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모든 선물이 그분의 사랑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분의 사랑을 십자가 선물보다 더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 십자가의 선물은 포장지 대신 수난에 싸여 찾아왔다. 나무 밑이 아니라 십자가 밑에 놓여졌다. … ‘십자가’라는 선물 자체에 대해서는 다들 많이 얘기했다. 하지만 다른 선물들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못은 어떤가? 가시 면류관은 어떤가? 군병들이 취한 옷은 어떤가? 장례를 위해 드려진 수의는 또 어떤가? 당신은 시간을 내어 이런 선물들을 열어본 적이 있는가?
--- p.26-27, 「바로 너를 위해 한 일이다」 중에서
돼지는 자기 여물통의 다른 돼지들을 둘러보며 이렇게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난 누구 못지않게 깨끗해.” 그러나 인간에 견준다면 돼지는 도움이 필요한 상태다. 우리 인간도 하나님에 견준다면 똑같이 도움이 필요한 상태다. 무죄의 표준은 이 땅의 돼지 여물통이 아니라 하늘 보좌에 있다. 하나님 자신이 표준이다.
--- p.47, 「너의 어두운 면을 감당하겠다」 중에서
야수를 미녀 되게 하시려 그분은 친히 야수가 되신다. 예수님이 우리와 자리를 바꾸신 것이다. 아담처럼 우리는 저주 아래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우리 자리를 대신하여] 저주를 받은 바”(갈라디아서 3:13) 되셨다.
--- p.50, 「너의 어두운 면을 감당하겠다」중에서
그분이 주먹을 움켜쥐지 않으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분은 목록을 보셨다! 무엇이 그분의 저항을 막았는가? 당신의 실패가 적힌 이 증서, 바로 이 목록이다. 예수님은 죄의 값이 사망임을 아셨다. 이 죄가 비롯된 곳이 당신임을 그분은 아셨다. 당신 없는 영원을 생각하실 수 없기에 그분은 못을 택하셨다.
--- p.78, 「너의 잘못을 용서한다」 중에서
빌라도의 의도는 죄패를 통해 유대인들을 위협하고 조롱하려던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다른 뜻이 있었다. 빌라도는 복음 전파를 위한 하나님의 도구였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천국의 서기가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죄패에 받아 적었다. 그리고 그 죄패는 한 독자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하나님이 사용하시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 p.98, 「너의 언어로 말하겠다」 중에서
하나님은 천둥을 보내 우리를 정신 차리게 만드실 때도 있고, 축복을 보내 우리를 회유하실 때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침묵으로 일관하실 때도 있다. 우리를 존중하사 영원을 보낼 곳을 선택할 자유를 주시는 것이다.
--- p.118, 「너에게 선택권을 주겠다」 중에서
그분은 당신의 마음을 얻으시고야 말겠다는 열정 외에는 아무런 장비도 없이 찾아오셨다. 그분의 뜻은 오직 하나, 자녀들을 집으로 데려오는 것이었다. 성경은 하나님 아버지의 이 찾아오심을 한 단어로 ‘화목하게 하심’이라 표현한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고린도후서 5:19). 화목하게 한다는 말은 헬라어로 “상태를 되돌려 놓는다” 는 뜻이다. 화목하게 한다는 것은 뜯어진 것을 다시 꿰매고, 반항하는 마음을 되돌리며, 싸늘하게 식은 열정에 다시 불꽃을 지피는 것이다.
--- p.137, 「너를 결코 버리지 않겠다」 중에서
교만도 수치도 당신을 하늘 아버지께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는다.
교만은 말한다. “넌 하나님을 찾기에는 너무 착해.”
수치는 말한다. “넌 하나님께 가기에는 너무 추해.”
교만은 당신을 몰아낸다.
수치는 당신을 가둬둔다.
교만이 넘어짐의 앞잡이라면 수치는 넘어진 뒤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한다.
--- p.140, 「너를 결코 버리지 않겠다」 중에서
우리는 이제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임재 안에 들어갈 수 있다. 우리와 하나님을 갈라놓던 장벽을 그분이 제하셨다. 죄의 장벽? 없어졌다. 그분이 휘장을 걷어치우셨다.
그런데도 우리는 장벽을 다시 쌓아 올리려는 버릇이 있다. 성전에는 휘장이 없는데 우리 마음에는 휘장이 있다. 시계의 초침 소리만큼이나 우리 마음에는 실수가 끊이지 않는다. 때로, 아니 시도 때도 없이 우리는 그 실수가 장벽인 양 하나님과 거리를 둔다. 양심의 가책이 휘장이 되어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는 것이다.
--- p.181, 「나의 임재로 너를 부른다」 중에서
하나님과의 동행도 똑같다. 세월이 간다고 처음 구원받은 날보다 더 구원받은 자가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하지만 구원에서 더 나아갈 수 있을까? 물론이다. 결혼처럼 구원도 완성된 사건이면서 동시에 매일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피는 우리를 위해 내주신 하나님의 제물이다.
물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둘 다 필요하다.
--- p.221, 「너를 구원한 내가 너를 지키겠다」 중에서
십자가만큼 단순한 모양이 있을까? 가로 막대기 하나에 세로 막대기 하나. 하나는 양옆으로 뻗는다. 하나님의 사랑처럼. 하나는 위로 향한다. 하나님의 거룩함처럼. 하나는 그분의 사랑의 넓이를 가리키고 다른 하나는 그분의 거룩함의 높이를 보여준다. 십자가는 그 둘이 만나는 곳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자신의 기준을 낮추지 않으면서 그 자녀들을 용서하시는 곳이다.
--- p.236, 「영원히 너를 사랑하리라」 중에서
성경은 말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장을 덮기 전에 간단한 실습을 하나 해보자. ‘모든 것’이라는 단어를 없애고 그 자리에 당신에게 비극을 상징하는 것을 대신 넣어보라. 사도 요한이라면 이 구절은 이렇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수의’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라파엘의 경우라면 이렇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흉터’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p.258, 「너의 비극을 승리로 바꿔주마」 중에서
그분은 우리가 현재 저지르며 사는 실수도 원하신다! 오늘 당신의 삶에도 실수가 있는가? 음주가 과한가? 직장에서 남을 속이는가? 배우자를 속이는가? 돈 관리가 엉망인가? 인생의 관리가 엉망인가?
그렇다면 아무 문제도 없는 척하지 말라. 넘어지지 않는 척하지 말라. 그대로 다시 시합에 뛰어들려 하지 말라. 먼저 하나님께 가라. 넘어진 후의 첫걸음은 십자가를 향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한일서 1:9).
--- p.290, 「십자가에 무엇을 내려놓겠는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