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어떻게 생겼을까? 어떤 모습일까? 칠흑 같이 캄캄한 밤에 다리를 만진 사람은 커다란 둥근 기둥과 같다고 한다. 배를 만진 사람은 공중에 떠 있는 넓고 둥근 큰 물통과 같다고 한다. 코를 만진 사람은 둥글고 긴 호스라고 한다. 귀를 만진 사람은 커다란 날개라고 주장한다. 눈알을 만진 사람은 커다란 유리구슬이라고 한다. 꼬리를 만진 사람은 소꼬리라고 한다. 어둠 속에서 코끼리를 만지고 온 사람들이 밝은 방에 모여 서로 자기가 만진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서로 치열하게 토론을 할수록 남의 주장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하면서 자신의 말들이 점점 굳어진다. 자신의 주장만 설득하기 위해 자신의 논리가 점점 화석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 코끼리의 전체 모습은 온데 간 데 없고 다리, 배, 코, 귀, 눈알, 꼬리 등 각각의 일부만 주장할 뿐 이들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이들이 전체로 모여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에 대한 관심들은 크지 않다. 그러나 코끼리는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해서 보아야 한다. 코끼리는 이 모든 모습들을 통합하고 이들 지체들 간에 이루어지는 유기적인 연결 기능까지 함께 한 모습이다. 이처럼 코끼리는 총체적으로 보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국가란 무엇인가? 서로 다른 이론과 시각에서 각각 다른 주장들은 한다. 마치 캄캄한 밤에 코끼리를 만진 사람들이 각각 자신이 만진 부분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격이다. 이 책은 고조선국가에 대한 연구서이다. 고조선에 대한 다양한 연구들을 종합학문적으로 검토하고 평가한 뒤 국가를 연구대상으로 하는 국가이론과 국가학으로 고조선을 연구, 분석하고자 한다.
이 책은 국가에 대한 동서고금의 다양한 이론과 연구들을 7가지 개념변수로 정리하고 거기에 따라 고조선국가의 성격을 분석한다. 그 첫째는 '나라'로서의 국가, 둘째는 '지배이데올로기'로서의 국가, 셋째, '지배계급'으로서의 국가, 넷째, '사회관계의 응집'으로서의 국가, 다섯째, '관료기구와 법 질서의 총체'로서의 국가, 여섯째, '통치집단과 정부'로서의 국가, 그리고 일곱째, '국가통치자'로서의 국가이다.
이러한 서로 다른 다양한 차원에서의 국가는 국가발전의 역사적 시기에 따라 서로 다르게 전개된다. 대표적인 역사학자인 스펭글러가 국가의 변동을 기ㆍ승ㆍ전ㆍ결의 네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는 만큼, 이 책에서도 7가지 서로 차원과 범위 및 성격을 달리하는 국가들이 어떻게 변동하는지를 각각의 국가 개념변수 내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국가의 변동은 역사적 시기에서 당면한 위기의 성격에 따라 국가변동의 내용이
달라지는 만큼, 세계체제, 국가, 사회계급 등의 상화활동의 결과로 살펴보고, 국가변동이 국가성격과 국가능력을 변동시키는 만큼 이들을 종합적인 인과관계의 틀에서 분석해야 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국가변동의 변수간 관계나 변수간 상호활동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고 그 결과로서 나타난 기ㆍ승ㆍ전ㆍ결의 단계별 성격에 대하여서만 다루도록 한다.
구체적으로 고조선의 국가가 다양한 변수들의 관계로 나타나는 국가변동이나 국가성격 및 국가능력 등에 대하여서는 《고조선국가연구》에서 다루도록 한다. 그 책에서는 고조선이 어떻게 오랜 기간 변화하여 왔는지를 관련 이론이 따라 분석하고자 한다. 고조선은 세계문명, 세계체제, 중국, 북방, 및 일본과 고조선의 관계를 요하문명과 홍산문화, 고 기록의 상관성, 대륙ㆍ해양ㆍ육상교통망 등과의 관계 속에 밝히고자 한다. 동아시아 최초 제국으로서 고조선문명권 형성, 농업혁명과 고유 식문화 형성, 중국에 앞선 철기문화, 그리고 고조선의 다양한 세계 최초 선진문명의 전개를 규명한다. 그 책에서는 고조선의 국가가 국가위기, 세계체제, 사회계급의 상호활동과 국가변동의 관계를 국가의 흥망성쇠와 기승전결의 장기ㆍ중기ㆍ단기 사이클로 나누어 국가변동의 외인론이나 내인론 그리고 그들을 통합한 통합론으로 나누어 분석한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그러한 변수간의 인과관계나 상호활동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생략하고 다만 국가의 7가지 개념변수에 따른 국가위기에 따라 국가변동이 기ㆍ승ㆍ전의 단계에서는 한족정권ㆍ맥족정권ㆍ예족 기자정권 시대로 이어지고, 결의 단계에서는 해모수의 북부여ㆍ예족 위만정권 시대로 이어짐을 밝힌다. 장기 사이클로서의 단군조선의 결의 시기에는 고조선ㆍ고조선문명의 붕괴와 후삼한ㆍ열국시대로의 부활로 나타남을 규명한다.
