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에 대한 집착이 일으키는 가장 큰 증상은 지적 교만이다. 자신의 지식이 많고 큼에 스스로 매료되어 모든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일, 자신보다 지식이 덜한 이들 위에 군림하기를 좋아하고 이들을 짐짓 깔보거나 무시하는 일, 이것이 지적 교만의 이중적 특징이다. 일단 지적 교만에 빠지면 지식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은 물 건너가 버리고 만다. 또 지식이라는 은사를 활용하여 이웃을 섬기고 풍요롭게 한다는 생각은 떠오르지조차 않는다. 푸코가 지식과 권세를 불가피할 정도로 동일시한 것은 인간 본성의 어두움에 대한 섬뜩한 통찰력으로 여겨진다.
--- p.33-34, 「책집의 탄생」 중에서
독자인 내가 저자의 사상이나 생각, 주장에 반응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대화’라는 말을 쓴 것은 독자가 책을 읽을 때 그저 수동적 접수자로만 남아 있지 말고, 마치 저자가 책 내용이 전달되는 현장에 있는 듯 질문을 던지고 추정적 발언을 감추지 말고 부연 설명을 요청하는 등 매우 능동적인 반응자 노릇을 하라는 뜻이다. 이러한 방도의 책 읽기는 책의 내용이나 주장을 명료히 이해하고 저자의 입장에 대한 비판적 이해를 형성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요건이다.
--- p.57, 「독서의 묘수」 중에서
연필 표시는 점차 확대되어 1. 저자의 논점을 항목에 따라 ① ② ③ 등으로 (하부 논점이 있으면 ① a, b, c 등으로) 정리하는 것, 2. 저자의 논점에 따른 나의 반응(놀랍다, 통찰력 있다, 재미있다 등)을 적는 것, 3. 저자의 논점이나 주장 가운데 빈틈이 보이거나 미심쩍거나 의문이 가는 점을 표시하는 것, 4. 주장만 하고 그에 대한 정당한 근거 제시나 설명이 없음을 지적하는 것, 5. 나라면 이 사안을 다른 식으로 설명하겠다고 제안하는 것, 6. 이 주제나 사안은 좀 더 조사가 필요하다고 환기시키는 것 등도 포함하게 되었다.
--- p.60, 「독서의 묘수」 중에서
이 방식은 어떤 공식화된 분류 체계를 너무 많이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필요와 관심사에 따라 융통성과 순발력을 발휘하는 방안이다. 자신의 필요란 소장자에게 부과된 연구 프로젝트 수행이거나, 시리즈 형태로 전달하는 설교 준비일 수도 있다. 이런 필요와 연관된 책들을 하나의 분류 범주로 삼는 것이 왜 문제겠는가? 관심사도 비슷하다. 남들이야 어떻든, ‘조상숭배’나 ‘제사’가 자신의 흥미를 자극한다면, 그 또한 분류 기준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어떤 이의 호기심과 시선을 끄는 주제가 ‘악의 문제’든 ‘영혼과 공간 사이의 관계’든 ‘비종교인이면서도 진화론을 반대하는 학자들’이든, 그런 관심사는 별도의 범주를 구성하도록 자극하는 요인일 수 있다.
--- p.67, 「분류의 미덕」 중에서
분류 작업은 책뿐만 아니라 사고 행위 자체의 활성화에도 긍정적으로 기여한다. 책에 관한 분류 작업을 일상화하면, 거기서 습득한 사고 훈련으로 책을 매개로 하지 않은 관념들까지도 능숙하게 다루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책 밖에서도 개념·사상·주제·이슈들을 맞닥뜨리는데, 이때 평소의 분류 작업으로 자기 나름의 사고 훈련이 되어 있다면 이를 기반으로 자기에게 닥치는 관념들을 분석·파악·비교·평가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이것은 분명코 책 분류 작업이 가져다주는 보너스라고 할 수 있다.
--- p.80-81, 「분류의 미덕」 중에서
묻고 궁금해하고 의견을 듣고 해답을 구하면서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 걸음씩 성숙을 향해 나아갔다. 당시에는 끊임없이 안개 속에서 헤매는 것처럼 여겨졌지만, 실은 그 안개 속에 성숙의 표지판들이 감추어져 있었고 그것들을 더듬으며 방향을 제시받은 것이었다. 질문하는 습성과 궁금증을 풀고자 하는 갈망이 없었다면, 인간적 관점에서 볼 때 성숙은 훨씬 더디었을 것이다.
--- p.105, 「물음의 순환」 중에서
난해 구절까지 들먹이지 않는다고 해도, 바울은 어린아이들과 달리 어른에게 필요한 “밥”의 교훈이 있음을 언급했고(고전 3:2), 특히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 말씀의 초보에만 급급하는 당시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하지 않았는가!(히 5:12) 처음 그리스도인이 될 때는 복음의 기본 메시지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르나, 영적 성장과 성숙을 염두에 둔다면 자연히 성경에 나타난 여러 가지 가르침과 교훈을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성경의 여러 내용을 해설하고 설명해 주는 기독교 서적의 도움을 등한시할 수 없다.
--- p.128, 「한 권의 책」 중에서