 부 외에는 우편물이 없었습니다. [위트니스]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번 주에 보통 내가 받는 우편물 몫을 이미 받은 것 같습니다. 저녁에는 한집에서 사는 친구들과 몇 분 동안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 옆방의 좋은 룸메이트 닉 바바도로Nick Barbadoro(유대인처럼 생긴 이탈리아계 “가톨릭 교인”)가 그저께 미국으로 떠났다는 말을 했나요? 내가 배웅을 해주지 못했습니다. 그에게 당신의 주소를 주면서 아내와 함께 당신을 찾아가라고 했습니다. 귀여운 개를 기르던 바로 그 사람입니다.
또한 한 가지 잊어버리고 말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목사님 한 분이 나를 찾아와서 부탁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탄 배가 사고가 났고, 그 사람은 헌병들에 의해 조사를 받고 있는데 그 사람에 관해서 알아봐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또한 헨리필립스Henry Phillips교회에서 박[윤선] 목사 앞으로 보낸 상자 두 개를 신학교로 가져다주었습니다.
바빠서 맹렬하게 서두르면서 살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하는 것이 약간 나를 지치게 합니다.
사랑합니다, 여보. 나의 쉼 없는 생활 일부를 당신과 공유할 수 있다면 정말 너무나도 좋겠습니다.
브루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