최근 고조선에 대한 관심이 한국은 물론 북한과 중국 및 일본 등에서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민족사학자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하면서 재야 사학자들을 중심으로 산발적으로 이루어지던 것이 강단사학자들은 물론 사회과학자들과 천문과학자 등으로 연구가 확대되면서 연구의 양과 질에서 더욱 성숙해지고 있다. 북한에서는 주체사상을 바탕으로 하면서 다양한 연구들과 논쟁들을 국가차원에서 하나로 묶어 주체사학이 정립되어 고조선에 대한 이론적 실증적 연구가 축적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요하문명과 홍산문화에 대한 유물발굴을 적극적으로 펼치면서 초기에는 동이족의 문명으로 외면하다가 국가가 주도하는 동북공정, 탐원공정, 요하공정 등을 통해 다민족국가 중국의 역사로 왜곡, 편입시키고 있다. 일본은 고대사 왜곡을 통해 고조선과 한국의 고대사를 왜곡한 교과서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이 고조선 역사에 대한 내부 논쟁과 역사내전에 빠져 있는 동안 한국, 중국, 일본 등의 역사전쟁은 학문적인 차원을 넘어 정치군사적 차원으로 확산되고 있다. 심지어 미국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은 그들의 세계패권확보를 위해 한국과 북한의 고조선 역사 등 고대사를 왜곡하여 그들의 역사에 편입시키고 있다. 그들의 논리를 미국 등 세계 각국에 주입시키고 있다. 민족중심 국가의 역사를 고수하는 한국과 영토중심국가의 역사를 강변하는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이 심각한 삼국간 역사전쟁으로 더욱 거세게 냉전중이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를 일찍부터 체험하면서 오랜 기간의 연구를 거쳐 그 성과를 《바로 찾는 한국고대국가학: 고조선의 국가와 행정》(대영문화사. 2020)을 출간하였다. 이 책을 집필하는 동안 많은 스승님들과 선배 교수님ㆍ동학들의 학덕을 입었다. 일연, 북애자, 장레지, 계연수, 이유립, 이화사, 최태영, 이병도, 신채호, 최남선, 안확, 정인보, 김운태, 박동서, 강신택, 백완기, 김경동, 진덕규, 신용하, 김용섭, 리지린, 윤내현, 임승국, 성삼제, 박창범 등 여러 교수님들이다.
이 책이 출간된 후 〈2020 대한민국학술원 선정 교육부우수학술도서〉로 지정되면서 국내외 많은 전문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책이 너무 무겁고 두꺼우니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몇 개의 소책자로 나누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듣게 되었다. 이에 저자는 위의 책을 《고조선국가연구》, 《일곱 얼굴의 고조선》 그리고 《고조선행정사》의 세 부분으로 나누고, 위의 책의 원고를 완성한 이후 최근 출간된 국내외 여러 연구들을 보완하여 세 권으로 발간하기로 했다. 그 두 번째 책이 이 책 《일곱 얼굴의 고조선》이다. 이 책은 위의 책 가운데 1ㆍ2ㆍ6ㆍ7ㆍ8ㆍ9ㆍ10ㆍ11ㆍ12장의 내용을 재정리하고 일부 보완하여 출간한 것이다.
특히 고조선 역대 단군의 왕세표와 단군조선의 연표를 새로 부록에 추가하였다. 고조선 역대 황제ㆍ국왕들의 통치활동과 자연환경 및 각종 정책활동은 고조선이 역사에서 일곱 얼굴의 모습으로 다양한 활동을 한 흔적들이다. 고조선이 나라, 지배이념, 지배계급과 지배연합, 다양한 사회관계의 응집, 관료기구와 법 질서의 총체, 통치집단과 정권, 황제ㆍ국왕으로서 다양한 국가활동을 전개한 기록들이다. 이것들에 대해 기록한 《규원사화》ㆍ《단군세기》ㆍ《단기고사》 등에 대해 다양한 논의들이 있으나 이 책에서는 이들 역사서들의 기록들을 비교하고 상호 검증하여 고조선의 성격과 행정 및 정책을 밝히는 데 활용했다. 여기에 할애된 지면이 약 20여 쪽에 해당한다.
--- 「머리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