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의 '행복'은 '외로움'입니다.
사람들은 '외로움'이란 단어를 생각하면 대개 '불행'이란 단어를 연상합니다. 외로움은 슬픔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지내면서 경험하는 외로움은 다릅니다. 주님은 외로움을 사랑의 기회로 바꾸셨으며, 외로움의 시간에 더욱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갔으며, 외로운 시간을 창조적 사역으로 바꾸셨습니다. 외로울 때 기도하셨고, 외로울 때 우셨습니다. 외로울 때 사랑하셨고, 외로울 때 섬기셨습니다. 그렇게 성경에서 주님만큼 외로운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을 떠올릴 때마다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생각합니다. 그는 정말 위대한 사도였습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 '외로운' 사도였습니다. 복음의 사람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던 때에 가해자들의 옷을 지키던 그가, 무서운 박해를 위해 떠난 '다메섹'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입은 후, 성경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로마의 감옥에서 참수될 때까지, 그의 삶은 외로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그의 생애와 사역, 특히 전도 기록은 '사도행전'과 그가 남긴 13권의 서신에 모두 담겨 있습니다.
그는 수없이 많은 살해의 위협을 당하고, 많은 배신과 음모를 겪었지만 끝까지 조금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스스로 역사에 남겼거나, 그의 자취를 기록한 '사도행전'의 행간과 자간에는 사도 바울의 신앙의 담력과 용기만 아니라 이보다 훨씬 짙은 외로움으로 가득합니다. 그는 주님의 사도로 부름을 받지만, 사도의 사명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외로웠습니다. 유대인들의 후원과 대제사장들의 법적인 신분 보장과 장치를 힘입어 그리스도인들을 제거하려는 계획은 좌절되었습니다.
주님의 강권적인 섭리에 의해 초자연적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아무도 가보지 않은 특별한 선교의 길을 갑니다. 그 길은 흩어진 교회를 박멸하려고 파송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나 유대인들에게는 치명적 배신입니다. 이를 갈게 하는 변절이었습니다. 당장 바울을 죽이려는 이들이 도처에 매복하여 바울을 살해하려고 했고, 실제로 사도 바울은 광주리를 타고 도망치거나 고향으로 가서 숨어 지내야 할 만큼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는데, 바울 사도의 사역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유대인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율법을 생명처럼 지키며 살았거니와, 당대 '예루살렘'에 기거하는 세계적인 율법 대가(大家)인 석학(碩學)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율법을 공부한 촉망받는 장래 지도자였습니다. 따라서 유대사회에서 바울의 소명에 대한 순종과 그의 선택은 같은 유대인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따라서 교회를 박해하는 강도(强度)만큼이나 그를 제거하려고 사람을 세우고 음모를 꾸미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을 외롭게 한 것은 또 있습니다. 그것은 소위 예수님의 직계 제자로 부름 받은 사도가 아니기에 당하는 기존 제자들로부터의 소외와 견제, 촉망받는 율법가의 길을 떠나 전도자의 길을 간 때문에 받는 의혹의 눈총입니다. 혹시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려는 덫으로 보는 시각입니다. 물론 이 의심들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졌지만, 직계 사도가 아니라는 것 때문에 견제 받거나 소외되는 일은 아주 오래도록 계속되었습니다. 그것은 사도를 몹시 외롭게 했습니다.
이제 그의 사역이 '마케도니아'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궤도에 집입하고, 전도자로의 안정적으로 지속되면서 '동역자와의 갈등', '공동체의 이탈', 사역자들의 배신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외로웠습니다. 여러 차례 원치 않는 수감 생활도 했습니다. 그곳에서 외로운 밤을 수없이 보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주님의 사자(使者)가 찾아와 위로했지만, 짧은 위로를 받고 긴 사역을 감당하는 것은 수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외로움이 외롭지 않은 것은 주님에 대한 희망 때문입니다.
'바울'사도에게는, 확증할 수는 없지만 부인이 없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지금처럼 고정된 교회의 멤버들과 함께하는 '목회'가 아니고 몇몇 제자들과 함께 순회 전도자의 일을 했기에, 몸과 마음은 더 힘들었고 경제적 위축은 심했습니다. 그때 곁에 아내 된 동역자가 있었다면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사도는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가는 곳마다 그를 살해하려는 위험, 반대하고 훼방하는 이들로 인한 외로움, 동역자들의 배신과 이탈이 있었습니다.
그런 외롭고 힘든 고난의 사역이 계속되는 동안 그에게 외로움을 이기도록 힘을 주었던 것이 있습니다. 박해를 당하고 매 맞고 위험에 노출되어 감옥에 갇히는 동안, 사역을 중단하지 않고 이어갈 수 있었던 힘은 죄인의 괴수인 그를 사도로 부르시고, 언제나 위로와 계시로 동행하시는 예수님이었습니다. 사도는 임종이 가까운 감옥에서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주님이 기다리고 계심'과 그가 가는 길 끝에서 주님을 만난다는 희망으로 견뎠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사도가 전해준 복음을 듣고 제2, 제3의 사도가 되어 그가 갔던 그 글을 뒤이어 갑니다. 위협은 여전하고 사역은 여전히 고달프고 힘들지만, 지금도 중단할 수 없고 지금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기 있다면, 때마다 우리에게 위로와 능 능력이 되시며 언젠가 우리의 눈에 눈물을 닦으시고 품에 안고 칭찬해 주실 주님께서 우리의 맞은 편 저쪽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열두 제자에게도 주셨고, 사도 바울에게도 주셨으며 우리에게도 주신 변함없는 약속이자 희망입니다.
--- 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